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 이야기 3

나는 영화예술을 전공하고 있다. 얼마 전에 장학금을 신청하느라 교수님께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는데 며칠 후에 교수님이 한번 만나자고 하셨다. ‘왜 보자고 하실까’ 궁금해 하며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하시며 ‘자기소개서에서 보통의 학생들과는 다른 네 모습을 보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고 하시면서 ‘요즘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더 잘 어필할지, 잘하는 걸 부각시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돋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느냐’고 의아해 하셨다. 나는 교수님께 “맞습니다, 교수님. 저도 그랬습니다. 저도 누구보다 잘하는 게 많고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이라고 시작해 나의 지나온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어른들로부터 ‘책임감이 강한 아이’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는 아이’라는 칭찬을 들으며 자랐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는데,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가 부도나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워졌다. 어린 나이에 빚쟁이 신세가 뭔지 느껴질 정도였다. 잘 지내시던 부모님은 자주 시끄럽게 다투셨고, 다툼 없이는 하루가 지나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열심히 하는 딸이 되고 싶었다. 힘들지만 내색하지 않고 잘 지내는 아이로 불리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버티며 지냈는데, 결국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남동생과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자 더 이상 착한 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도망쳐서 모든 일을 회피하고 싶어졌다. 집을 나와 대학교 기숙사에서 살며 부모님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혼자 살 수 있다’는 마음이 강하게 솟구쳤다.

대학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자라면서 늘 책임감이 강하다는 소리를 듣던 나였지만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알코올중독자로 판정받기 직전까지 갔고, 어느 날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 친구들과 심하게 싸워서 경찰서에 갔는데, 경찰관이 내게 부모님 성함을 말하라고 했다. 순간 너무 두려웠다. 부모님께 연락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졸랐지만 결국 엄마에게 연락해 엄마가 나를 찾아오셨다. 엄마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 같다’는 표현을 하셨다. 정말 죽고만 싶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 게시판에서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포스터를 보고 봉사단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1년 동안 활동하는 프로그램에 마음이 끌렸다. 아프리카를 지원해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여러 나라에서 지내며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지부장님과 현지인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난과 질병,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이 불평하지 않고 적은 일에 고마워하며 즐거워하는 걸 보니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났다. 그동안 부모님을 너무 무시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번은 케냐에서 ‘투마에니’라는 여자아이를 만났다. 투마에니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고, 아버지는 여러 번 바뀌었다고 했다. 가난해서 잘 먹지도, 배우지도 못하는 투마에니가 그런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늘 유쾌하기에 하루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투마에니, 너 힘들지 않아? 엄마가 밉지 않아? 학교에도 못 가는데, 불평스럽지 않아?” 투마에니는 나를 쳐다보며 “하쿠나 마타타!” 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의 스와힐리어였는데, 그 말에는 ‘너는 혼자가 아니야. 나는 네가 있어서 행복해’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투마에니의 마음을 생각하니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투마에니에게 작은 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투마에니는 내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교수님은 내 이야기에 굉장히 신기해하시고 좋아하셨다. “봉사라는 걸 무언가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가르침보다 더 큰 마음을 얻는 거구나.” 하셨다. 나는 왜 내가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썼는지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렸다. “교수님, 저는 케냐에서 잘한 게 없어요. 오히려 실수만 많이 했죠. 그곳에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걸 배웠어요. 요즘은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공부하는 전공분야에 대해서도 의논하고요. 저는 그동안 주로 혼자 지냈어요. 제 친구들 중에 고립되어서 지내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데, 불행해 보여요. ‘할 수 없는’ 아이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듣고 배우고 마음을 나누며 지내고 싶어요.”

그날 교수님과 전공 공부와 진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나를 응원해 주시는 교수님이 감사했고, 이런 마음을 갖게 해준 아프리카와 투마에니를 떠올리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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