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PD가 되기를 꿈꾸는 노주은 씨는 케냐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것을 크나큰 행운으로 여긴다. 케냐인 친구 그레이스와 참된 우정을 나눴고 봉사활동을 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정확한 방향을 정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노주은 씨가 케냐로 해외봉사를 지원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케냐의 GBS 방송국에서 인턴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수험생이던 고3 시절, 하루 종일 공부하다가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밤이면 주은 씨는 TV로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았다.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면서 자신도 용기를 얻었다. 그때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대중에게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감동을 전해주고자 하는 꿈을 키워왔다. 따라서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며 얻는 보람은 그의 꿈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인크레더블 아프리카
주은 씨가 2011년 2월에 도착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놀라움 자체였다.
“우선 덥지 않았어요. 도로에는 폭스바겐과 아우디 등 고급 승용차가 즐비했고, 시내에는 고층 빌딩들과 세련된 건물들이 아름답게 서 있었어요. 사람들의 발걸음에는 활기가 넘쳤고 우리들처럼 캐주얼이나 정장 차림으로 여유로운 모습이었어요. 한국의 TV나 언론에서 항상 하루 한 끼도 못 먹고 굶어죽는 아이들을 후원하거나 전쟁과 내전에 대한 것만 봤던 저는 무척 놀랐어요.”
또 하나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케냐 친구 그레이스였다. 함께 봉사활동을 하던 그레이스는 케냐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키쿠유 부족 출신으로 큰 얼굴과 큰 입, 짧은 목 등 강한 인상을 가져서 못생겼다고 늘 놀리던 친구였다. 활발한 성격에 리더십이 좋은 그레이스는 역시 친구들을 리드하기 좋아했던 주은 씨에게 별로 호감 가는 친구는 아니었다.
8월에 주은 씨가 말라리아를 앓을 때였다. 말라리아는 모기에 의해 전염되며 약을 먹으면 쉽게 낫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무서운 열병이다. 그는 심한 근육통과 열 때문에 의식을 잃어서 병원에 입원했고 사흘 만에 조금씩 의식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주은아 빨리 눈 떠. 내가 네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흐느낌을 들었다. 그레이스가 그의 몸을 주무르면서 울고 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친하지 않은 친구면 병문안도 가지 않는데, 자기가 조금씩 피했던 친구 그레이스가 정성스레 간호해 주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다고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질병과 가난으로 배우지 못해 생각도 미개하다고 생각했는데 케냐인 그레이스는 오히려 자신에게 감명을 주는 친구였다.

우나빠냐니니?
주은 씨는 한국에서 친구들의 고민 상담까지 해줄 정도로 인기가 많고 모범적이며 할머니 세대와도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친화력을 가졌다. 하지만 케냐에 와서 동료단원들과 지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의 지적을 들은 동료들은 모두 그녀의 말을 듣기 싫어했고 결국 몇 달 후에는 아무도 그와 같이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밤마다 혼자서 달을 보며 눈물을 쏟았을 때, 그레이스가 “우나빠냐니니
(스와힐리어로 ‘너 뭐 하고 있어?’의 뜻)” 하고 다가왔다. 그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두 시간 동안 그간의 서러웠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그레이스는 아무 말 없이 들어주더니 완곡한 말로 그를 타일렀다.
“동료단원들이 너보다 언니들인데, 아무리 사리판단에 옳은 말을 해도 그렇게 너만 잘났다는 태도로 대하면 누구든지 기분 나빠할 수 있어. 나도 나보다 어린 애한테 그런 말을 들었다면 기분이 나빴을 거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 너에게도 어린 동생이 이것저것 지적하는데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지. 네가 말은 옳게 하고 있어도 마음은 어떻게 가졌는지 생각해봐.”
그의 머릿속에 불이 확 켜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자신이 하는 말이 잘못됐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레이스의 말을 듣고 먼저 동료단원들에게 다가가서 사과했을 때 자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 입은 것을 발견했다. 그는 봉사하러 케냐에 갔지만 막상 봉사자에게 가장 필요한 마인드인 배려가 없었고 타인의 입장에 대한 이해도 부족던 것이다.

자신보다 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못생겼다고 놀리기만 했던 그레이스가 점차 좋아졌다. 그레이스는 집안의 맏딸이라 돈을 벌어야 하고 시집도 가야 했다. 봉사활동이 좋아서 굿뉴스코 봉사단과 일하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의 심한 반대로 몹시 힘들어했다. 주은 씨도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며 ‘아버지라면 누구나 딸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다독여주기도 했다. 그레이스와 함께 서로의 단점과 아픈 사연들을 공유하면서 조언하고, 같이 울기도 하면서 주은 씨는 조금씩 어떻게 상대방을 위해서 희생하고 이해해야 할 수 있는지 배우게 됐다. 지식과 재능을 갖추고 무언가 잘해야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고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알고 상대방의 호의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부터라는 것을! 그때부터 가난하고 미개하다고만 생각했던 아프리카에 대해서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시골마을을 다니며 행사를 진행할 때 한 아주머니가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주셨어요. 한화로 5만 원쯤 되는, 그곳에서는 꽤 큰 돈이었는데 한사코 제가 거절해도 아주머니는 제 주머니에 돈을 넣었어요. 그리고 다른 마을에 갔을 때, 집안에 솥과 옷가지 몇 개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판잣집에 사는 어느 청년은 하룻밤 잘 수 있는 방을 빌려주고 우리가 외국인 손님이라고 값비싼 비프스튜를 식사로 사주기도 했어요. 예전 같았다면 짧게 감사인사만 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대접들이 무척 황송해서 한국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사람들과 같이 춤도 추면서 마음으로 친해지기 시작했어요. 때론 트럭 짐칸에 타고 가다가 비를 맞아 흠뻑 젖기도 했지만 머리 위의 아름다운 별들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케냐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위해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어요.”

케냐인들의 다큐를 찍고 싶다
사람들이 아프리카는 미개한 흑인들의 대륙이란 선입견을 갖게 된 이유를 그는 서구 언론이 아프리카를 향해 가진 고정관념을 한국 언론이 그대로 답습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수도 나이로비에는 세계 3대 슬럼가인 키베라가 위치해 있다. 밀집한 판잣집들과 진흙으로 만든 하수도를 따라 흐르는 오염수 등은 6.25 직후 한국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고 한다. 또한 나이로비 국립공원도 가까이 있어서 차를 타고 15분만 나가도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얼룩말과 원숭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케냐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를 처음부터 놀라게 했던 나이로비 시내에서 6월 한 달 동안 봉사활동을 진행하면서 시내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파란 하늘에 닿을 것 같이 높게 뻗은 고층 빌딩의 회사 직원들은 한국의 고위급 직원들과 똑같이 업무에 충실했으며 자신들의 사비를 기부하는 것에 대해 아깝지 않게 생각했다. 식품공장에서는 직원들이 흰 두건과 흰 앞치마까지 두르고 체계적인 위생 시스템으로 일하고 있었다. 또한 나이로비 시내에는 스타벅스 대신 자바 커피하우스라는 체인 커피숍이 곳곳에 있어 커피 한 잔과 치즈케익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새벽 6시 시내의 도로가 출근하는 차로 꽉꽉 막혀 있고 버스 정류장에도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 기혼 여성에게 ‘이렇게 일찍 출근하면 아침식사 준비와 육아는 신경 못 쓰지 않냐?’고 물었더니, 모두 해놓고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보다도 부지런하게 사는 케냐인들을 알고 있을까?’ 하고 보고들은 것 모두 일기장에 빠짐없이 기록했다. 나중에 PD가 된다면 고3때 자신에게 용기를 주었던 다큐멘터리처럼 그들의 삶을 다큐로 찍을 것을 다짐했다.

▲ (왼쪽)사랑하는 친구 그레이스와 함께. (오른쪽) <딜리셔스 나이로비> 촬영 중 카메라 앵글에 대해 의논하는 주은 씨와 촬영 스텝들.
▲ (왼쪽)사랑하는 친구 그레이스와 함께. (오른쪽) <딜리셔스 나이로비> 촬영 중 카메라 앵글에 대해 의논하는 주은 씨와 촬영 스텝들.

딜리셔스 나이로비
“10월 한 달 동안 드디어 GBS 방송국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됐고 제 희망지원 분야인 프로그램 기획부서에서 일했어요. GBS는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기 때문에 20대를 위한 교양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였어요. 나이로비 시내에는 대형마트, SPA 패션숍 등 여러 쇼핑타운이 많았지만 가장 관심 가는 곳이 맛집이었어요. 케냐 전통음식점부터 유럽, 중국, 한국 음식점까지 세계의 다양한 음식문화가 수많은 음식점으로 밀집해 있거든요. 케냐 사람들은 이런 음식점들을 알고 있을까 궁금하던 차라, 맛집 탐방에 대한 프로그램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그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것이 <딜리셔스 나이로비>였다. 그가 직접 음식점 섭외는 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스텝들에게 카메라 앵글을 알려주고 진행자의 멘트를 짜는 일 등을 담당하면서 정신없는 한 달을 보냈다. 넉넉하지 않은 촬영 경비로 최고의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케냐인 스태프들과 의논하고 따로 공부하면서 밤새 고민하는 시간은 전혀 고되지 않았으며 그의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단계라고 생각했다.

케냐로 가고 싶다
“봉사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친구들이 저보고 많이 변했대요. 전에는 말은 못했지만 저 때문에 상처받은 적이 많았다는 거예요. 제 좁은 식견으로 논리적으로 옳은 말만 해서 다가가기 어려웠다고요. 이제는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지 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PD라는 직업은 시청자들이 보기 원하는 취재거리를 알아내야 하고 촬영장에서 스태프들과 주연을 진두지휘하며 최고의 영상을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
어느덧 그가 케냐에서 돌아온 지 2년이 다 돼간다. 지난 방학 때 그레이스와 케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케냐에 갔을 때 <딜리셔스 나이로비>가 아직도 방영중이며 그레이스의 아버지는 최근 생각이 바뀌어 딸을 응원하게 됐다는 기쁜 소식들을 접하고 돌아왔다. 아직도 그레이스와 카카오톡을 주고받으며 다시 케냐에 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있다. 그가 일기장에 기록한 케냐를 바탕으로 공부하면서 다큐멘터리 취재계획도 열심히 세우고 있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본뜬 ‘비전 2030’이라는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하는 케냐의 정부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거나 나이로비 시내에서 일하는 이십대 직장인의 삶을 옴니버스 식으로 꾸며 <다큐 3일>처럼 만드는 등 케냐만 생각하면 즐겁고 벅찬 계획이 많다.
그의 학과 교수는 가끔 그에게 해외봉사 다녀온 이야기를 발표하게 한다. 단순히 꿈만 정하고 노력하지 않는 학생들과 달리, 다큐멘터리 PD라는 꿈을 꾸다가 케냐에서 봉사하고 난 후 ‘우리나라에서 왜곡보도하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진실된 삶의 현장들을 취재 하겠다’는 꿈을 가진 노주은 씨의 이야기는 동기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매우 바쁘게 대외활동을 하며 졸업을 기다리고 있다. 아프리카 땅에 다큐를 찍으러 가는 그날을 위해!

인물사진 | 배효지 기자   디자인 | 이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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