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 이야기 1-엄홍길 대장의 로체샤르 등반기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 씨. 그도 처음에는 ‘나에게는 못 오를 산이 없다. 바위산이든 설산이든 도전하겠다!’는 의지와 욕심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8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고봉에서 죽을 고비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면서 그가 배운 것은 ‘모든 부분에서 자신을 낮추고 순리적으로 풀어가는 지혜’였습니다. 말 그대로 고행자, 수도자와 같은 사고와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본지에 소개되었던 엄홍길 대장의 인터뷰 기사를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대하는 참 지혜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해발 고도 8,382m인 로체샤르의 정상을 향해 가는 엄홍길 대장
해발 고도 8,382m인 로체샤르의 정상을 향해 가는 엄홍길 대장

제가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후에 16좌*를 완등하려고 마지막 등정할 때, 당시에는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고통이 심했습니다. ‘14좌만 하고 끝낼 걸, 왜 또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했을까? 이러다 내 욕심으로 인해 죽겠다!’ 8천 미터 등반이 어떻다는 걸 너무나 뼈저리게 잘 아는 사람 아닙니까. 제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 별의별 극한상황도 다 경험했고, 가장 중요한 인간의 원초적인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들면서 8천 미터 산이 얼마나 엄청나고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잘 알지요. 그래서 이런 기도를 드렸어요.

‘16좌만 성공하게 해주십시오. 살아서 산에서 내려오게만 해주신다면, 남은 생애를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드리겠습니다.’

 

‘이거 될 것 같은데…’ 하면 실패한다

젊고 왕성할 때는 솔직히 의욕과 자신감만 가졌습니다. 국내에서 산을 오르다 보니까 국내 산들은 시시한 겁니다. ‘나에게는 못 오를 산이 없다. 기술적이든 체력적이든 못할 게 없다. 바위산이든 설산이든 어떻게 생긴 산이든 도전하겠다!’ 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좀 더 높은 산을 생각하게 되고, 좀 더 어려운 곳을 추구하게 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정신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모든 산악인들의 동경의 대상, 꿈의 대상인 히말라야의 산들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의지, 의욕만 갖고 겁없이 달려들었다가 사고 나고 실패하고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동료들이 죽는 일들을 보면서, ‘이건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8천 미터 산에 대한 경험이 많더라도 경험으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체력, 정신력, 기술이 다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순간부터 어떤 단계를 넘어서고 나니까, ‘인간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무조건 의욕만 갖고 욕심만 갖고 가서는 절대 그 산을 정복 못해요. 가장 중요한 건 산이 저를 받아줘야 되는 거고, 산과 제가 하나된 마음으로 올라가야 하는 겁니다. 산은 나를 받아줄 자세가 안 됐는데 내가 산을 정복하려고 한다면, 이건 절대 될 수 없는 거예요. 모든 부분에서 나 자신을 제일 낮추고, 모든 걸 순응하고 모든 걸 순리적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래도 성공할까 말까입니다. 그걸 깨달은 다음부터는 산에 올라가는 그 순간부터 진짜 말 그대로 고행자, 수도자와 같은 사고와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올라가다가도 어느 순간 저 자신도 모르게 산을 볼 때 욕심이 앞서게 되는 거예요. ‘이거 될 것 같은데, 될 것 같은데….’ 하면서 무리하게 되고 억지를 부리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바로 사고 나고 실패하게 되고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어느 순간까지는 낮은 마음, 평정심을 잃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욕심 부리게 되고, 그러면 분명히 문제가 터지더라고요. 사고 당시를 돌아보면, 욕심을 부리는 순간 아무것도 안 보이고 자만심으로 산을 업신여기게 되고, 그러면 사고가 납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욕심이 앞서면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 이상부터는 산이 나를 받아줘야 한다

마지막 16좌인 로체샤르에 도전할 때 솔직히 ‘이걸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라고 저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아,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최선을 다하다 죽으면 죽지’ 하고 나중에는 어느 순간 사람이 초연해지더라고요. 그게 쉽지 않은데 어느 순간 딱 정해졌어요. 로체샤르 등반을 세 번째 실패하고 네 번째 준비할 때였어요. 두 번째 등반할 때는 정상을 150미터 앞에 두고서 눈사태로 동료 두 명을 잃었고, 세 번째 가서는 정상 200미터를 남겨놓고 제가 과감하게 포기했어요. 그때는 완벽하게 준비하고 갔고, 정상의 날씨와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따라줬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서 포기를 했어요. 어느 순간, 뭔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더 이상 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 모든 게 다 괜찮았고, 날씨도 너무 좋았고, 200미터면 정상이 바로 눈앞 아니에요? 올라가면 되는데, 순간적으로 제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딱 드는 겁니다. 바로 직전까지는 ‘드디어 내가 세 번째 만에 성공하는구나. 정상에 올라가는구나’ 하고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딱 그 지점에 이르러서 잠시 쉬는 동안 티베트 쪽에서 바람이 순간적으로 쏴악 불어왔습니다. 머리가 썰렁해지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산이 조금 전까지 봤던 정상의 모습이 아닌 거예요. 제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형상이었어요. 저길 어떻게 올라가려고 여길 왔지? 산이 저를 절대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 정상의 모습이 너무나 의연하고 당당하고 ‘덤벼보려면 한번 덤벼보라’는 식으로 압도하는 거 있잖아요. ‘네가 세 번째까지 여기 올라왔는데, 네 동료도 잃었지만 아직까지 넌 마음의 자세, 정신세계가 안 갖춰졌다. 네가 조금 전까진 그렇게 욕심 부리면서 쉽게 오를 것 같았지? 이제 되나 해봐라!’ 하는 것 같아서 도저히 못 올라갔어요. 과감하게 포기했어요.

네 번째 갔는데 모든 걸 초연하게 했어요. ‘그래,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는 놔두고 그냥 최선을 다하자’ 하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생각하고 등반을 했어요.

또, 일부러 굉장히 어려운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아예 후회없이 실패하자. 안 되는 걸 내가 인정하고 16좌의 미련을 버리고 깨끗이 잊자’는 마음이었어요. 어느 날, 등반 중에 사고가 나서 셰르파*가 절벽에서 500미터 아래로 추락했는데, 그가 멀쩡하게 살았어요. 눈이 쌓여 있는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무릎만 골절된 거예요. 기적이었어요. 그 순간 생각을 한 거예요. ‘이건 분명히 이번에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적과 같은 일이 여기서 벌어졌는데, 이건 분명히 신이 돕는 거다. 그런데 그것이 분명히 한 번이지 두 번은 아닐 것이다.’

‘이 기회를 잡아야 된다.’ 그걸 놓치고 못 잡으면 16좌는 포기하고 15좌로 끝내려고 했어요. 그렇게 등반을 하는데, 진짜 어렵고 위험하고 힘드니까 등반이 진행이 안 되는 거예요. 캠프 구간하나 설치하는 데 20여 일이 넘게 걸리고 악전고투하는데 도리가 없는 거예요. 경사가 70, 80도 된 절벽으로 3천미터 거리를 등반하니까, 나중엔 대원들도 겁을 먹었고 셰르파들도 겁을 먹고 지치는 거예요. 베이스캠프에서 빙하지역으로 걸어가서 벽에 딱 붙는 그 순간부터는 내 목숨을 버려야 돼요. 내가 살겠다고 하면서 절대 거길 올라갈 수 없어요. 워낙 위험하니까. 전부가 돌덩이죠, 얼음덩어리죠, 눈사태 쏟아지죠…. 진짜 말 그대로 운명한테 맡기는 거예요. 거기서 살 생각을 하면 절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요.

시간은 점점 50여 일, 60여 일 지나죠. 계절은 바뀌어가죠. 날씨는 점점 안 좋아지죠. ‘도전해야 되나, 내려가야 되나?’ 고민했어요. 내가 그때 대원들한테 그랬어요. “철수는 없다!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우리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줄 것이다. 그 기회를 잡아야 된다. 그때까지 버텨보자!” 그러면서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정상 직전의 마지막 캠프까지 올라갔고, 정상 공격을 하는 날은 날씨도 좋았습니다.

설맹雪盲에 걸린 동료를 이끌고 제 4캠프까지

정상 가는 구간까지 능선을 타고 가는데, 이제까지는 빙벽을 타고 올라왔지만 능선을 타고 가는 게 굉장히 위험해요. 양쪽이 다 낭떠러지죠. 70미터 로프를 가지고 네 명이서 등반하는데 바람이 엄청 세게 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되더라고요. 정상에 딱 서는 순간 ‘드디어 내가 정상에 올라왔구나!’ 올라올 때 과정이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어느 순간 내가 뭔가를 잊었던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산을 보니까 한쪽은 벌써 저녁노을이 지고 있고, 한쪽에선 벌써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어요. 오후 5시쯤이었는데, 그 시간대에 8천 미터 정상을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시간이에요. 그리고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시간이에요. 나는 그때 시간이 두세 시쯤 되는 줄 알았는데, 5시쯤이었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당시 얼마나 몰입하고 집착했는지, 무아지경이 된 거죠. 그래서 그때 정상에서 사진 촬영하고 내려가려고 하는데, 그때 동료 한 명이 앞이 안 보인다는 거예요. 설맹雪盲. 그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날씨가 좋은 것도 아니고 날은 컴컴해져 가는데 바람은 엄청나게 불고! ‘아, 결국엔 이렇게 끝나는구나! 이렇게 끝나는구나! 그래, 이제 내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 왜? 살 수 없는 거니까’ 그 후배를 놔두고 내려갈 수 없는 거예요. 어떻게든 데리고 내려가야 되는데, 데리고 내려갈 수가 없는 데예요. 깎아지른 능선을 타고 내려와야 되는데, 설맹인 대원을 데리고 그게 어디 가능한 일입니까? 눈이 멀쩡하게 떠 있어도 그때는 워낙 지치고 힘들어서 내려가는 것이 위험한 상황입니다.

내가 정상 공격전에 대원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보름이 온다. 이 보름을 디데이로 잡자. 결국엔 자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분명히 보름날 전후로 날씨가 하루 이틀은 좋아질 것이다. 그 날을 디데이로 잡자.” 그래서 보름에 죽을 각오로 마지막 캠프에 올라 그 다음 새벽 대보름날에 정상을 공격한 거예요. 달을 이용하면 하산 길에 달빛이 비춰지니까 칠흑같이 어둔 밤보다 나은 거예요.

줄을 연결해서 내려오는데, 누구 하나라도 거기서 실수하면 끝장인 거예요.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으니까요. 맨 뒤에서 내가 로프를 확보해요. 고정해서 딱 잡고, 맨 선두가 먼저 줄을 타고 내려가요. 어느 정도 내려가면 뒤에서 줄을 타이트하게 당깁니다. 그 다음에 설맹인 대원을 줄 잡고 가게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쪽 한쪽으로 중심이 쏠리면 떨어져서 허공에 매달리는 거예요. “선배님!” 하면 “발을 힘껏 차!”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면 아이젠으로 팍 차고 올라가요. 그 다음에 내가 내려가는 거예요. 계속 그런 식으로 내려갔어요.

앞에 가는 사람들이 추락하지 않도록 줄을 잘 고정해야 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잘 때려 박아서 문제없지만, 계속 눈보라치고 어두컴컴해서 얼기설기 고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만약에 누가 한 명이라도 충격을 심하게 준다면 줄이 전부 빠져나가는 겁니다. 그러면 다 죽는 거죠. 줄을 정확하게 확보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거기서 내려오는데 너무너무 고통스럽더라고요. 능선 부분을 다 내려와서는 이제 절벽으로 하산해야 합니다. 마지막 캠프가 있는 곳으로 벽을 타고 내려와야 하는데,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너무 괴로워서 도저히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를 데리고 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살아야 된다’는 생각과 ‘살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겹쳤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두고 내려갈 수 도 없는 거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 절대 겁먹지 마라. 내가 어쨌든 너를 책임질 테니까.” 했어요. 그러면서도 살아야 되니까 버티는 거죠. 어떻게 어떻게 해서 새벽 5시 반에 캠프에 도착했어요. 전날 새벽 4시 반에 출발했으니까 25시간 걸린 거죠.

그동안 정말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그 엄청난 추위와 바람을 견디고 내려왔습니다. 설맹에 걸린 동료도 기적적으로 시력을 찾아 마지막 캠프에서 베이스캠프까지 무사히 하산했습니다. 2,700미터 절벽을 내려가려면 위험한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정말 절망적이고 끔찍했는데, 동료가 설맹에서 풀려 한시름 놓았습니다. 전원이 살아서 돌아온 건 기적이었어요. 그런 일들은 인간으로선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생명은 제 것이 아닙니다. 일도 제가 계획해서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아, 이런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는데 죽으면 되겠습니까? 제가 살아 있어야 하니까 산이 저한테 은혜를 베풀어 저를 살아 돌아오게 하신 거죠. 그러니까 살아남은 자로서 산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일이 앞으로 저의 남은 인생의 또 다른 목표가 되었습니다.

 

엄홍길
1960년 9월생. 어린 시절부터 산에서 자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부터 산에 몰입하게 됐다. 1985년 에베레스트 고산 등반을 시작으로 2007년 로체샤르를 등정해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했다.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해 나눔을 실천하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 최근에는 ‘네팔 오지마을 학교 건립 프로젝트’의 하나인 마칼루학교를 세우고 현지 어린이들이 연주하는 준공기념 음악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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