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과 실천으로 터득하는 진품 마인드

1852년 2월 27일 밤 2시, 영국 해군 소속 수송선 버큰헤이드Birkenhead호는 630명의 승객을 태운 채 남아프리카로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케이프타운에서 65km 떨어진 해상에서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배는 순식간에 가라앉기 시작했지만 구명보트는 단 세 척, 태울 수 있는 인원은 180명에 불과했다. 선장인 시드니 세튼 대령은 장병들을 모두 갑판 위로 불러모은 뒤 ‘전원 부동자세로 서 있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여성과 아이들로 하여금 신속하게 구명보트에 탑승하게 했다. 세튼 대령을 포함한 나머지 군인들은 그대로 침몰하는 버큰헤이드호와 운명을 함께했다. 이후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배가 조난당하면 여자와 어린이부터 구출해야 한다’는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은 선원들의 불문율이 되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1954년 3월, 영국군 수송선 엠파이어 윈드러시Empire Windrush호가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들을 태우고 영국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 알제리 해안에서 77km 떨어진 지점을 지날 무렵, 보일러실에서 원인 모를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금세 불길에 휩싸인 배는 침몰할 위기에 처했지만, 1,515명이나 되는 승객을 태우기에 구명보트는 턱없이 부족했다. 선장 로버트 스콧 대령은 장병과 선원, 승객들을 갑판에 집합시킨 뒤 외쳤다.
“지금부터 버큰헤이드 연습을 실시하겠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탈 구명정을 지정받을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서 계십시오!”
버큰헤이드호의 전통대로 여성과 어린이, 병약자들이 먼저 구명보트에 올랐다. 나머지 장병들은 배가 침몰함과 동시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마침 인근 해역을 지나던 배가 달려와 구명보트에 탄 노약자는 물론, 바다로 뛰어든 장병들까지 전원 구출한 것이다. 총 1,515명의 승객 중 희생자는 보일러 폭발로 숨진 네 명이 전부였다.
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이 슬픔에 젖어 있는 지금, 위기의 순간에서 빛을 발한 세튼 대령과 스콧 대령의 용기와 지혜가 다시금 재조명받으며 삶의 원칙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겨지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마인드를 갖추게 된 것일까? 또 버큰헤이드호와 엠파이어 윈드러시호의 장병들은 어떻게 선장과 한마음이 되어 승객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언젠가 골동품 중 진품과 모조품을 가려내는 전문감정사를 교육하는 방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진품과 모조품을 구별하는 요령을 깨치려면 둘을 나란히 갖다 놓고 ‘색상이 이런 것은 모조품, 모양이 저런 것은 모조품’ 하고 이론적으로 연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몇 달이 걸리건 상관없이 오로지 진품만 보고 듣고 체험하다 보면 모조품을 가려내는 안목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것이다.

골동품뿐만 아니라 마인드 역시 마찬가지다. 마인드는 교실에서 도덕이나 윤리, 인성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르게 살라’는 이론보다 청소년들에게 더 중요하고 분명한 가르침을 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장場인 이 사회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체험하는가’이다. 세튼과 스콧이 보여준 진품 마인드 역시 그런 삶의 자세를 보고 듣고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터득된 것이리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흔한 속담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이제 사회인으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대학생으로서 이전 세대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며, 다음 세대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진품 마인드, 그리고 그 마인드에서 비롯된 미담과 사례들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이 실린 기사를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월 이집트 폭탄테러 현장에서 테러범을 제지함으로써 희생자를 줄이고 숨진 고 제진수 씨가 4월 11일자로 의사자*로 인정됐다.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 당시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사고현장에 뛰어들었다가 숨진 고 양성호 씨 역시 3월에 의사자로 인정되었다. 이런 뒷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이가 얼마나 될까? 대형 참사가 터질 때 책임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리고, 그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 역시 철저히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 진정한 희생정신을 발휘했던 진품 마인드도 널리널리 알려야 한다.

전문감정사를 교육할 때 진품을 알게 하면 모조품을 가릴 수 있는 것처럼, 세월호 사건에서도 진품 정신이 무엇인지 반드시 짚어 마음에 새겨야 한다. 단순히 이론으로서가 아닌, 실제 삶 속에서 희생과 살신성인의 정신이 발휘된 미담이 뉴스가 되어 전해지길 기대해 본다.
아울러 ‘너희들 다 구하고 마지막에 나갈게’라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난 세월호 승무원 고 박지영 씨를 떠올리며 오늘 하루 나의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의사자義死者
직무 외의 행위로서 타인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의 급박한 위해를 구제하다가 사망한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나라에서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하기 위해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국가적 예우를 하고 있다.

글쓴이 최은성
월간 <투머로우>에서 기획이사로 마케팅과 홍보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타고난 친화력과 집요한 섭외력을 지닌 그가 이번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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