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볼리비아 대사 과달루페 팔로메케 데 타보아다 Guadalupe Palomeque de Taboada

독특한 언어와 풍습을 지닌 36개 민족이 공존하며 사는 볼리비아. 팔로메케 대사는 인터뷰 내내 외교관이 꼭 갖춰야 할 가치관은 ‘존중’임을 강조했다. 하나뿐인 지구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존중이란 생각에서다.

 

볼리비아 국기를 놓고 포즈를 취한 팔로메케 대사. 오른쪽 국기는 1851년 제정되었으며, 왼쪽 국기는 2009년 새로 제정된 ‘위팔라’라는 국기로 다민족 연합국을 상징한다. 뒤로 보이는 회화는 볼리비아의 국민화가 로베르토 마마니의 작품이다.
볼리비아 국기를 놓고 포즈를 취한 팔로메케 대사. 오른쪽 국기는 1851년 제정되었으며, 왼쪽 국기는 2009년 새로 제정된 ‘위팔라’라는 국기로 다민족 연합국을 상징한다. 뒤로 보이는 회화는 볼리비아의 국민화가 로베르토 마마니의 작품이다.

지구 반대편 이웃나라, 볼리비아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볼리비아는 생소한 나라다. 우선 지구 반대편에 있어 지리적으로 거리가 멀다. 1998년 IMF 금융위기로 주볼리비아 한국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주한 볼리비아 대사관 역시 문을 닫았고, 두 나라의 외교는 한동안 단절되었다. 잦은 쿠데타와 정권교체로 볼리비아가 정치적·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던 점도 두 나라의 활발한 교류를 가로막는 요인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볼리비아는 이웃나라 못지않게 우리 삶 구석구석에 들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축구팬이라면 볼리비아 대표팀이 홈경기만큼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도 무시 못할 강팀으로 탈바꿈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선수들도 해발 3,700m나 되는 고지대에 위치한 볼리비아에만 오면 호흡곤란과 현기증 등 고산증세를 일으키며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라틴댄스 열풍을 불러일으킨 ‘람바다’나 ‘라밤바’는 모두 볼리비아 가수들의 노래를 원곡으로 한다. 또 볼리비아의 주요 공식언어 중 하나인 ‘아이마라Aymara’어는 한국어와 문법구조가 비슷할 뿐 아니라 언어학적으로 같은 어족에 속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국토 크기가 한국의 10배가 넘는 볼리비아는 배터리의 원료인 리튬 외에 구리, 주석 등의 광물과 석유가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천연자원을 수입해 공산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꼭 필요한 자원들이다. 지난해 3월에는 토지주택공사가 볼리비아의 산타크루즈 신도시 개발 사업자인 GEL사와 한국형 신도시를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두 나라 사이의 경제협력 규모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건기때의 우유니 사막 ⓒRolfcosar.jpg
건기때의 우유니 사막 ⓒRolfcosar.jpg

 

외교는 자국과 상대국이 함께 살 길을 찾는 것

과달루페 팔로메케 데 타보아다는 지난 2013년 주한 볼리비아 대사관이 다시 문을 열면서 부임한 첫 대사다. 한국생활 4년째를 맞이한 소감이 어떻냐는 기자의 질문에 팔로메케 대사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친절해서 좋다’며 말문을 열었다.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지났네요. 한국인은 교육수준도 높고 성품도 온화합니다. 특히 여성 혼자서도 밤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만큼 치안이 잘되어 있는 건 큰 장점입니다. 한국인들은 특히 시간약속을 잘 지키더라고요. 11시에 만나기로 하면 어김없이 11시에 옵니다. 그래서 업무스케줄을 잡기가 용이하지요.”

볼리비아의 공무원 규정에 따르면 외교관은 주어진 보직에서 최소 4년을 근무해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나 외교부 장관의 의지에 따라 기간이 달라질 수 있지만, 한국에서 4년을 근무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을 떠날 날이 가까워졌다는 의미이기에 못내 아쉽다는 팔로메케 대사. 한국은 그녀에게 네 번째 해외근무지다. 그녀가 첫 해외근무를 시작한 것은 1993년 멕시코에 일등서기관으로 발령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당시 남미 지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을 앞두고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할 준비를 하면서 나라들 사이에 자유무역협정FTA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었다. 국제무역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력을 살려 무역업무를 관장하던 팔로메케는 덕분에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팔로메케의 다음 해외근무지는 브라질이었다. 브라질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매끄러운 일처리와 의사소통을 위해 그녀는 부지런히 포르투갈어를 공부했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 브라질 사람들처럼 유창하게 포르투갈어를 구사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브라질 근무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팔로메케는 스위스로 근무지를 옮겨야 했다. 제네바에서 열리는 도하 라운드(WTO가 무역장벽 철폐를 위해 주최한 다자간 무역 협상)에 볼리비아 상임대표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의 주요산업은 농업이었기에 그녀의 협상결과가 볼리비아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되 상대국의 입장도 배려하는 외교협상의 묘를 살리고자 그녀는 고민을 거듭했다.

“외교나 국제무역에서 각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도록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외교정책의 방향도 바뀌니까 그 점도 반영해야 하고요. 늘 변화에 대처하는 순발력은 외교관의 필수요건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케이블 카, 텔레페리코. 라파스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케이블 카, 텔레페리코. 라파스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외교관은 그녀에게 천직이었다

팔로메케 대사의 부모님은 모두 법률가였다. 아버지는 볼리비아 변호사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어머니는 대법원에서 근무한 고위 공직자였다. 하루 24시간을 바쁘게 지냈던 부모님은 딸에게 시간을 아껴 쓰는 습관을 물려주었다. 6남매 중 맏이였던 팔로메케는 네 명의 여동생과 한 명의 남동생을 보살피면서도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우등생이었다.

“지금도 바쁘게 살아요. 모레는 한국 중소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설명회가 잡혀 있고, 그 다음 주에는 미니어처 등 작은 물품을 판매하는 알라시타 축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행사를 대사관 내부에서 했지만 올해는 외부장소를 대관해서 치를 계획입니다. 두 나라 간에 무역교류와 투자를 장려하고, 한국에 볼리비아 문화를 알리는 게 제가 할 일이니까요. 그러려면 책상에만 앉아 있어서는 안 되고 현장을 발로 뛰며 1인 다역을 소화할 수 있어야죠.”

와인축제나 커피쇼 같은 행사가 있을 때도 팔로메케는 개막식에 얼굴만 비치고 돌아오는 등 형식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사전에 볼리비아 부스의 사이즈를 확인하고 어떤 주제와 물품들로 부스를 꾸미고 채울지 일일이 손수 기획한다. 행사기간 동안에는 자리를 비우지 않고 계속 부스를 지키며 손님들을 맞이한다. 그녀는 ‘대사인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직원들도 정신 바짝 차리고 더 열심히 홍보한다’며 웃었다.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도 그녀는 스페인어를 고집한다. 물론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자국 문화의 일부인 스페인어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티티카카 호수 옆에 있는 스페인풍의 아름다운 마을, 코파카바나 ⓒ Pedro Szekely
티티카카 호수 옆에 있는 스페인풍의 아름다운 마을, 코파카바나 ⓒ Pedro Szekely

“한국인들이 스페인어에 더 많이 관심을 갖고 또 공부하길 바랍니다. 한국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스페인어를 접할 기회를 드리고 싶어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합니다. 최근 한국에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학생 수가 꾸준히 늘고 있더군요. 얼마 전 방학 중인 어느 대학교에 갔는데 스페인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아 반가웠습니다.”

사랑하는 조국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은 외교관의 숙명이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매시간 매순간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바로 조국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란다.

“독자들 중에도 외교관이 되길 꿈꾸는 분이 있을 줄 압니다. 외교관이 되고 싶다면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내 나라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해야 하죠. 볼리비아는 최근 한국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합니다. 볼리비아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한국의 기술력과 자본력이 결합한다면 두 나라는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의 마무리 인사까지 두 나라가 함께 발전하는 길을 모색하는 팔로메케 대사를 보며 외교관이야말로 그녀의 천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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