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더 빛나는 군인 리더십(3)

워싱턴부터 오바마까지, 지난 226년 동안 미국 대통령직을 거쳐간 인물은 모두 44명이다. 지난 80년 동안의 사례만 봐도 프랭클린 루즈벨트(37~40대), 트루먼(40·41대), 아이젠하워(42·43대), 케네디(44대), 존슨(45대), 포드(47대), 카터(48대), 레이건(49·50대), 조지 H. W. 부시(54·55대) 등 세 명에 두 명 꼴이다.

 
 
군 출신이 하도 자주 대통령 후보로 나서다 보니 지난 2012년 미 대선은 ‘80년 만에 군 복무경험이 없는 후보자들끼리의 대결’로 화제가 되었을 정도다. 세계 최강국 미국 대통령 중에는 왜 군 출신이 많을까? 단지 능력뿐만 아니라 리더십과 애국심, 도덕성을 겸비한 지도자를 뽑기 위해서다.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력,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위기관리 능력, 타인에 대한 포용력을 배우는 데 군대만큼 좋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군인이나 경찰 등 이른바 제복을 입은 사람들MIU, Men In Uniform을 존경하고 신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미국 항공사의 경우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에 빈 자리가 남으면 이를 이코노미석에 앉은 군인에게 제공한다. 음지에서 조국과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미국의 리더와 국민들이 군 복무를 가치 있게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즉 지도층이 실천해야 할 사회적 책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도덕성 때문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큰 호소력을 발휘하는 법! 미국 대통령들은 적극적으로 군 복무에 참여해 직접 실천하는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국민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데 기여했다.

 
 

1952년 12월 2일,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한국으로 향했다. 마침 하나뿐인 아들 존 아이젠하워 소령이 6.25전쟁에 참전 중이었다. 미8군 사령부를 찾은 그는 밴 플리트 사령관에게 자신의 아들 존 소령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존 소령은 3사단 대대장으로 현재 중부전선 최전방에서 싸우는 중입니다.” 밴 플리트의 대답이었다. 그러자 아이젠하워는 “제 아들을 후방으로 보내주시겠습니까?”라고 부탁했다. 외아들 지미가 6.25전쟁에서 전사한 밴 플리트에게는 몹시 거북한 부탁이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말을 이었다. “제 아들이 전사한다면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만약 포로가 되면 적군은 제 아들로 흥정을 하려 들 것이고, 국민들은 이를 국가의 자존심 문제로 생각하고
‘대통령의 아들을 구하라’고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의 작전에 차질이 생기겠지요. 이를 막기 위해 부탁을 드린 겁니다.” 그제야 아이젠하워의 뜻을 알아챈 밴 플리트는 즉시 존 소령을 후방으로 보냈다고 한다.

 
 

유럽의 명망 있는 가문에서도 군 복무가 후계자의 필수코스인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영국 찰스 왕세자의 아들인 해리 왕자가 헬리콥터 조종사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활약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역시 2차 대전 때 운전병으로 복무한 이력이 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국민총생산의 30%,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1/3을 차지하는 최고 재벌가문이다. 1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5대째 이어지고 있지만, 경영승계 과정에서 한 번도 조세회피 등으로 잡음을 일으킨 적이 없다. 오히려 휴일이면 손수 집 앞 마당의 잡초를 뽑으며 이웃들과 어울리는 소탈한 생활로 칭송을 받고 있다. 또한 ‘발렌베리 재단’을 설립해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활동을 뒷받침함으로써 수익금의 사회환원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 계승자의 후보가 되려면 최소한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①세계 명문대에서 MBA를 마칠 것. ②뉴욕이나 런던·파리 등의 국제 금융회사에서 근무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③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복무할 것!
‘가전업계의 벤츠’로 불리는 독일의 밀레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1899년 밀레와 진칸, 두 가문이 함께 창업한 밀레그룹의 후계자 경쟁에는 양가의 후손 수십 명이 참여하는 만큼 엄격하게 치러진다. 밀레그룹 아닌 다른 회사에서 4년 이상 근무하면서 ‘업계 최고’라는 헤드헌터의 추천장을 받은 뒤, 다시 밀레에 입사해 말단으로 근무를 시작해야 한다. 군 복무 또한 후계자 요건에 포함되는데, 현재 회장인 라인하르트 진칸 역시 기갑부대 장교 출신이다.

도움말 권영호
‘불량한 지휘관은 있어도 불량한 부대는 없다’ 한 마디로 요약되는 리더십의 힘을 믿고 35년 군 생활을 이어왔다. 육군대학·국방대학원을 졸업하고 수원대 일반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지휘관의 리더십에 대한 여러 논문과 저서를 발표한 학자형 군인. 2008년 공군 소장(방공유도탄사령관)으로 예편한 뒤, 현재는 남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섬김과 나눔의 리더십’과 전쟁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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