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를 대표하는 국가 4곳-브라질,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강원도 정선에서 자란 유준혁 씨는 어린 시절 산과 시냇가를 다니며 물고기와 매미 등을 잡으며 놀던 때를 기억한다.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가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추어서 집에 들어가곤 했는데, 자주 싸우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항상 경제적인 이유로 다투셨던 부모님 때문에 불행이 자신의 집에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의 가족은 서로 마음을 닫고 단절되어 살아온 시간이 길었다고 한다.

 
 
칠레에서 알게 된 부모님의 마음
그가 스물한 살 되던 해, 보다 많은 경험을 쌓고 싶어서 칠레로 해외봉사를 떠났다. 칠레는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햇살이 뜨겁고 건조해서 아무리 더워도 그늘 밑에만 들어가면 시원했다. 과일의 당도도 무척 높았으며, 농수산물과 해산물 등 먹을거리가 풍부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포도 20kg을 한국 돈으로 약 8천 원만 내면 구입할 수 있었다.
칠레 사람들은 기쁘면 소리를 지르거나 크게 웃는 등 자신의 기분 표현에 자유로웠으며, 자신의 속마음 표현도 잘 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고 표현도 잘 하지 않는 그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이 자신의 가족을 불행하게 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칠레 대학생들은 자신보다 훨씬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 살면서도 항상 밝게 살아갔다. 그는 조금씩 한 가지 사실을 알아갔다. 가정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꼈다는 것을.
“부모님이 왜 싸우셨을지 곰곰이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아 자식에게 잘해줄 수 없게 되자 어머니의 입장에서 화가 나셨고, 감정이 골이 깊어지셨던 거예요. 아들을 사랑하셔서 싸운 부모님의 마음을 그때서야 알게 됐죠.”
칠레에 간 지 6개월 동안 그는 부모님께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던 차가운 아들이었다. 그런데 칠레를 다녀오고부터는 무슨 일이든 어머니와 통화하며 의논하고 아버지와는 진로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오죽하면 통화의 대부분을 가족과 통화하는 데에 다 쓸 정도다. 그래서 그의 부모님 이제 아들이 효자가 돼서 돌아왔다고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명절 때 친척들에게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이 얼마나 좋은지, 아들을 변화시켰다고 자랑할 정도였다.
예전에 그는 자신과 친한 친구들 외에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친해지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거리낌 없이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줄 안다. 사람마다의 맛을 느끼는 것이다. 그가 먼저 친구들이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면 친구들은 그가 하는 과제를 도와준다. 교수님들도 그의 밝은 성격이 마음에 들어 ‘우리 연구실에 들어와’ ‘조교해볼 생각 없는가?’라는 러브콜을 보낸다고 한다.

 
 
스페인어 정복기
스페인어권 나라 중 유독 칠레 사람들은 말이 빠르고 문장의 뒷부분을 흐리게 하는 경향이 있어 언어 배우기가 더욱 힘들었다. 칠레 사람들의 대화를 이해해보고자 귀를 기울여보고, 말하고 싶은 단어들을 사전에서 찾아 틈틈이 외우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자신의 리스닝 실력이 뛰어난 것을 발견했다. 칠레식 스페인어를 듣는데 익숙해지자 주변 나라 사람들의 말을 다 이해할 수 있던 것이다.
현재 유준혁 씨는 학교에서 재능기부 차원으로 스페인어 스터디를 만들어 학생 10명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있다. 함께 스터디 하는 멕시코 사람도 그에게 “네가 우리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제일 잘한다”고 그의 실력을 인정해주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배운 스페인어, 어려운 가정 속에서도 행복해하는 현지인들을 통해 알게 된 부모님의 마음. 그렇게 칠레는 그에게 언어도, 대인관계도, 부모님과의 관계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준 고마운 나라가 됐다.

글 | 배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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