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숙(공주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저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딸아이를 키워가며 살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딸아이가 아주 어렸던 1998년, 금융위기에 남편의 사업 실패와 연이은 도산으로 어렵게 생활해 왔습니다. 대학 시절 이른 결혼으로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저는, 결혼생활 내내 기회만 되면 언젠가는 학업을 계속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생활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고, 아이들 양육과 가사 부담으로 선뜻 집안 식구들에게도 학업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한 해 두 해 시간은 흐르고 어렵고 힘든 경제적인 압박의 굴레에 갇혀서 학업을 시작하는 것을 포기할까 머뭇거리던 중, 직장과 학업을 함께할 수 있는 희망적인 기회를 얻었습니다.

많은 갈등과 망설임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공부는, 직장생활뿐 아니라 가정생활에도 많은 활력이 되었고,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이의 양육과, 직장생활, 사이버 강의와 야간 수업 등 어려운 환경적 제약은 뒤따랐지만, 하나씩 알아간다는 즐거움과 ‘아는 만큼 보인다’는 깨우침은 생활의 일부가 되어 한걸음씩 꿈을 향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2007년,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였고, 야간강의와 주말강의를 들어가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니, 더 큰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편입하여 온라인 강의와 오프라인 강의를 들어가면서 주경야독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경제적인 학비지원이 전무했던 저로서는 한국장학재단의 ‘든든학자금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저금리에 부담없는 상환조건은 편안한 마음으로 학업에 열중할 수 있게 인도하였습니다.

어렵지 않게 4년제 대학을 마치고, 저는 또 다른 꿈을 꾸며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였습니다. 결혼 25년 만에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순간 놀라웠습니다. 빠듯했던 가정형편에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기가 버겁기도 하였지만 가족들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앞서 또 다시 한국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의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한국장학재단에서는 어김없이 대출금을 지원해 주었고, 저는 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생활의 리듬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직장에서 지급하는 특별장려금과 보너스로 상환계획을 세워 한 단계씩 조절해 나갔으며, 학교장학금으로 용돈과 책값 등을 충당해가며 더욱 더 열심히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공부를 하던 도중 위기상황도 있었고, 건강상태의 악화라는 변수가 작용하여 불가피하게 휴학을 해야 했습니다. 부담 없이 설계되었던 장학금 대출 덕분에 생활에 타격을 주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학업중단에 대한 아쉬움은 다시 마음 한켠에 자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2년을 허송생활하다 문득, 자아정체성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고, 사는 이유와 목표에 대해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강한 신념과 의지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살아왔다 자부했는데 무기력하고 나약해져버린 자아를 돌아보니 자괴감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때 나이 40대 중반, 여자 나이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니 가족들은 물론이고, 그동안 지지해주고 아껴주던 동료, 친구, 지인들마저도 “나이가 얼만데 지금 와서 왜 그 고생을 자처해? 대충 살아”라며 다양한 방법으로 만류를 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혼돈 속에서 스스로에게 수없는 반문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며, 진정 무엇이 되고 싶은가? 꿈꾸어 왔던 희망을 여기서 이대로 접어 두고 말 것인가? 나이가 장애가 된다면 여기서 멈추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러나 저의 답은 확고했고 하나였습니다. ‘해야 할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 나이가 무슨 상관이며 배움에 무슨 편견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대로 내 꿈을 접는다면 아무런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새로운 각오와 강한 신념으로 재무장한 저는 어렵고 힘들지만, 대학원 석사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꿈을 향해, 목표를 향해 꿋꿋이 가다보니 의아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지인들도 가족들도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박사과정에 지원하게 되었고, 합격의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저에게는 15학번의 딸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능 전공인 딸아이의 등록금과 개인교습비는 워킹맘으로 그리 넉넉지 않은 소득으로 생활을 유지해가는 저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합격통지서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한 결과는 한국장학재단의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딸아이는 한국장학재단에 국가장학금을 신청해 등록금 부담을 최소화했고, 또 다른 15학번인 나이 쉰의 극성스런 아줌마인 나는 한국장학재단의 ‘든든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대출로 우선 급한 불을 끄고 다음 상황에 대처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지인들은 또 다시 곱지 않은 시선과 비아냥거림으로 일축하였지만 저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란 격언처럼 감사하게도 학교 성적 우수 장학금으로 입학하여 예정됐던 학자금대출의 부담도 상당부분 줄일 수 있었고 어떠한 시련이 와도 반드시 꿈을 이루어 보이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자나이 50! 새로운 꿈을 꾸기 어렵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을 향해 저는 석사학위증을 내밀며 수줍게 웃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선언합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멈춘다면 어중이밖에 안 될 거야! 그러니 마지막 학위까지 마치고 내가 당당하게 그렇게 원하는 강단에 정식으로 서는 날, 아니 꿈을 이루는 날! 뜨거운 눈물로 인사하리라고…. 이렇듯 우여곡절 속에 한국장학재단의 장학금대출 제도가 없었다면 지난 날 풋풋했던 시절에 꾸었던 꿈을 지금까지 키워가면서 전진할 수 있었을까요?

때론 직장일, 가사일, 학업 등 1인 다역을 소화하면서 젊은 동기들을 따라가느라 벅차고 후회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나이는 결코 장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도전하십시오. 여러분 곁에는 한국장학재단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장학재단은 여러분들의 꿈을 이루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입니다.

박신숙
사회복지사는 천직이며 봉사와 나눔 실천은 아름다운 중독이라고 외치면서 다양한 사회복지 관련 교육 및 강의를 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상을아름답고 밝게 비춰가기를 소망하며 관계적 복지와 공감적 복지를 실현해 가는 사회복지사다운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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