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홍성태 교수 <생활 속의 마케팅> (1)

“홍성태 교수님요? 교수님이라기보다 개그맨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익명으로 나가게 해 달라고 신신당부하며 귀띔해 준 어느 학생의 수강소감이다. 매주 월·수요일 오후 3시, 한양대학교 경영관 501호에서는 개그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강연콘서트가 펼쳐진다. 주인공은 경영학과 홍성태 교수로, 세계적으로 히트한 브랜드들의 흥미진진·의미심장한 사례를 듣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마케팅에 대한 지식과 안목은 덤으로 갖춰진다.

 
 

“그래, 우리도 저런 교양강의가 있어야 해!”
지금으로부터 3년 전, 한양대학교 재단 이사장 김종량 박사는 TV를 보던 중 무릎을 쳤다. 그가 보던 프로그램은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특강 <정의Justice>였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가 인부 5명이 있는 철로쪽으로 달리고 있다. 그냥 두면 5명이 죽지만, 비상선로로 방향을 바꾸면 1명이 죽는다.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5명보다는 1명이 죽는 편이 나을까? 생명이 단순히 1<5처럼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가치인가?’
이런 예화를 통해 샌델 교수는 ‘과연 우리가 올바르다고 믿는 것이 진정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매년 천 명 넘는 하버드생이 수강하는 이 강의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도 소개되어 150만 부 넘게 팔리는 등 ‘정의’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얼마 후 김종량 박사는 교양교육과정 편성 담당자들을 불러 이렇게 지시했다.
“샌델 교수의 <정의>처럼, 우리도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한양대 대표 교양강의를 만들어 봅시다.”
학생들의 강의평가 결과를 토대로, 잘 가르친다고 정평이 난 이른바 ‘Best Teacher’ 교수들을 선정해 교양강의를 개설했다. 고전 인문학 대중화의 기수인 정민 교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자교실>, 화학과 김민경 교수의 <생활 속의 화학>, 철학과 이상욱 교수의 <상상력과 과학기술> 등…, 이제 소개할 홍성태 교수의 <생활 속의 마케팅>도 그 중 하나다. 이 교양강의들은 각 과목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수강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령 <생활 속의 마케팅>은 경영학과 학생들이 수강할 수 없다. 이들 강의들은 모두 인터넷 수강신청이 시작된 뒤 불과 몇 초 만에 정원이 찰 만큼 인기 높은 명강의다.

7C+7E=고객을 행복하게 하는 마케팅의 본질
사실 홍 교수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크고 작은 기업들과 경영·마케팅연구소 등에서 앞다투어 자문 및 강연을 요청해오는 명컨설턴트이자 명강사다. 이런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게 한양대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조선일보>의 주말판 비즈니스 섹션 ‘위클리 비즈’에서는 그를 초청해, 독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실시한 뒤 그 내용을 2회에 걸쳐 소개하기도 했다. ‘브랜딩과 마케팅이라는 난해한 주제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내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는 게 그의 강연을 들어본 사람들의 소감이다.
여기서 우리는 브랜드brand라는 명사가 아닌, ‘브랜딩branding’이라는 동명사가 사용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브랜드의 이미지와 콘셉트는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고민하고 끊임없이 완성해 가야 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럼 마케팅은 무엇일까? 사전에는 ‘제품을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원활하게 이전하기 위한 기획활동’이라고 나와 있지만 홍성태식 정의는 간단명료하다. 바로 ‘고객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
“저는 마케팅의 역할이 복덕방과 같다고 봅니다. 기업은 집을 팔러 온 사람, 소비자는 집을 사러 온 사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파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비싸게 팔고 싶고, 사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죠. 그 둘 사이를 중재하는 게 바로 마케팅입니다. 오케스트라를 예로 들까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모두 청중들을 보고 연주합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지휘자만은 오케스트라의 일원이면서도 청중 쪽에서 들으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합니다. 어떻게 하면 청중을 행복하게 할지를 생각하고 조율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브랜딩과 마케팅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브랜드 자체의 콘셉트를 구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콘셉션Conception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7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홍 교수는 Conception의 머리글자인 C를 따 7C로 이를 정리했다. 고객지향성Customer orientation, 응축성Condensation, 창의성Creativity, 지속성Continuity, 조화성Combination, 일관성Consistency, 보완성Complementarity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브랜드를 체험Experience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Experience의 머리글자인 E를 따 7E로 요약된다. 비본질적Extrinsic 요소, 감성Emotion 요소, 공감Empathy 요소, 심미적Esthetics 요소, 스토리Episode 요소,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요소, 자아Ego 요소다. <생활 속의 마케팅> 수강생들은 한 학기 동안 이 7C와 7E를 토대로 효과적인 브랜딩과 마케팅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는 그의 베스트셀러인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에도 잘 나와 있는데, 딱딱한 문어체가 아니라 강의하듯 얘기체로 쉽게 쓴 덕에 경영학도와 마케터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됐다.

 
 

쉽지만 깊이 있게, 마케터로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배운다
자, 이만큼 수업내용을 파악했으면 이제는 직접 강의를 들어볼 차례다. 기자가 한양대를 찾은 5월 19일, 이날 수업주제는 공감Empathy이었다. 홍성태 교수는 아들과의 에피소드로 강의를 시작했다.
“저희 둘째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일이었을 겁니다. 한번은 제 생일이라고 뭔가를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해 와서는 저한테 뜯어보라고 하더군요. 하도 귀여워서 ‘아빠 생일인지 어떻게 알았니?’ 했더니 ‘아빠 생일을 제가 안 챙기면 누가 챙겨요?’ 하더군요. 포장은 어찌나 야무지게 테이프로 여러 겹 둘러 말아놨는지! 한참동안 포장을 뜯었더니 뜻밖에도 장난감 물총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죠. ‘선기야, 너 아빠가 물총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어?’ 그랬더니 아이는 ‘내가 아빠 맘을 잘 알죠~ 나도 물총을 제일 좋아하거든요’라고 하더군요.”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이니 아빠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아이의 순진무구함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마케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마냥 웃어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다. 기업도 자신들의 상품과 서비스가 진정 고객이 원하는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고 ‘마이 웨이’를 고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말로는 역지사지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상대방도 자신과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으리라 단정해 버리곤 한다. 진정한 마케팅이란 앞서 말한 대로 고객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 아닌가!
이처럼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례들을 경영학적 안목으로 재해석해 수강생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생각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홍 교수 강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 따로 예습을 해 가지 않아도 수업내용이 저절로 이해가 된다. 수업이 끝나면 그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준다. 수업시간에 배운 브랜딩과 마케팅의 성공요인을 잘 활용해 히트한 사례를 조사해서 제출해야 한다. 단순히 ‘유익하고 재미난 수업이었다’의 차원을 넘어 마케터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고력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가령 7E 중 감성요소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면, 조미료 ‘다시다’ 광고를 보면서 ‘아, 다시다가 성공한 것은 따스한 어머니의 이미지로 친숙한 탤런트 김혜자를 모델로 기용했기 때문이구나’를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것.

학창시절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기에 명강사가 되었다?
홍성태 교수 강의의 우수성은 여러 수상경력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2001년에는 한양대 경영대학원 총동문회로부터 최우수 교수로 선정되었으며, 2005~2008년에는 4년 연속 한양대 경영대학이 선정하는 우수 강의교수로도 뽑혔다.
기자가 보기에 ‘최우수 교수’의 강의비결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끝을 모르는 호기심이다. 한양대 경영관 6층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는 벽면 한 쪽이 완전히 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책의 종류도 본업인 심리학과 경영학 외에 문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하다. 한때 와인에도 심취한 적이 있으며, 역사가 20년이 넘은 클래식 음악동우회의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 찍기 또한 본인 말로는 ‘심각하게 하는 취미’란다.
두 번째 비결은 여행이다. 교수라는 직업상 방학이라는 ‘합법적 휴가(?)’를 보장받는 그는 방학이면 30여 명의 미대 교수나 디자이너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미적 감각을 갖춘 사람들은 그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잡아내는 특별한 안목이 있다. 여기서 그의 세 번째 비결인 메모벽이 발휘된다. 동행한 미대 교수나 디자이너들이 해준 이야기들을 적어 두었다가 강의나 외부강연 때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물론 위트와 유머를 곁들여서다. 질긴 고기에 파인애플을 갈아넣으면 부드러워지듯, 딱딱한 경영학 이론이 대중들도 소화하기 쉬운 재미있고 맛있는 강연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명강의의 비결은 달랐다.
“학창시절 그렇게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어요. 그러다 대학 2학년 때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형님한테 경제학에 대해 배웠어요. 그전까지 경제학은 딱딱하고 어려운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공부해 보니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학문이더군요. 그때부터 조금씩 공부에 흥미와 열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학창시절 수업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은 경험이 있기에,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을 잘 이해하고 쉽게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노력이 더해졌다. 미국 미주리대 마케팅학과 조교수 시절, 수업이 있는 날이면 그는 전날 자정에 강의실로 갔다. 정성껏 준비한 수업안(레슨 플랜)을 놓고 새벽 4~5시까지 리허설을 했다. 날이 밝으면 집에 돌아가 샤워를 하고 잠깐 눈을 붙인 뒤 다시 나와 아침 수업을 진행했다. 80여 명의 수강생 이름은 모조리 외워 불렀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학생들의 투표로 뽑히는 ‘올해의 교수Faculty of the Year’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내 이름 석 자가 바로 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하라
홍성태 교수는 한양대 경영학과 73학번이다. 학부 졸업 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후 영남대 전임강사가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갈급하던 그는 1년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리노이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990년 귀국한 뒤로는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근 40년째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셈이지만, 그는 ‘여전히 마케팅과 브랜딩은 난제難題’라고 말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브랜드가 뜨고 집니다. 외국의 경우 성공한 브랜드 사례가 정말 많지만, 우리나라 브랜드는 하이트 맥주나 초코파이 등 몇몇을 제외하면 성공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언젠가 하얀국물 라면이 인기를 끌었잖아요? 그래서 강연이나 책에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새 인기가 사그라들더군요. 트렌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모든 게 급변하는 시대이다 보니, 한창 뜨다가도 금방 잊혀지는 브랜드가 부지기수입니다.”
성공한 기업들의 방식을 분석하고 모방하는 것을 벤치마킹이라고 한다. 하지만 마케팅만큼은 벤치마킹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홍 교수의 생각이다. 브랜딩이라는 화려한 꽃도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기에 피어나는 법. 근본을 생각하지 않고 꽃만 따라하는 것은 생명력 없는 조화를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브랜딩과 마케팅은 어려운 주제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어렵게만 생각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우리만의 브랜드를 갖고 있고, 이를 끊임없이 관리하는 중이니 말이다.
“여러분의 이름 석 자가 바로 브랜드입니다. 여러분이 뭔가 잘못을 저지르면 어른들이 ‘이름값 좀 해라’ ‘집안 망신이다’ 하고 꾸지람을 하시잖아요? 가문의 브랜딩을 하라는 말씀이죠.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수십 년이 넘었는데 얼마 전 모교에서 기부금을 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저는 더 이상 그 학교 학생이 아닌데, 왜 기부금을 내야 할까요? 기부금을 냄으로써 그 학교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야 내 브랜드 가치도 덩달아 올라가는 거 아니겠어요.”
매학기 첫 시간 때 그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와 함께 강의를 시작한다. ‘저는 여러분이 이 수업에서 지식만 얻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세상을 올바로 사는 태도와 사고하는 방식도 함께 배우기 바랍니다’라고. 기업을 경영하기란 전쟁만큼 치열한 일이다. 작전이 잘 들어맞아 큰 승리를 거둘 수도 있지만, 언제 어디서 적의 총알이나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고 자칫 지뢰를 밟아 큰 희생을 치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경영자들은 무슨 고민을 하고 어떤 제품을 만들어 이겨냈을까?’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짜공부라고 그는 믿는다.
“얼마 전 은퇴한 박지성 선수의 발 사진, 한 번쯤 보셨지요? 누구나 발전하려면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박수치고 환호합니다. 그 성장통成長痛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진 | 홍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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