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으로 유럽을 석권한 그라시아스의 젊은이들_알토 오은희

알토는 항상 소프라노보다 낮은, 화음을 이루는 음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토 오은희는 ‘알토가 소프라노만큼 불렀을 때 합창은 완벽해진다’고 말한다. 또한 그라시아스 합창단 안에서 배우는 음악의 세계는 배우면 배울수록 놀랍다고 한다.

 
 
현재 합창단에서 알토 파트를 맡고 있습니다. 알토에 대해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신다면?
소프라노가 깨끗하고 맑은 소리라면 알토는 풍성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지닌 소리예요. 가장 높은 음역인 소프라노와 가장 낮은 음역인 베이스가 기본 멜로디, 건축으로 말하면 뼈대를 형성합니다. 그럼 그 중간 음역인 알토와 테너가 그 사이의 빈 음들을 채움으로써 꽉 찬 화성和聲이 완성되는 겁니다. 만약 소프라노와 베이스만 있다면 뼈대만 있고 속은 텅 빈 건물이나 마찬가지죠.
제 음역은 소프라노이지만 저음이 많이 섞여 있어서 알토를 맡고 있어요. 특히 한국인들은 유럽인들에 비해 체구가 작아 알토 특유의 풍부한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저희 단원들도 알토의 특성을 잘 살려 표현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제 소리의 장점을 더 찾아내고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고요.

이번 유럽 합창제를 준비하면서 알토 파트의 과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알토 파트장으로 이번 합창제를 준비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았어요. 이번에 저희가 부른 곡 중에는 소프라노나 베이스뿐만 아니라 알토나 테너가 메인 멜로디를 부르는 노래가 많았어요. 이제까지 알토는 소프라노를 뒷받침하는 음역이기 때문에 항상 두 번째라는 느낌으로 노래했어요. 그래서 정확한 음을 내려고 하기보다는 도와주는 느낌으로 노래하려고 할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박은숙 단장님께서 ‘알토는 세컨드 포지션에서 노래하지 마라’고 강조하셨어요. 그런데 이제까지 세컨드 포지션에서 부르는 데 익숙해져 있다 보니, 막상 노래를 부를 때도 퍼스트 포지션에서 부르지 않고 자꾸 세컨드로 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알토파트는 그동안 익숙해져 있던 자세를 깨는 것이 중요했어요.
개인적으로는 파트장으로서 파트원들을 이끌어주면서도 저 자신과의 싸움도 이겨내야 했어요. 저도 박자와 음을 완벽하게 내지 못할 때가 많아서 파트원들을 지도해주는 것이 무척 힘들었어요. 하지만 파트장의 역할은 무척 중요했어요. 각 파트장들끼리 모임을 가지면서 연습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체크하고, 날마다 연습계획도 짜서 파트원들이 빠르게 노래를 익힐 수 있도록 도와야 했어요. 게다가 참가곡들 중에는 8부 합창곡도 있어서 알토 파트도 퍼스트 알토, 세컨드 알토로 나눠져 파트당 네다섯 명이 불러야 했어요. 알토 전체가 한 가지 음도 제대로 잡기 힘든데 설상가상으로 둘로 나눠져 적은 인원이 한 멜로디를 책임진다는 것은 새로운 시도였어요. 다른 파트들도 비중이 커졌지만 알토가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이번 합창제 참가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는 무엇입니까?
<크루치픽수스Crucifixus>라는, 여덟 파트로 나뉘는 합창곡이에요. 한 파트씩 순서대로 각 멜로디를 담당하여 노래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정확한 음을 내는 것 못지않게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그래서 연습기간 내내 메트로놈
(박자기)을 켜놓고 모든 박자를 8분음표로 쪼개서 박자를 맞추는 연습을 했어요. 지휘자들은 ‘메트로놈을 몸 안에 넣고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확하게 박자를 느낄 수 있어야 해요. 저희도 메트로놈을 켜놓고 연습했지만 박자를 정확하게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꾸준히 연습한 결과, 지금은 모든 박자를 팔분음표로 쪼개서 움직일 수 있는 감각이 생겼어요. 박자 맞추는 것이 쉬워보여도 노래 하나만 일정한 박자로 부른다는 것도 정말 어렵더라고요. 모든 단원들이 한 사람 부르듯이 소리를 내려면 이 박자를 세는 것이 무척 중요했어요. 그래서 연습기간에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갈 때도 속으로는 계속 박자를 세는 훈련을 하며 다녔어요.
단원 모두가 첫 음을 똑같은 타이밍에 내기 위해 단장님도 연구를 많이 하신 끝에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동시에 ‘읏!’ 하고 호흡을 준비했다가, 몇 박자 뒤에 노래를 시작하기로 하자”고 정했어요. 그런데 속으로 ‘읏!’ 하고 똑같은 박자를 쉬고 들어가니까 첫 음 내는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합창제가 참가할 34명의 단원들이 드디어 똑같은 타이밍과 멜로디로 노래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대회 당일에는 어떻게 노래하셨습니까?
‘유럽의 유명한 합창단들 앞에서 우리가 과연 연습한 만큼이라도 노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단원들 모두 가슴이 떨렸어요. 설상가상으로 우리 합창단이 첫 번째 순서라 더 떨렸던 것 같아요. 음정이 100% 맞았던 것은 아니고 떨려서 놓친 부분도 많았어요. 그런데 무대에서 내려와서 녹음한 것을 들어보니 저희가 낸 음이 너무 깨끗하고 아름다운 거예요. 대회 기간 동안 무대에서 내려올 때마다 항상 ‘이번에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부분이 많았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지만 막상 녹음한 것을 들어보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렸죠. 그래도 대상을 수상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데 프로푼디스De profundis>라는 곡은 혼성합창 부문 지정곡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합창단들도 모두 불러야 했는데, 대회장에서 들어보니 우리와 노래를 부르는 깊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지휘자 선생님께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죄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며 주를 찾나이다. 하나님, 내 죄악을 씻어주소서’라고 가사 뜻을 설명해 주신 덕에 쉽게 표현할 수 있었어요. 물론 저희 역시 선생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에 맞게 표현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힘들었어요. 하지만 다른 합창단은 저희가 노래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만큼 깊이 있게 부르지 않는 게 느껴졌어요. 목소리와 창법은 훌륭했지만 노래를 표현하는 깊이가 얕았어요. 곡을 훌륭하고 깊이 있게 해석해 주신 지휘자 선생님이 새삼 감사했고, 그 덕에 <데 프로푼디스>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부를 수 있었어요.
대회를 준비하고 치르는 동안 몸은 많이 고되고 지쳤지만, 단원들의 마음은 한층 더 성숙해졌고 실력도 성장해 있더군요. 어려운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고, 세계적인 대회에 출전하면서 저희가 점점 세계적인 실력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세계를 돌며 공연하는 그라시아스 스케줄을 소화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어느덧 그라시아스에 들어온 지 7년째입니다. 세계적인 실력을 갖고 계신 교수님들로부터 음악을 공부하면서 노래란 단순히 입으로 부르는 것이 다가 아니며 한없이 배워야 하는 것임을 느껴요. 제가 처음 성악을 배웠던 러시아의 갈리나 선생님은 제가 어떻게 성악을 시작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 알고 계세요. 선생님은 말하듯이 노래하는 벨칸토 창법의 권위자이신데, 저를 보고 ‘처음에는 아기가 옹알이하듯 노래하더니 지금은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고 하십니다. 저는 소프라노 가수가 아니라서 솔리스트로 무대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는 데서 큰 기쁨을 느낍니다. 물론 그 과정은 절대로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 합창제를 준비할 때처럼 포기하고 싶은 한계를 경험하며 이뤄지는 것이지만요. 그렇게 배우는 동안 제 노래가 발전하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악가 중 마리아 칼라스라는 여가수가 있어요. 전설의 여가수로 불릴 만큼 뛰어난 노래솜씨를 갖추었지만 그녀의 말년은 그리 좋지 않았어요. 전성기 때 사귀게 된 남자 때문에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고 얼마 안 있어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어요.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여가수였음에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고 아까운 생을 마감한 거죠.
저는 마리아 칼라스처럼 유명한 여가수가 될 수는 없지만, 합창단에 있으면 제가 좋은 노래를 배울 수 있고 단원들끼리 함께 무대를 준비면서 마음을 맞추고 합창제에도 나가는 시간들이 저를 무척 행복하게 합니다. 실력이 좋아져도 마음이 높아질 수 없도록 조언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그라시아스에서 앞으로도 계속 노래하고 싶습니다. 

합창단에서 배운 음악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까?
대학시절에 아프리카 우간다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심한 말라리아에 네 번이나 걸렸어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나는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만났던 아프리카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이 제 마음 문을 활짝 열리도록 했거든요. 그래서 그라시아스에 들어온 뒤에도 한동안 아프리카에 돌아가고 싶은 향수병에 빠져 지냈습니다. 하지만 노래를 배우는 즐거움을 조금씩 맛보면서 그 향수병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라시아스가 매년 아프리카에 가서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해마다 아프리카에 가면 매년 발전하고 달라져 있는 것을 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원래 노래를 좋아하고 또 노래를 잘하는 목소리를 타고 났어요. 그들의 노래는 어찌 보면 투박하고 호전적이지만, 아무런 음악적 지식이 없는데도 듣는 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런데 저희가 가서 공연하면 클래식음악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한껏 느끼고 감동을 받은 나머지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저희에게 절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공연이 끝나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저희가 부른 노래를 계속 따라부르기도 하고요.
그렇게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제가 평생을 바쳐 배운 음악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아프리카에 음악학교가 생기면 꼭 그 학교의 총장이 되어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가슴 따뜻한 세계를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인물사진 | 홍수정 기자
공연사진 제공 | 그라시아스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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