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젊은이

“엄마, 저 학교에 있는데, 친구들과 점심 먹고 있어요. 오늘 좀 늦을 것 같아요.”
“그래, 몇 시쯤 오니?”
“저녁 식사 전에 갈게요.”
“그래, 빨리 와라.”
“네, 엄마.”
희정이네 가족은 생활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엄마, 아빠, 희정이 그리고 두 동생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희정이네는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었다. 큰딸 희정이가 중학교 3학년이고 그 아래로 동생들이 초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엄마 혼자 자식들을 키운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새아빠를 희정이에게 소개했다.

 
 
“희정아, 새아빠야.”
희정이는 새아빠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그렇게 잠긴 희정이의 방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아침에 학교에 갔다 돌아와도 여전히 방문을 닫고 지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희정이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었다. 희정이가 유일하게 엄마에게 하는 말이 있다면 “엄마, 돈 줘”였다. 희정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그 삶은 여전했다. 엄마는 희정이와 대화도 하고, 마음도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무척 괴로웠다.

어느 날 희정이 엄마가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우리 희정이가 말을 하지 않아요.”
희정이 엄마는 나에게 그동안 있었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여름방학 때 대학생 월드문화캠프에 희정이를 참가시켜 보세요.”
“예, 그런데 희정이가 가려고 할지 모르겠어요.”
시간이 흘러 캠프가 시작되었고, 캠프 사흘째 되던 날 캠프 장소에서 희정이 엄마를 만났다.
“여기는 웬일이세요?”
“캠프에 참석했던 희정이가 어제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데리고 왔어요.”
“아주 잘 하셨습니다. 희정이가 여기서 지내다 보면 좋아할 거예요.”
캠프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난 뒤 희정이 엄마와 우연히 다시 만났다.
“목사님, 우리 희정이가 변했어요.”
“그래요? 아주 잘 됐네요.”
월드문화캠프의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반별 발표가 있다. 희정이네 반도 발표를 준비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림을 그려야 할 일이 있었다. 마침 희정이가 미술을 전공하고 있어서 필요한 그림들을 그리게 되었다. 희정이는 그림을 그리면서 “이 그림은 이렇게 그리면 어떨까?” “이 그림에는 이런 걸 붙여 볼까?” 하며 자연스럽게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그러는 동안 마음이 열렸다.

 
 
캠프 중에는 반별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보통 한 반은 10여 명의 학생과 교사로 이루어진다. 캠프가 진행되는 동안 같은 반 친구들은 항상 마음을 교류하는 시간을 갖는다. 평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를 무시하겠지, 나를 싫어하겠지’ 하는 생각 때문에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반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 꺼내놓는 것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서로 무척 가까워져서, 캠프가 진행되는 2주 동안 교사와 학생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캠프 초기에는 마음을 열지 못했던 희정이도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이 열려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새아빠 이야기도 하고, 그동안 가족과 대화하지 않고 지냈던 이야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의 고통을 내놓고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동안 문제라고 여겼던 일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캠프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 희정이는 엄마 앞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그동안 죄송했어요.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희정이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굉장히 기뻤다. 희정이의 두 손을 꼭 잡은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희정아, 우리는 가족이야. 서로 생각이 다를 때도 있고 마음이 안 맞을 때도 있어. 그렇지만 그게 무슨 문제겠니? 괜찮아.”
희정이 엄마는, 이제는 희정이가 집에 오면 설거지도 도와주고, 집안 정리도 하고, 학교 이야기도 한다며 무척 행복해 했다.
한번은 희정이 엄마가 내게 이야기했다.
“희정이가 차를 사자고 해요.”
“차 있으면 좋지요. 사세요.”
“저는 차를 안 사봐서 어떤 차가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 교회에 자동차 판매 일을 하는 분이 있잖아요. 그분하고 의논해 봐요. 그럼 잘 안내해 줄 거예요.”
“예. 그러면 되겠네요.”
당시 나는 예배당 옆 부속건물의 7층에 살면서 가끔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루는 예배당 앞 마당에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차가 서자 문 넷이 동시에 열리더니, 희정이네 가족이 내렸다. 그리고 희정이가 엄마 얼굴을 쳐다보면서 이야기하는데, 너무 멀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비싼 요리를 먹는 것도 행복한 일이겠지만, 돈이 많고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결코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요즘은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을 닫고 사는 사람이 많다. 한집에 사는 가족끼리 마음을 닫고 산다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친구 사이에 마음을 닫고 지낸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처음에는 사소한 일로 마음을 닫기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점점 멀어져 나중에는 가정의 화목이 깨지고, 학교가 차가워지고, 세상이 삭막해지고 날카로워진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고 말하기가 주저되고 어색할 때가 있지만, 입을 열어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서로 마음이 가까워지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기쁘고 즐거워진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예쁜 꽃을 심거나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아빠·동생, 그리고 친구들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렇게 살 때 이 세상은 밝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할 것이다.


* 글쓴이 박옥수
현 기쁜소식강남교회 담임 목사이며 사단법인 국제청소년연합IYF 대표 고문으로, 각종 중독과 범죄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있고, 세계 최초 마인드 강연 전문가로서 매년 국내외에서 개최되는 대학생캠프에 초청 받아 강연하고 있다. 저서로는 17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외 40여 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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