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거대 우주선 같은 물체가 서울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 면적(건물 86,574㎡) 62,692㎡에 지하 3층과 지상 4층으로 지어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이하 DDP). 직각 하나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인 외관이 동대문 패션거리를 즐겨 찾는 젊은이들에게 차원이 다른 공간철학을 선사한다.  DDP는 어떤 곳일까?  전통과 미래가 어우러진 건물 속에서 비즈니스, 엔터테인먼트, 문화, 상업이 융화되는 현장을 들여다보자. 

▲ Photography by KDK (Kim DoKyun)
▲ Photography by KDK (Kim DoKyun)

한국 역사의 중심이었던 곳, 과거와 화해하다
DDP는 2004년 동대문 운동장이 철거된 자리에 건설됐다. 동대문 운동장(당시 경성 운동장)은 일제가 1925년 히로히토 왕세자의 결혼식을 기념으로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체육시설이었지만 조선인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1945년 광복 후 서울 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1959년 부속 야구장을 추가로 건립, 매년 ‘전국 고교 야구 대회’를 개최하며 아마추어 야구의 성지로 부상했다. 하지만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를 잠실 체조경기장이 생긴 후, 노점상들의 풍물시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2007년
‘서울시 고교 야구 가을리그’를 끝으로 폐장됐다.
DDP 사업은 애초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의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로 기획됐지만 완공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만만치 않았다. 오 전 시장은 DDP 건립과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 막대한 토건개발 사업을 벌인 탓에, DDP가 완공되기도 전에 시 재정을 탕진했다는 비판을 들으며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더욱이 놀라운 점은 이곳에서 유적과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것. 굴삭기로 파는 곳마다 타임캡슐이 터지듯 경성 운동장 건립 당시 땅 속으로 매장된 역사가 되살아났다. 결국 4개월 만에 모든 장비를 철수시키고 대대적인 확장 발굴조사를 진행해야 했다.
당시 문화재 발굴의 표어는 우리나라 600년 수도인 '서울의 재발견'이었다. 문헌상으로만 존재했던 이간수문(二間水門), 치성(雉城)의 유구를 찾을 수 있었다. 모두 DDP 인근의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에 복원, 재현됐다. 조선 시대와 대한제국 시절의 유물 2,500여 점 또한 동대문 역사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간수문_ 조선 시대의 배수시설. 오간수문의 형태를 축소한 것으로 도성의 하수를 바깥쪽으로  빼기 위해 만들어졌다. *치성_적이 접근하는 것을 일찍 관측하고 전쟁 시 가까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방어시설이다. 성벽 밖으로 벽을 덧붙여서 쌓았다.

▲ Zaha Hadid by Steve Double
▲ Zaha Hadid by Steve Double
자하 하디드_이라크 출신의 영국인 여성 건축가. 2004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를 여성 최초로 수상했다. 중국 광저우의 오페라 하우스, 독일 라이프치히의 BMW 센트럴 빌딩 등을 설계했다.
현재 2020 도쿄 올림픽 주 경기장 설계를 맡아 작업 중이다.

‘건축여제’의 감각과 창의력을 배울 수 있는 곳
“공공건물은 특수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콘퍼런스, 전시, 공연을 수행할 수 있는 규모가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저는 이 점과 함께 서울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성을 살리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염두 했습니다. 덕분에 아주 파격적이고 유용한 공간이 만들어졌죠. DDP는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입니다.”
21일 개관에 앞서 열렸던 기자간담회. DDP를 설계한 영국 출신의 이라크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말했다.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공간을 창출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설계도에서 직선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DDP 구상에 앞서 디자인 도시로 거듭나려던 서울시의 입장을 고려해서 어버니즘(Urbanism ㆍ 도시주의)를 지향했다. DDP의 메인 콘셉트 역시 ‘주변 지형과 조화롭게 결합’이라고 정했다. 설계 또한 서울의 생태계를 이해한 뒤, 대응하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현재 DDP는 빌딩 숲 속인 동대문 패션거리에서 단일 외부 자재인 알루미늄 패널로 회색빛을 발산하며 세련된 외관을 자랑한다. 건물 지붕 또한 아래층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가는 형태의 공원으로 잔디가 넓게 깔려있다.
지하 하디드는 “건축은 설계를 해석하는 과정”이라며 “이번 해석은 매우 마음에 든다”라고 결과에 만족감을 표현했다. 

▲ Photography by Virgile Simon Bertrand
▲ Photography by Virgile Simon Bertrand
DDP, 미래를 창조하다
DDP는 전시와 공연, 패션쇼, 외식 등이 상시 이뤄지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삼성역의 코엑스처럼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문화와 비즈니스 시설이 다채롭게 공존한다. 더불어 식당과 카페를 비롯한 제품 매장, 편의시설도 다수 입점해 있다. 지난달 21일 개관에는 ‘제14회 서울패션위크’와 ‘훈민정음해례본’을 볼 수 있는 ‘간송 문화전’, ‘자하 하디드, 360도’ 전이 개최되어 무수한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했다. 건축 모형, 모바일 아트 전시회도 이달 4일부터 5월 31일까지 디자인 놀이터 로비에서 열린다.
특별히 야간에도 인파가 북적거리는 동대문 패션거리의 특성을 감안, 자정을 넘긴 새벽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방문자들은 오전 10시부터 포럼과 전시회를,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 국제회의와 콘퍼런스, 패션쇼 등을 즐길 수 있다. 때때로 새벽에도 공연과 영화제, 론칭쇼 등의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안전은 인근에 설치된 종합안내소가 24시간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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