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부모의 이혼으로 가슴앓이 하는 학생들의 사례를 많이 봅니다. 부부 간의 갈등은 당사자들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큰 영향을 주어 가정 내의 불만이 사회 문제로까지 확산되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혼 직전의 부모 문제에 자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화해하게 된 사례를 소개합니다.

 
 
선생님, 저희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려고 해요. 우리 가족은 부모님, 언니, 동생 그리고 저까지 다섯 명입니다. 저는 늘 부모님이 싸우시는 것을 보면서 살아왔어요. 그런데 기숙형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집을 떠나 있어서 그 심각성을 잊고 지냈는데, 이번에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학 전까지 집에 있다 보니, 사태가 더 안 좋아진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엄마는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가 없다고 하시고 아빠도 엄마에게 집을 나가라고 하세요. 저는 가운데서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동생과 언니도 많이 힘들어해요. 죄송하지만 저희 엄마하고 전화 통화 한 번 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 겨울, 어느 고등학교에서 성교육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올해 그 학교를 졸업한 여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가족의 해체 위기를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은 여학생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봄은 코앞까지 왔지만 이 학생의 집은 아직도 겨울이었다. ‘물론 너희 엄마에게 전화를 해 드릴 수는 있지만, 아마도 엄마가 원치 않으실 거야. 어른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자기 가정사를 이야기하지 않거든. 원하면 전화하시라고 해’ 하며 답문을 보냈다.
역시나 엄마가 통화하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내용의 문자가 왔다. 20년이나 계속된 불화가 누군가의 전화 한 통화로 해결될 것이라 기대한다는 건 무리일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가 불협화음을 내게 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자녀다. 이혼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부부 세 쌍 중 한 쌍이 경험할 정도로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대두되는 문제는 황혼이혼이다. 황혼이혼율이 신혼이혼율을 넘어서면서 고령화시대에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50대 부부가 이혼을 한다는 건 길고 힘든 고통의 문이 열린다는 것과 동시에 주변 가족들도 함께 아플 수밖에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부부관계 전문가 존 가트만은 3천여 건의 부부문제 상담사례들을 통해서 한 가지 법칙을 발견해냈다. 상담을 받으러 온 부부가 대화하는 모습을 통해 그 부부가 이혼을 할지, 앞으로 결혼생활을 지속할지를 95% 정도 맞출 수 있다는 것. 이를 ‘15분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부부가 상담실에 들어온 후 15분간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그 부부의 결혼생활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이혼을 촉발하는 대화는 다름 아닌 ‘비난의 대화’, ‘경멸의 대화’로, 부부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했다. 비난과 경멸의 대화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켜 마침내 파국으로 몰고 가게 한다는 말인데, 실제 부부 문제의 원인이 ‘대화방식’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그 여학생에게 ‘엄마 아빠는 이혼까지 가실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후회는 없도록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고 하며 이렇게 말해보도록 조언해 주었다.
‘엄마, 그동안 많이 힘드셨을 텐데 모른 체하고 제 생각만 해서 죄송해요, 아빠랑 엄마가 서로 마음이 안 맞으니 엄마가 혼자 얼마나 힘드셨어요? 엄마 아빠가 이혼하기를 원치는 않지만 엄마가 아빠와 사시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혼하셔야 한다면 엄마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을게요. 아빠도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진짜 엄마를 미워해서 그런 것보다는 마음이 상해서 하시는 소리일 수 있는데 제가 아빠와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제까지도 우리를 위해 참고 사셨는데 더 참으시라고는 안 할게요.’

그리고 이어서 말해주었다. ‘엄마는 이제 갱년기에 접어드셔서 예민하시기도 하고 자식들이 자라면 마음이 통할 줄 알았는데 각자 자기 일에 마음이 빠져 있는 동안 섭섭함이 많을 수 있어. 이럴 때 누군가 작은 위로라도 보내면 다시 힘을 회복할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말씀드려 봐. 그리고 아빠도 마음을 표현해줄 변호인이 필요하니까 아빠와도 이야기를 해보고. 자녀가 부모의 문제를 모른 척하고 자기 할 일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부모님과 진심어린 대화를 시작한다면 마음이 통할 수 있을 거야. 설령 이혼을 하신다고 하더라도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해보지 않고 무관심하다면 나중에 후회하게 돼.’
긴 통화를 마치고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세 자녀와 화목해지기를 바랐지만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 문자가 왔다.
“선생님, 하루아침에 기적이 일어났어요. 엄마 아빠가 이혼하지 않고 다시 서로 노력하고 잘 살아보겠다고 하셨어요. 따로 주무셨었는데 이제 방을 합치셨어요!”

무관심과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이야말로 서로를 단절시키고 파괴로 이어지게 하는 주범이다. 가정이 깨지려는 위기상황 속에서 이를 방관하지 않고 함께 해결해 보고자 했던 딸의 지혜로운 마음이 이 가정을 다시 융화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 참 기특하고 고마웠다.
이 가정뿐 아니라 새봄을 맞이하는 모든 가정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학교와 직장에서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때문에 대화하며 마음을 나눌 시간이 더욱 줄어들다보니 가족 구성원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서로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설령 문제가 있는 것을 알더라도 ‘부모님 문제인데 뭐’ 하고 지나치며 무관심하게 되기 쉽다. 그러는 동안 서로 갈등의 골은 더 깊어져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선택하게 되고, 자녀들은 가족 해체의 위기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가치관의 혼돈을 겪게 된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섣부른 이성교제나 술과 게임 속으로 도피하게 되는 것이다.

이 학생의 경우처럼 부모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자녀들도 함께 갈등을 풀어가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앞으로 자신의 이성관과 결혼관도 건강하게 세울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성은 남녀 간의 서로 다름을 알고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서부터 시작해 자연스러운 ‘함께’를 만들어가는 사람살이의 한 부분이다. 불타오르는 열정적인 사랑을 꿈꾸는 젊은 시기에는 자칫 놓치기 쉬운 것이 바로 이런 이해와 수용의 자세다. 이성교제가 오래 지속되려면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는 데서부터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호의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오랜 추위를 견디고 돋아나는 파릇한 새싹이 감동을 주듯, 역경을 견딘 사랑이 아름답다. 올해 입학하는 모든 학생들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며 학교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가족과 사랑에 대해서도 이 칼럼을 통해 함께 고민하고 진지하게 배워나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글쓴이 최미희
국제마인드교육원 마인드교육 강사와 푸른 아우성 책임상담원 및 성교육 강사로서, 초중고대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성상담 및 부부 갈등 상담, 그리고 자살방지 및 범죄예방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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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김양미 기자,  디자인 |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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