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계의 신화를 쓴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Leonardo Leyva Martinez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일곱 시즌 연속 우승을 이룬 삼성화재 배구단. ‘2013~2014 NH농협 V리그’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을 3-0으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우승을 이끌어낸 주인공 레오. ‘쿠바 탱크’ ‘쿠바 특급’ ‘역대 최고의 용병’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는 시즌 최고 선수로 평가받았다. 프로 스포츠史에 새로운 역사를 남긴 삼성화재의 일곱 번째 우승에는 누구보다 레오 선수의 땀과 눈물이 담겨 있다. 입단 당시 주목받지 못한 그가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까지, 배구 코트 위에 남긴 그의 족적을 따라가 보았다.

▲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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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천안 유관순체육관.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챔피언결정전 4차전. 두 세트를 먼저 잃은 현대캐피탈은 코트에 마지막 투혼을 쏟아부었다. 박빙의 승부가 이어져 양 팀의 점수는 20 대 20. 삼성화재의 세터 유광우는 공을 레오에게 토스했다. 높이 뛰어올라 내리꽂은 레오의 스파이크는 현대캐피탈 리베로 여오현의 혼신을 다한 수비로 삼성화재 코트로 돌아왔다. 공은 다시 레오에게 향했고, 레오의 스파이크는 이번에도 여오현의 놀라운 수비로 다시 삼성화재 코트로 돌아왔다. 세 번째 공격 역시 레오의 몫. 그리고 공은 다시 삼성화재 코트로 돌아오지 못했다. 레오~! 레오~! 체육관 가득 울려 퍼지는 그의 이름.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인, 쿠바에서 온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 한국에서는 그를 레오라고 부른다.

레오 선수는 삼성화재 배구단의 엄청난 훈련을 소화한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지만 그는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었고, 그럴 때면 ‘과연 이 체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지?’를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언론의 찬사와 MVP는 과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해에는 팀에서 석진욱, 여오현 등 고참 선수들이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는 축의 역할을 했다면, 올해는 그 일을 하는 이가 주장 고희진뿐이어서 레오는 팀 내 에이스로서 어깨에 무거운 책임감을 얹은 채 공을 때리고 또 때렸다.
7연패의 금자탑과 3시즌 연속 통합 우승은 단연 레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언론의 분석이다. 그는 경기장에 들어설 때 어떤 공이든 득점으로 연결시키려고 노력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량을 대부분의 경기에서 100퍼센트 발휘한다. 특별히 백어택(후위 공격)은 레오가 좋아하는 플레이다. 후위 공격을 할 때에는 블로커를 확인하고 공격하기 때문에 더욱 자신감이 생긴다고.

레오의 급성장
2년 전 레오가 삼성화재에서 시즌을 시작하기 전 일이다. 3년 동안 삼성화재를 우승으로 이끌고 떠난 가빈의 공백을 메워야 했던 레오. 별다른 이력을 가지지 못한 그는 가빈의 화려한 이력이 자신의 내면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고 한다. 과연 가빈의 공백을 레오가 어떻게 메울 것인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2012~2013 시즌 개막 전, 다른 팀에 영입된 외국인 선수들이 레오보다 기량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레오는 영입 당시 뚜렷하게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레오는 보란 듯이 날아올랐다. 시즌 공격 성공률 59.69%로 남자 프로배구 역대 최고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정규리그와 챔피언 결정전 MVP도 그의 몫이었다.
2013~2014 시즌에도 레오는 코트 위에서 멋지게 날았다. 정규리그 경기당 평균 37.4득점, 세트 당 평균 9.9득점, 그는 30경기에서 모두 1,084점을 올렸다.
정규리그를 마치고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상대는 정규리그 2위 팀 현대캐피탈. 1차전은 현대의 승리였다. 레오는 그 스스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했고, ‘지난 시즌을 통틀어서 가장 실망스러운 경기였다’고 고백했다. 실수도 많고 플레이가 잘 풀리지 않았고, 현대캐피탈의 외국인 선수 아가메즈가 부상으로 교체되면서 삼성화재 중심의 경기를 해나가지 못한 어려움도 있었다.
“다음 경기는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없다’고 다짐하면서 팀플레이가 최고조에 달했죠. 1세트는 상대 팀에게 내줬지만 2세트는 접전 후에 따냈고, 그것이 경기를 승리로 이끈 큰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토스된 볼을 향해 뛰어올라 때린 공이 높은 브로킹 벽에 막혀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다음 기회 때 더 집중력 있게 높이 뛰어올라 공격을 성공시킵니다. 첫 번째 막힌 공격이 오히려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서 두 번째 더 큰 공격을 성공시키는 동기를 부여하는 거죠.”

 
 
레오를 성장하게 만든 가난
경기에는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아슬아슬하고 긴박한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그 순간 요동치고 불안정한 마음을 절제하고 평정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레오는 그런 순간에도 득점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걸까?
1990년 3월 23일, 쿠바에서 태어난 레오는 9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배구 학교를 다녔다. 레오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자신의 키가 또래 아이들보다 상당히 큰 것을 인식했다. 큰 키의 레오는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배구를 좋아해 열심히 해서 청소년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뛰었고, 배구를 직업으로 삼고 좋은 선수로 성장하고 싶었다. 그런데 쿠바는, 스포츠 선수로 성공하려면 야구를 하라고 말할 정도로 ‘야구의 나라’다. 다른 종목의 많은 선수들은 생활에 어려움을 겪다가 망명을 선택하기도 한다. 쿠바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레오의 손에 쥐어진 돈은 생활이 되지 않는 적은 액수였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는 성공을 간절히 꿈꿨다. 그리고 2009년,
19세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월드리그에 참가할 즈음 망명을 결심했고,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로 망명한다. 하지만 또 한 번 좌절한다. 국적을 바꾼 선수는 배구 코트에 설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2년간 더욱 심한 가난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낸 레오를 두고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은 ‘어린 나이에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정신력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저는 여느 청소년들처럼 사춘기를 겪으며 성장했죠. 당시에는 배구밖에 몰랐고, 성인이 되기까지 배구를 믿으며, 열심히 할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2012년 러시아 리그에 진출했지만 가능성을 찾지 못한 레오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2년간 삼성화재에서 활약했다.
“넉넉하지 않은 어려움 속에서 성공을 간절히 꿈꿨고, 지금의 결과를 만났습니다. 아직 24살밖에 되지 않았고, 배구를 더 해야 할 날이 많습니다. 지금은 두 아들의 아버지이기에 더욱 책임감을 느낍니다.”
삼성화재에 스카웃된 레오. 나이는 어리지만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진 그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신 감독은 말한다. 그도 사람이기에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레오는 자신을 믿어주고 아껴준 어머니와 가족을 생각한다. 그는 삶의 모티브이자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가장 큰 이유를 어머니라고 밝힌다.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 와서 우여곡절이 많았고, 세상에는 거저 주어지는 건 없다는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갈 길에 대해 번민하는 사람들에게 꿈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 ⓒ 김용근
▲ ⓒ 김용근
팀원들 간의 신뢰, 자만할 수 없는 지옥의 훈련
배구는 보통 3번의 터치로 공을 상대 진영에 넘긴다. 레오가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혼자서 리시브, 토스, 공격을 다 책임질 수는 없다. 그는 그 한 축을 담당할 뿐이다. 팀워크가 이뤄져야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시즌 이후 기자단 투표에서 총 28표 중 26표를 얻어 정규리그 MVP가 된 레오는 동료들의 도움과 희생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말한다.
“삼성 식구들은 제2의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감독님, 선수들, 스태프 모두 제가 한국에서 지내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팀에서 인정받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뛸 수만 있다면 팀에 계속 남고 싶습니다.”
레오는 ‘외국인 선수 덕에 삼성화재가 잘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팀에서 채워 성장해서 다시 팀에 공헌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언제나 그를 반겨주는 삼성화재 동료들의 마음 씀씀이에 레오는 반했다. 동료들 간에 서로 신뢰하는 마음, 그런 마음의 터 위에서 레오의 존재가치는 더욱 빛나는 것이다.
“수비하기 어려운 공을 동료들이 받아 넘길 수 있도록 리시브해 주면 저는 최선을 다해서 볼을 때립니다. 제가 코트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동료들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그런 과정에서 서로 신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고희진 선수를 좋아하는데, 주장으로서 항상 선수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마다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려주는 모습에 존경을 표합니다. 주장이 코트에서 함께 경기하면 편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첫 시즌 때 팀에서 훈련 받을 당시를 회상하며, 레오는 과거 자신이 하던 배구와는 다른 훈련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훈련 강도와 많은 양으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제는 팀에 적응도 되고 훈련도 거뜬히 소화해낸다고 한다.
“경기 때 어떤 팀이 앞에 있더라도 자만하지 않고 내 역할을 다 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레오는 ‘삼성화재는 멤버들이 철저한 약속과 분업에 의해 좋은 결과를 내는 팀’이라고 말한다. 삼성화재가 외국인 선수들 덕에 우승하기보다 외국인 선수가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이라고 말한다.

도전이 실패가 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레오의 당부다. 실패에 기죽지 않고, 실패를 밑거름 삼아 성공을 거두는 것이 레오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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