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대한민국은 소치 동계 올림픽의 열기로 가득했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딸 김연아 선수가 은퇴경기로 올림픽에 출전, 러시아의 편파 판정과 함께 은메달을 손에 쥐었고 이 결과에 대한 반발은 국내외적으로 뜨겁게 일어났다. 그리고 3월 7일, 러시아 소치에서는 제 11회 동계 장애인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정식 경기 명칭은 ‘패럴림픽(Paralympics -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가 주최하여 4년 주기로 개최되는 신체장애인들의 국제경기대회).’

 
 
그리스어의 전치사 ‘para’(옆의, 나란히)과 올림픽(Olympic)의 합성어인 이 명칭은 장애인들의 올림픽이 비장애인들의 올림픽과 나란히 개최됨을 의미하고 있다. 매년 올림픽과 함께 열리고 있지만 큰 조명은 받지 못하는 패럴림픽. 하지만 그곳에는 우리들이 주목하는 올림픽보다도 더 큰 감동이 함께하고 있었다.

5개 종목 50개국 650여명 참가. 이번 패럴림픽에는 대한민국 선수들이 27명 출전했지만 메달은 하나도 획득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폐막식의 첫 수상 순서에서 한국인의 이름이 들리자 반가움과 놀람 가득한 호기심이 동시에 날 흔들었다. ‘황연대 성취상.’ 노벨 평화상과 같은 구성으로 이름하고 있는 이 상은 패럼림픽이 마칠 때 MVP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제정 및 시상자인 황연대 박사는 ‘자신의 장애를 가장 잘 극복하고 극복을 넘어 성취한 이들에게 이 상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장애를 성취하다.’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지만, 황연대 박사의 삶을 보면 그 문장이 또 그녀가 주고 있는 상의 이름이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황연대 박사는 3살 때부터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살아가던 8살 당시,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일본인 교장에게 초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헬렌켈러나 루즈벨트 대통령의 이야기를 해주며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너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아버지의 눈물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장애가 그녀를 이화여대 의대에 입학 ·졸업하게 했고, 그 후 그녀는 ‘대한민국 최초의 소아마비 여의사’로 거듭난다.
1966년 한국소아마비협회 설립을 시작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헌신을 마다하지 않던 그녀는 88올림픽 당시 이곳 저곳에서 받은 상금들을 모아 올림픽조직위원회(IPC)에 기탁했다. 이를 한 언론사에서 황연대 극복상이라고 이름 지었고 후에 IPC에서 ‘이제 장애인들이 극복하는 단계는 끝났다. 이제는 성취하는 단계다.’라며 상의 이름을 제정한 것이 지금의 ‘황연대 성취상(Whang Youn Dai Achievement Award).’이 되었다.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부터 폐막식 공식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으며, 올림픽과 패럴림픽 전 올림픽을 통틀어 이 황연대의 성취상 메달만이 유일한 순금 메달이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이제는 다른 장애인들을 위해 복지, 장애인 법 등 여러 부분에서 뛰고 있는 그녀는 극복이 아닌 성취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황연대 성취상’의 시상자가 직접 실현하고 있는 ‘성취하는 삶’에 수상자는 과연 어떠한 길을 걸어 도착했을까. 이번 소치 패럴림픽 MVP의 영예는 호주의 토인 케인과 네덜란드의 비비안 멘텔 스피가 안았다.

비비안 멘텔 스피는 법 공부를 하다 스노우보드를 타기 위해 공부를 포기하고 1996년 처음으로 FIS 스노우보드 월드컵에 참가한다. 그 후 운동을 하던 중 그녀의 발목에 통증을 느꼈고, 진단 결과 정강이뼈에 종양이 발견되었다. 수술로 무사히 종양을 제거하고 불굴의 의지로 2002 동계 올림픽에 참여하려 했지만 암이 재발돼 결국 그녀는 다리를 절단하기에 이른다.

 
 
다리 절단 4개월 후 그녀는 또다시 스노보드를 탈 수 있었다. 목다리와 함께 말이다. 그녀의 새로운 다리와 함께 출전한 네덜란드의 챔피언십 경기에서 그녀는 승리의 쾌거를 이룩한다. 2014 소치 패럴림픽에 네덜란드의 기수로 출전한 그녀는 스노보드 크로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멘텔리티 재단’을 설립해 장애어린이들의 성취를 돕고 있는 공을 인정받아 ‘황연대 성취상’ 또한 수상하였다.
제 11회 소치 동계 장애인 올림픽의 폐막식. 그 첫 순서에 단에 오른 황연대와 비비안 멘텔 스피. 그리고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은퇴하는 순간”이라는 좌우명을 걸고 훈련에 임했던 토인 케인. 그들의 악수와 포옹이 아름답지 않은가. ‘내가 걸어왔던 그 길, 너도 참 힘들게 걸어왔구나. 고생 많았다. 자랑스럽다.’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그 수상 현장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서로 장애를 겪으며 도울 수 밖에 의지할 수 밖에 없던 그들의 대화 속에서 그들이 가진 것은 장애가 아닌 함께 갈 수 있는 다리라는 생각이 든 건 나뿐일까.

‘장애’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신체적·장애적 결함, 부족함, 제 기능을 하지 못함, 고장, 손상, 능력이 저하한 상태, 신체나 정신 따위의 이상.’ 등의 단어와 절들이 연관어로 뜬다. 우리가 정해놓은 장애라는 단어가 실제 자신들의 장애를 극복함을 넘어 성취하는 삶을 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사실은 그들을 우리보다 부족한 존재라고 언어로 규정해 놓은 채 정작 우리는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잔잔한 강에 뜨인 돛단배 마냥 홀로 있진 않은가.

 
 
‘이번 소치 패럴림픽에서 본 ‘황연대 성취상’의 시상자와 수상자들 보다 과연 내가 더 성취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질문해 보면 오히려 나 자신은 머무름과 고립이라는 장애 안에 갇혀 성취와는 먼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달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매년 돌아오는 이 날을 불우한 장애인들의 날이 아닌 자신의 결함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그들에 비해 나는 지금 조그마한 성취라도 얻어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날로 정해보자. 그럼 적어도 그들처럼 나의 부족함 나의 모자람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서로 격려와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따뜻하고 사랑스런 열매를 한 알 한 알 맺어가는 여러분의 내일을 기대해 본다.

글 | 안우림 캠퍼스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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