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가 지난 2년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17개국에서 출간되었다. 언어는 달라도 사람 마음의 구조는 같기에, 이 책을 읽은 전 세계 젊은이들의 리뷰를 보면 자신에 대한 성찰과 변화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저자는 요즘도 국내외에서 청소년 마인드 특강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이 기사는 저자가 2013년 9월 포항시 문화예술회관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총 5회 연재 중 그 마지막 편으로 가족 관계에서 오해로 말미암은 불행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같이 생각하며 배워본다.


 
 
아버지의 마음이 담겼던 땅콩 밭
저는 어릴 적 경북 선산에 살았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낙동강 지류인 감천강이 흘렀고, 강변에 우리 집 큰 밭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밭에 돈이 되는 작물들을 심었는데, 아버지는 그 밭에 꼭 땅콩을 심으셨습니다. 땅콩을 캐는 날에는 큰 수레에 땅콩을 넝쿨째 싣고 밧줄로 묶었는데, 저는 꼭대기에 올라가서 밧줄을 붙잡고 앉아 있고, 아버지가 소를 몰고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길에 하늘을 보면 종종 달이 떴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때 우리 집에 늘 땅콩이 끊이지 않아서 구워 먹기도 하고 삶아 먹기도 했습니다.
저는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아버지께서 왜 그 큰 밭에 땅콩만을 심으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살기가 어려운 시절이라 간식이란 것이 거의 없을 때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땅콩을 심으면 아이들이 간식으로 먹을 수 있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자식들을 아끼셨기에 간식으로 주려고 다른 작물 대신 땅콩을 심으신 것이지요. 1974년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제 어언 40년이 지나갑니다. 이제 저도 나이를 먹다보니 비로소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아버지 마음을 만나게 됩니다.
요즘은 가족이 한집에 함께 살아도 아버지의 마음을 못 만나고, 어머니의 마음을 못 만나고, 또 아들의 마음을 못 만나고, 딸의 마음을 못 만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부상당한 한 군인의 슬픈 이야기
한국전쟁 당시 미국 LA 근교에 어느 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12시가 가까웠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어머니, 저예요. 존이에요.”
부인이 깜짝 놀랐습니다. 존은 하나뿐인 아들로, 한국전쟁에 참전중이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많은 미군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에 가슴 졸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들에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네가 정말 존이냐?”
“예, 어머니. 저예요.”
“지금 어디냐?”
“이제 방금 LA공항에 도착했어요.”
“아, 그래? 몸은 건강하니?”
“예, 건강해요.”
“존,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빨리 집에 오너라!”
“어머니, 저 지금 친구들하고 같이 있는데 내일 아침에 갈게요.”
“그래, 기다릴게. 빨리 와라.”
부인이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존이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제가 친구를 한 명 데리고 가고 싶어요.”
“그래, 데려오거라. 어떤 친군데?”
“같이 참전한 친구예요. 그 친구는 전쟁터에서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가 없고, 오른팔도 없고, 눈도 한쪽을 잃었어요.”
“그래, 안됐구나! 와서 며칠 푹 쉬었다 가게 해라.”
“어머니, 저는 그 친구하고 한평생 같이 살았으면 해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 전쟁터에서 감상적인 사람이 됐구나. 생각을 해봐라. 한쪽 팔다리가 없으니 화장실은 어떻게 가고, 샤워는 어떻게 하겠니? 그런 사람이 집에 오래 있으면 너도 불편할 것이고 나중엔 귀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얼마간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가게 해라.”
“어머니, 나는 그 친구랑 함께 살고 싶고 또 살아야만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네가 전쟁터에서는 그런 감정을 잠시 가질 수 있지만 현실에 부딪히면 다를 거야. 나중엔 돌려보내는 게 좋겠구나.”
“예, 알겠어요.”
“그래, 잘 생각했다.”
“어머니!”
“왜?”
“안녕히 계세요.”
“그래, 빨리 와라.”
“어머니!”
“왜?”
“어머니, 건강하셔야 해요.”
“그래, 빨리 와.”
부인은 전쟁에 나간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곧바로 아들 방을 청소하고 깨끗이 정리정돈을 했습니다. 그래도 잠이 오질 않아 다시 다리미를 꺼내서 아들 옷을 말끔히 다려 옷장에 걸어 놓았습니다. 침대 옆에 꽃도 꽂아 놓았습니다. 말할 수 없이 행복했습니다. 부엌에 가서 아들에게 줄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지만, 아들을 기다리면서 요리를 한다는 것이 즐겁기만 했습니다. 드디어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오전 여덟 시가 되고, 아홉 시가 되었는데 아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정오가 지나고 오후 한 시가 다 되었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여보세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실례합니다. 거기가 존의 집인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존의 어머니신가요?”
“예. 그런데 누구신지요?”
“경찰인데요. 부인 아들이 호텔에서 투신자살했습니다. 빨리 병원으로 오십시오.”
부인은 꼭 꿈을 꾸는 듯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아들이 죽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현실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았는데 곧 온다던 아들이 이번엔 죽었다니…! 부인은 정신없이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실 가운데 누워있는 사람을 확인했습니다. 부인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누워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사랑하는 아들 존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쪽 눈이 없고, 얼굴은 흉터투성이고, 한쪽 팔과 다리도 없었습니다. 부인은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소리쳐 울었습니다.

왜 그게 너라고 말하지 않았어?
존은 한국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해 동부전선에서 전투를 하다 지뢰를 밟았던 것입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한쪽 다리, 한쪽 팔,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존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가 불구자가 되어 고향에 도착하면 누가 나를 반겨줄까? 내가 이런 흉측한 모습으로 가면 도대체 누가 맞아줄까?’ 자기가 봐도 모습이 흉측한데 친구들이 그런 자기를 좋아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존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그래, 세상 누가 뭐라 해도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실 거야!’
하지만 자기 모습을 보면 집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냐. 어머니도 이런 나를 싫어하실지 몰라.’
공항에 내린 후, 존은 어머니의 마음을 먼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 이야기로 어머니께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대답에 절망한 그는 ‘어머니가 나를 부담스러워하시겠구나. 어머니가 나를 귀찮아하시겠구나. 어머니가 나를 불편하게 여기시겠구나. 그렇다면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내가 살아서 뭐 하나?’ 하고 오해하며 결국 자살을 선택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울부짖었습니다.
“존! 존! 왜 그게 너라고 말하지 않았어? 왜 그게 너라고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거야? 만약 네가 팔다리를 잃었다면 내가 네 팔이 되어 주고 다리가 되어 주었을 텐데! 더 영광스럽게 여겼을 텐데!”

언어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
어머니와 아들 사이라도 서로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 마음을 주고받지 못했기에 존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오해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상대방의 마음을 몰라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통해 마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키가 크다, 작다, 얼굴이 예쁘다, 못생겼다’ 하는 것은 눈으로 보면 바로 알 수 있지만 마음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너를 만나 기쁘고 즐거워.’ ‘어제 내가 참 미안했다.’ ‘내가 지난번에 너를 섭섭하게 한 것 같아.’ 이처럼 언어라는 도구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부부 간에, 형제 간에, 친구 간에, 사제 간에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느끼게 됩니다. ‘그때 힘들었겠구나.’ ‘오늘 즐거웠겠구나.’… 상대방의 마음을 알 때 이해하고, 믿게 되고, 서로 같은 마음이 흐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진심은 숨긴 채 겉도는 대화만 합니다. 사실 마음에 없는 이야기는 거짓말과 다름없습니다. 상대방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흐르는 것을 차단합니다. 존은 어리석은 방법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알려고 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전쟁터에서 팔과 다리와 눈을 잃었어요. 나를 싫어하실 건가요? 싫어하시면 집에 안 갈게요’ 하고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어야 했는데, ‘어머니, 내가 한 친구를 집에 데리고 가고 싶어요’ 하고 돌려서 말했습니다.
그런 마음의 벽이 어머니의 마음이 존에게로 흘러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존이 어머니의 마음을 정확히 알았다면 절대 자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면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어머니’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되려면 대학을 졸업해서 자격증을 따야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예쁘거나 키가 크고 튼튼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열 달 동안 아기를 뱃속에 키워서 생명을 걸고 아기를 출산해야 어머니가 되는 겁니다. 아주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되고 나면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되면 젖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젖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도 만들어집니다. 그 마음은 세상의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만 있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매우 신비롭습니다.
존의 어머니도 어머니만이 가진 그 사랑을 가지고 아들을 낳았고, 키웠습니다. 존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때 어머니는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도했겠습니까? 그렇지만 존은 어머니 젖을 먹고 어머니 가슴에서 잠이 들고 어머니 보호 아래 컸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어머니의 진정한 마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마치 눈 먼 소경이 어머니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예쁜지 아무리 얼굴을 만져 봐도 감각할 수 없는 것처럼, 존은 육체의 눈은 뜨고 있었지만 마음의 세계를 보는 눈은 소경이었기 때문에 어머니 마음을 만나본 적이 없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순간에 어머니 마음을 몰라서 불행한 일이 일어났고, 어머니는 한평생  가슴에 아들에 대한 한을 지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미쳤지. 그 날 내가 왜 우리 존에게 그렇게 냉정하게 대답을 했지.”
어머니는 그 친구가 자기 아들이었으면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만난 둘째 아들
존의 가정만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만나지 못하고 아버지의 외형만 말합니다. ‘우리 아빠는 사장이야. 돈을 잘 버셔. 장사도 잘 하셔’ 하는 것만 알지 아버지 마음을 더듬어 보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도 돼지우리에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갈 수 없게 막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싫어하실지 몰라. 그 많은 돈 어디에 썼냐고 화내실지 몰라. 그럼 창피하잖아. 차라리 죽자’ 하는 자기 생각 때문에 아버지 집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그 생각에 끌려가면 절대 아버지 집에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음에서 먼저 아버지 집에 가보았더니, 아버지 집에는 품꾼들도 먹을 것이 풍족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은 ‘아버지, 제가 아버지와 하늘에 죄를 지었습니다. 아들이 아닌 품꾼이라도 좋으니 저를 받아주십시오’ 라고 하기로 하고 아버지 집으로 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돌이킬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는데도 자기의 생각이 그것을 막습니다. 둘째 아들이 집으로 향하니 아버지가 대문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가 그날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며 달려가서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말해서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 돌아왔으니 살진 송아지를 잡아 먹고 즐기자고 합니다. 이때 아들이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만나게 됩니다.
둘째 아들도 아버지의 보살핌 안에서 자라고 컸지만 아버지 마음을 몰랐습니다. 아버지 집에 갔을 때 아버지가 자기를 내쫓으면,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 말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막상 가서 보니 자신이 생각한 아버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그때 비로소 처음으로 아버지 마음을 만났습니다. ‘내가 잘났다고 큰소리치고 아버지를 무시했는데, 그래도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셨구나’ 하고 말입니다. 아버지 마음을 알게 되고,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거기서 행복이 시작됩니다.
부모와 자식의 마음이 세대차로 인해 잘 흐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버지는 자신이 살았던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걱정하는 말을 자주 합니다. 아들의 귀에는 그 말이 관심보다 간섭과 잔소리로 들려 짜증을 내고 반항하고 싶어집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자꾸 멀어집니다. 아들은 아버지 마음을 더듬어야 하고,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을 더듬어야 합니다. 자주자주 서로 마음을 잘 보여줘야 합니다.
아내와 남편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마음이 흘러서 더 행복한 가정이 되고, 더 아름다운 가정이 되길 바랍니다.

강연 박옥수
각종 중독과 범죄로 고통 받는 청소년들을 선도하며 매년 국내외에서 개최되는 월드캠프에 초청받아 마인드 강연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17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자기계발서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개정판을 냈으며 그 외에 40여 종의 저서가 있다. 국제청소년연합IYF 설립자이며 기쁜소식강남교회 담임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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