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황효정의 아프리카 의료봉사 이야기_5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는 후천성 면역결핍증 즉, AIDS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를 말합니다. 아직도 뚜렷한 치료방법을 찾지 못한 이 병으로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죽었고, 통계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토고에 의료봉사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 어머니가 아이 둘을 데리고 왔는데, 한 아이는 자기 아이이고 옆의 다른 아이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여자의 아이는 건강한데 자기 아이는 HIV에 감염되어 있다며, 아이를 살리고 싶다고 찾아왔습니다. 다른 여자의 아이가 건강한 것처럼 자신의 아이도 건강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HIV에 감염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아이를 안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꼭 안아보니 아이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저에게 전해졌습니다.
‘제발 이 심장이 계속 뛸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어서 면역력을 높이는 약을 며칠치 주고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8월, 다시 토고에서 그 엄마를 만났습니다. 1년이 지난 뒤 그 엄마는 혼자였습니다. 지난 3월에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 자기 아이를 옆의 아이처럼 건강하게 해 달라던 이 엄마는 1년 뒤 혼자였습니다. 지난 3월에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사진=황효정)
▲ 자기 아이를 옆의 아이처럼 건강하게 해 달라던 이 엄마는 1년 뒤 혼자였습니다. 지난 3월에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사진=황효정)
또 한 엄마는 32살 밖에 되지 않은 부인이었습니다.
한 아이를 업고 있었는데 너무나 예쁘고 천진난만하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세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셋째라고 했습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 엄마는 검사를 통해 자기가 HIV 감염자인 것을 알았고, 그 때 야 비로소 첫째 아이가 죽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둘째 아이도 HIV로 사망했는데, 이번에 또 이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있다며 이 아이가 아파서 걱정이 많다고 했습니다.
제발 이 아이는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세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도 엄마에게는 이 아이들을 지키고 기를 힘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다 잘 자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 이 아이는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나 저는 그 엄마를 보고 그냥 말없이 웃을 수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 첫째와 둘째를 HIV로 잃은 아이의 엄마는 셋째 아이는 제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진=황효정)
▲ 첫째와 둘째를 HIV로 잃은 아이의 엄마는 셋째 아이는 제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진=황효정)
한 아이는 손에 비스킷을 들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이가 한 입 베어 먹은 것 같은데, 거의 먹지 못한 아이 마냥 야위어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왜 이렇게 말랐고 왜 이렇게 힘이 없어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혹시 먹을 것이 없어서인지 물었습니다.
아이가 HIV 감염자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힘없이 말라있는 아이를 저에게 내밀며 아이를 봐달라고 했지만, 저는 한동안 아이의 눈과 엄마의 눈을 번갈아 보다가 나중에는 차마 아이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차트만 보며 진료를 마쳤습니다.

▲ 힘없이 비스킷을 한 입 베어물은 이 아이는 HIV에 감염되어 있었습니다. (사진=황효정)
▲ 힘없이 비스킷을 한 입 베어물은 이 아이는 HIV에 감염되어 있었습니다. (사진=황효정)
말라위 의료봉사에서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치 가구를 팔 듯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관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한 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관을 만들고 또, 팔고 있는데 나라는 너무나 아름답고 평온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그렇게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HIV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의료봉사를 하며 말로만 듣던 HIV 감염자들을 너무 흔하게 만날 수 있었고, 안타까운 사연 또한 많았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만나면서 저에게는 없던 마음들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속수무책, 마음만 아플 뿐이지만 어떻게든 이 병을 몰아낼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글쓴이 황효정
굿뉴스의료봉사회(Good News Medical Volunteer, GNMV) 소속 한의사로 매년 여름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특히, 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아프리카 풍토병인 부룰리 궤양 퇴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서초구 양재동에서 '운화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