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16개 건축대학 연합회UAUS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건축. 시공도 많은 사람이 함께 해야 하고, 미적·기능적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기에 설계도 함께 공유하면서 수정을 반복한다. 서울시 16개 건축대학 연합회UAUS 회원들이 도면 그리기와 그래픽 작업 정도인 학교 수업에서 벗어나, <2014 파빌리온 전시회>를 선보였다. 준비에서 전시까지, 건축 현장을 축소판으로 경험하며 협동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느꼈다.

 
 
각양각색 독특하게 생긴 파빌리온(체험 가능한 건축 작품) 16개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곳곳에 세워져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5월 3일부터 8일까지 서울시 16개 건축대학 연합회UAUS(Union of Architecture University in Seoul)가 대학별로 파빌리온을 하나씩 만들어 전시회를 연 것이다. 파빌리온의 크기는 가로4m×세로4m×높이4m. 파빌리온의 모습이 신기하게 보일 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도 가능해 남녀노소 모두 관심을 가졌다.
경기대에서 만든 파빌리온은 천장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우산들의 손잡이 끝 부분에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게 장치했다.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는 장을 만들자는 취지. 그 작품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국민대에서 만든 파빌리온은 비닐 막으로 된 천장 위에 물을 채워 놓고, 천장에 연결된 줄을 당겨서 물이 파동을 일으키게 했다. 파동을 통과한 햇빛이 바닥에 금빛 물결을 수놓는 모습이 신비로워서 사람들이 서로 줄을 당겨보려고 했다. 
전시회는 파빌리온을 만져도 보고, 오르기도 하고, 사진촬영도 하며 체험할 수 있게 기획되었고, 시민들은 쉽게 건축에 흥미와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건축계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어느 발레단에서는 특정 파빌리온을 무대 디자인에 반영하고 싶다고 했으며, 어느 유치원에서는 놀이공간을 만들어주길 부탁하기도 했다. 
파빌리온을 놀이터 삼아 노는 어린아이들, 건축물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하는 시민들…. 그들을 보며 UAUS 회원들은 1년 동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쌓인 피로가 다 사라지고, 지나온 시간이 소중하기만 하다.

건축의 가치를 알리고 싶어서
올해로 3회를 맞은 UAUS 파빌리온 전시회는 ‘서울의 건축을 되돌아보다Refocus Seoul Architecture’라는 주제로 우리나라의 건축 현실을 되돌아보고, 건축의 예술적 가치를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준비했다.
우리나라는 좋은 건축물이 태어나기에는 제도적 뒷받침이나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해 환경이 척박하다고 한다. 지난해 1월 건축설계그룹 ‘공간’이 부도나면서 사옥이 150억 원에 매각됐다. 그 값은 순수하게 부동산 가격으로, ‘공간’ 사옥이 가지고 있는 미적·예술적 가치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설계자가 혼신의 힘으로 건물에 담아낸 아름다움은 그 값이 없었던 것이다. 미술작품들이 고가에 거래되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건축이 예술로서는 그 가치가 현저히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레고레타가 설계해서 제주도에 세웠던 건물 <까사 델 아구아>도 건축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철거됐다. UAUS 회원들은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러한 건축 현실에 아픔을 느끼며, 전시회를 통해 건축의 가치를 알리고자 한 것이다. 
UAUS 기획단 17명은 1년에 걸쳐 장소 섭외, 후원 요청, 시공, 홍보 등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실제로 건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파빌리온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예산은 보통 100~300만 원. 디자인한 것을 주문 제작해야 하기에, 파빌리온의 재료값만 해도 굉장히 비쌌다. 필요한 돈을 기업을 찾아다니며 후원이나 협찬을 요청했지만 지원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외국에서는 학생에게도 충분히 가능성을 열어두고 건축가로 인정해주며 많이 지원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이 건축한다고 하면 ‘아직 어린데 어떻게 하겠어?’ 하는 편견 섞인 시선이 강했다. 학생들은 외부의 도움 없이 전시회를 기획하고, 홍보해야 했다. 언론사를 다니며 전시회 취재를 부탁했지만 학생들이 하는 전시회를 주목하는 언론사는 없었다.

소통을 배우다
장소 섭외를 위해 마로니에공원 담당 구청인 종로구청을 처음 찾아갔을 때, 담당 직원은 무조건 안 된다고 말했다. 파빌리온 시공 중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학생들이 만드는 작품이 얼마나 퀄리티가 있을지 믿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UAUS 회원들은 기획 목적과 전시의 타당성을 설명하며 직원들을 설득했다.
“우리 주장만 하지 않고, 그분들의 입장을 충분히 수용하면서 전시회를 최대한 잘 진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했어요. 직원들의 요청에 따라, 공원 중간에 세우려고 했던 파빌리온의 위치를 사이드로 바꾸었고, 시공하는 기간에는 밤을 새우면서 관계자가 상시 대기하여 다친 사람이 없는지 점검하는 등 타협점을 찾으려 많이 노력했죠.” 
시공 첫째 날, 현장을 찾은 구청 직원들은 회원들이 공구가 작업존 밖으로는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안전하고 철저하게 전시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한, 완성된 파빌리온의 퀄리티도 훌륭했다. 파빌리온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하고, 수고한다며 음료도 사주는 등 관심도 가졌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구청 직원들은 ‘다음부터는 마로니에공원에서 전시회를 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며 이들을 믿어주었다. 
그렇게 이들은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사회에 나가면 건축업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든 대화해야 할 일이 많다. 성공적인 전시회를 위해 자신의 의견을 양보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한 이들은 어떤 공부보다 소중한 인생 공부를 한 것이다.  

▲ 1.2. 이화여대 지하 건축물인 ECC를 재조명한 파빌리온. 아이들이 놀이터 삼아 놀고 있다. 3. 1년간 수고한 기획단원들. 인사동에 위치한 쌈지길을 표현한 명지대 파빌리온 앞에서. 4. 단국대 파빌리온. 삶의 질을 추구하고, 새로운 문화와 환경을 창조하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쪽방촌을 표현했다. PVC 호스를 사용하여 약한 개체가 서로 밀도 높게 엮이고 의지함을 형상화했다. 5. 16개 작품 중 은상을 수상한 성균관대 파빌리온. 동심원들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금호건설의 복합문화공간 ‘Kring’을 재해석 했다. 종이 파이프를 주재료로 사용하여 구조체부터 외피까지 원형 파이프로 이루어진 큐브를 만들고, 가깝고 먼 파이프들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입체형의 새로운 동심원을 구현했다. 6. 거리 공연 가수가 고려대 파빌리온을 무대삼아 노래하고 있다.‘이야기가 있는 파빌리온’으로 이름을 붙인 이 파빌리온은 관람객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종이를 자유롭게 매달게 하여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7. 경희대 파빌리온. 직선들을 중첩해 나가며 이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한국의 흐름을 담아내는 건축가 김중업의 건축요소를 밧줄을 재료로 이용해 나타냈다.
▲ 1.2. 이화여대 지하 건축물인 ECC를 재조명한 파빌리온. 아이들이 놀이터 삼아 놀고 있다. 3. 1년간 수고한 기획단원들. 인사동에 위치한 쌈지길을 표현한 명지대 파빌리온 앞에서. 4. 단국대 파빌리온. 삶의 질을 추구하고, 새로운 문화와 환경을 창조하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쪽방촌을 표현했다. PVC 호스를 사용하여 약한 개체가 서로 밀도 높게 엮이고 의지함을 형상화했다. 5. 16개 작품 중 은상을 수상한 성균관대 파빌리온. 동심원들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금호건설의 복합문화공간 ‘Kring’을 재해석 했다. 종이 파이프를 주재료로 사용하여 구조체부터 외피까지 원형 파이프로 이루어진 큐브를 만들고, 가깝고 먼 파이프들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입체형의 새로운 동심원을 구현했다. 6. 거리 공연 가수가 고려대 파빌리온을 무대삼아 노래하고 있다.‘이야기가 있는 파빌리온’으로 이름을 붙인 이 파빌리온은 관람객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종이를 자유롭게 매달게 하여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7. 경희대 파빌리온. 직선들을 중첩해 나가며 이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한국의 흐름을 담아내는 건축가 김중업의 건축요소를 밧줄을 재료로 이용해 나타냈다.

생각지 못한 난관은 협동으로…
파빌리온을 설치하다 보면 예측하지 못한 상황도 만난다.
“들어설 자리가 평지라고 생각하고 설계했던 성균관대 파빌리온은 실제 들어설 자리가 경사지였어요. 파빌리온이 세워지지 않았죠. 다른 학교 팀들도 모두 모여 파빌리온을 흔들어도 보고, 바닥에 부재료를 대보기도 하고, 끈을 연결해서 당겨보기도 했어요. 결국 파빌리온을 정면이 아닌, 대각선으로 살짝 틀어서 세워보니 잘 섰어요. 시공 마감 두 시간 전에는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어요. 방수 코팅 작업을 아직 마치지 못한 상태였던 터라 종이를 주재료로 사용한 한양대 파빌리온은 상당 부분이 젖어버렸죠.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여 물에 젖지 않은 종이 부분을 사용하여 만들 수 있는 다른 모양의 파빌리온을 만들었어요.”
혼자서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여러 사람이 협동하면 가능하고, 머리를 모아 생각하면 답이 있고, 서로 도우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 여러 난관을 겪으며 사람은 공생해야 하는 존재라는 가장 큰 가르침을 얻었다.
한 대학교 당 15명이 한 팀을 이루어 파빌리온을 시공하는데, 시공 시간으로 32시간이 주어졌다. 8톤 트럭에 실려 온 많은 양의 재료를 다른 학교 학생들도 함께 나르니 훨씬 쉽고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새벽에는 철물점 문이 닫혀 있어 필요한 공구를 살 수 없었지만, 필요한 것을 서로 다른 학교 팀에서 빌릴 수 있었기에 제시간에 파빌리온을 완성할 수 있었다.
회원들은 전시회를 진행하면서 친구를 얻었다. 전시회를 통해 만난 소중한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려고 꾸준히 연락하고, 방학이 되면 건축답사나 여행도 함께 가려고 한다.

어떤 문제 앞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를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UAUS 회원들은 1년 전에 비해 굉장히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 변했다.
전시회 준비를 시작할 때만 해도 대부분 기업에서 후원이 어렵다고 하여 ‘과연 후원받을 수 있을까?’ 염려했다. 후원 요청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으면 ‘이제 다 끝났구나’라는 생각에 낙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연락하고, 될 때까지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경험은 마음에 아주 큰 힘을 갖게 해주었다. 이제 이들은 어떤 일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히 진행해 나가며,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전시회를 마치고 시상식을 할 때였다. 시상식 한 시간 전에 행사 장소였던 지하 다목적홀 대관이 절차상의 문제로 취소되었다. 전 같았으면 ‘어떡하지?’ 하며 발만 동동 굴렀을 텐데, 모두 동시에 “야외에서 하자” 하고 말했다. 어떤 팀은 현수막을 달고, 어떤 팀은 마이크를 빌려오고, 어떤 팀은 책상을 세팅하고…. 일들을 나누어서 준비하니 금세 멋진 시상식 장소가 탄생했고, 순조롭게 시상식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실제로 부딪치면서 되는 것을 보며, 어떤 문제 앞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된 것이다.

이제 어려움도 즐길 줄 아는 UAUS 회원들. 전시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부쩍 성장한 이들은 계속 도전하려고 한다. 더 큰 꿈을 가지고 달려가려고 한다. 서울시 건축대학 연합회에서 나아가 한·중·일 건축과 대학생들이 연합해 파빌리온 전시회를 갖고, 더 나아가 전 세계 건축과 대학생들이 연합해 파빌리온 전시회를 갖길 바라고 있다. 건축을 주제로 세계의 건축학도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이다.
“훗날, 슬럼화된 곳이나 재개발지역 등에 멋진 건물을 지어 그곳을 새롭게 탈바꿈시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한다면 건축가로서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요.”라고 말하는 이들. 남을 위하는 곳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미래 건축물에는 다른 무언가가 담겨 있을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거나 포근하게 하거나 행복하게 하는….

자료사진 제공 | U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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