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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 나의 녹슨 마음을 연 아버지의 세마디[연중기획 아버지와 가까이]
최현민 | 승인 2017.04.11 11:06

2년 전, 제대를 앞둔 마지막 휴가의 마지막 날에 아버지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버지는, 사회로 돌아오면 더욱 치열해질 ‘인생 전투’를 철저히 준비하지 않는 20대 아들을 몹시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셨다. 30년 가까이 교직에 몸담아 학생들을 가르쳐 오신 아버지는 철없는 아들이 비슷한 또래의 제자들만큼 노력하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방학 때마다 어떤 색으로 머리를 물들일지 고민하는 걸 못마땅해 하셨다. 아버지께 꾸중 듣는 날이 많아질수록 고개 숙여 가만히 듣기만 하는 상황이 싫었다. 도피처가 되어버린 내 방 벽은 두꺼워져만 갔고 방문이 닫혀있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아버지와 마주 앉은 날 저녁, 대화는 역시 차가운 공기와 함께 시작됐다. 수 년간 쏟아내 온 아버지의 얼음장 같은 한숨이 그날따라 내 숨통을 더욱 더 꽉조여 오는데, 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네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

짜여진 시나리오에는 없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내 마음의 공간에 작은 틈을 낸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간신히 숨을 한 번 내뱉고 답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괜찮다’는 말 뒤에 숨겨 두었던 괜찮지 않았던 일들, 남들은 별일 아니라지만 너무 무거웠던 마음속 짐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돼버린 수많은 결과들, 그리고 아무도 모른 채 묻혀버린 내 노력들…. 떨리는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내 이야기가 시린 공기를 흔들었고 그 진동이 내 귀에 닿았다. 괜히 불쌍하고 외로워 보이는 내 모습에 서럽기까지 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 앞에서 꺼이꺼이 눈물을 쏟아내며 오래 고여 있던 마음을 털어냈다. 아버지는 당황하신 듯했다. 하지만 툭툭 끊겨 나오는 아들의 작은 목소리에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이셨다.

나는 아버지께 내가 얼마나 사진과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그 길을 가기 위해 무얼 포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아버지와 사회가 추구하는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라기보다 '나의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아버지는 내 나이 때부터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을 최고이자 최선으로 여기며 묵묵히 살아오셨기에 내 이야기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으셨다. 하지만 금세 부드럽게 표정을 푸신 후 입술을 떼셨다.

“오늘 처음으로 아빠와는 다른 아들을 알았네.

그래서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네.

너의 여행을 진심으로 응원할게.”

‘우리 아버지도 이런 따뜻한 말을 하시는구나!’ 아버지의 온화함이 마냥 어색하기만 했는데 이 세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너무 따뜻하고, 따뜻하고, 따뜻해서 눈꽃이 녹아내리는 듯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날 이후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아버지께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드렸다. 사진과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야기 여행’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하셨는데, 그때마다 둘 사이의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져 갔다. 여전히 잘못하는 아들이지만 두꺼웠던 그 벽은 사라졌다. 오래 걸린 만큼, 다가가는 첫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던 만큼 앞으로 보낼 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녹슨 마음을 연다는 건 때로는 시리도록 아프고 겁나는 일이다. 따스하게 다가와 나를 감싸주셨던 아버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려준 아버지의 주름진 손등이 감사하다.

 

최현민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였으며, 사진찍기와 글쓰기를 좋아한다. 아이티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찍은 사진들로 현지에서 사진전을 개최했으며, ‘가족사진 찍어주기’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현민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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