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우린 이미 클래식 애호가!"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 강마에의 모델로 잘 알려진 지휘자 서희태. 그는 클래식 음악을 묵은 김치에 비유한다. 김치독에 담긴 김치가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깊은 맛을 머금듯, 클래식 또한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며 그 깊이와 가치를 더해간다. 사실 클래식은 이미 우리 삶 속 깊숙이 들어와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장르다. 명 지휘자 서희태와 함께 클래식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우리 생활 곳곳에 숨은 클래식을 찾아서
 ‘클래식 음악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 머릿속은 금방 갖가지 생각들로 복잡해진다. 솔직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하자니 왠지 지성과 교양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 그렇다고 ‘예’라고 대답하자니 막상 자신있게 ‘안다’고 할 만한 클래식 작품이 거의 없다. ‘어느 음악가의 어떤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할까? 혹 곡의 제목을 틀렸다가 창피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들로 가득하지만 실상 우리는 정말 많은 클래식 음악들을 이미 알고 있다.
한 번 확인해 보자. 클래식 시대의 문을 연 유명한 음악가 하이든의 작품 중에는 <Haydn String Quartet Hob.17 Op.3-5  2nd mov. Andante cantabile “Serenade”>라는 곡이 있다. 이를 한국어로 읽으면 <하이든 스트링 콰르텟 호보켄 넘버 17번 작품번호 3-5번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세레나데’’>가 된다. 네댓 번 들어서는 제대로 외기도 힘들 만큼 복잡하고 긴 제목이다. 우리가 자주 쓰지 않는 외국어는 왜 그리 많은지… 거기다 숫자도 복잡하고 많아서 상당히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음악을 위의 QR코드를 클릭해서 들어보자. 우리 귀에 너무도 익숙한, 감미롭고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올 것이다. 그렇다. 이 곡은 우리가 휴대폰에 전화를 걸 때 수화기를 타고 들리는 통화연결음으로 자주 사용되는 음악인 것이다. 우리는 이 곡을 귓가에 맴돌 만큼 자주 들으면서도 정작 ‘이 곡을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유럽인들에게 이 음악을 들려주면 정확한 제목을 말하지는 못 해도 ‘하이든의 곡일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음악을 즐기는 데 반드시 제목을 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럽인들의 경우처럼 곡 자체의 분위기를 통해 정답을 생각하고 유추하는 것도 클래식을 즐기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태도다.
하나 더, 여러분은 1975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조스>의 주제곡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음악에도 고전(클래식)이 있듯 재난영화의 고전이 된 이 영화의 주제곡은 아무도 몰래 바닷물을 가르고 접근하는 괴물상어의 모습과 이로 인한 긴박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곡을 <조스>의 음악감독 존 윌리엄즈가 만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원곡은 드보르자크의 9번 <신세계 교향곡> 4번 악장의 첫 번째 테마곡이다(역시 QR코드로 들을 수 있다). 드보르자크와 <신세계 교향곡>, 학창시절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들 아닌가!
이뿐만이 아니다. 결혼식 하면 빠질 수 없는 <결혼 행진곡>은 또 어떤가. 식장에 가면 대개 피아노로 이 곡을 연주하지만 사실 이 음악은 트렘펫 세 대가 한꺼번에 울려퍼지는 굉장히 장대한 관현악곡이다. 작곡가는 독일의 낭만파 음악가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음악이다.
이처럼 클래식은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클래식을 주제로 한 대중강연을 할 때면,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이미 클래식 애호가’라고 강조한다. 심지어는 거리의 청소차가 후진할 때도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베토벤의 곡이 나오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명심하자. 클래식은 결코 지식층이나 상류층 등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는 전유물이 아니다. 클래식은 모든 이의 것이다.

묵은 김치처럼 세월의 무게를 견뎌냈기에 더 가치 있는 클래식
그렇다면 클래식 음악이란 정확하게 어떤 음악을 가리키는 걸까? 영어사전에서 ‘클래식classic’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고전적이라는 설명이 나와 있다. 최고를 가리키는 단어인 ‘클래스class’에서 파생한 말로 ‘최고의, 고상한, 유서 깊은, 권위 있는’ 등의 형용사가 따라 나온다. 다 일리 있는 말이다. 음악적으로 클래식이란 1750년에서 1820년까지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활동했던 시대를 이야기한다. 보다 넓은 의미로는 앞선 바로크와 이후의 낭만시대도 클래식에 포함된다. 그렇다고 그 시대에 나온 모든 음악이 클래식은 아니다. 200~300년 이상 지속적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오면서 세월의 무게를 견뎌냈고 지금도 사랑받는 소수의 음악이 진정한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대중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만으로도 클래식은 질긴 생명력을 지닌, 가치 있는 음악임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클래식을 자주 묵은 장醬이나 김치에 비유하곤 한다. 김치에는 겉절이와 묵은 김치가 있는데, 이 둘은 굉장한 차이가 있다. 설렁탕의 밑반찬으로 딸려 나오는 겉절이는 양념을 굉장히 많이 넣은, 숙성시키지 않은 김치다. 반면 묵은 김치는 양념을 적당히, 간간이 해야 하지만 숙성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 모차르트의 생애를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안토니오 살리에리라는 음악가가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으로 묘사되나 이는 허구에 불과하다. 아무튼 이 살리에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악장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문화체육부 장관에 해당한다. 그런데 ‘안토니오’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이탈리아 출신이었다. 이탈리아인이 오스트리아의 문화체육부 장관을 한다?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살리에리가 활약하던 때는 무려 250년 전, 교통이나 통신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다. 그럼에도 외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질 정도면 굉장한 음악가였음이 틀림없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가면 ‘라 스칼라’라는, 오페라의 성지로 불리는 유명한 극장이 있다. 그 극장의 개관 오페라를 작곡한 사람이 바로 살리에리이다.
그런데 혹 여러분 중 살리에리의 곡을 들어 본 사람이 있는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살리에리의 곡이 지금의 유행가와 같았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유행가는 어떤 음악인가?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예로 들자. 지난해 여름 발표된 <강남스타일>은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거의 부르지 않을 뿐 아니라 후속곡 <젠틀맨>이 발표되면서 한 물 간 느낌을 주지 않았나? 그리고 지금은 그 <젠틀맨>마저도 찾아 듣는 이들이 거의 없다.
궁정음악가인 살리에리는 굉장히 많은 곡을 썼지만, 대부분 유행가처럼 일회성에 그쳤다. 당시 왕실에는 왕자나 공주의 생일파티, 해외 사절단 환영행사 등 수많은 이벤트가 있었을 것이다. 살리에리는 그 행사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준비해야 했다. 이벤트가 끝나면 음악 역시 생명을 다했다.
반면 모차르트는 어떤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보자. 수많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보마르셰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하녀 수잔나에게 흑심을 품은 알마비바 백작은 하녀들은 먼저 자신과 첫날밤을 치러야 결혼할 수 있다는 해괴한 법을 만든다. 수잔나의 연인 피가로는 백작부인과 힘을 합쳐 기지를 발휘해 백작의 계략을 무너뜨리고 행복하게 결혼한다.’ 이것이
<피가로의 결혼>의 줄거리이다. 원래 이 희곡은 연극으로 공연되었는데, 귀족들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하여 공연이 금지되고 말았다. 모차르트는 이를 오페라로 만들어 대중 앞에서 공연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클래식은 대중과 호흡하며 오랜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생명력을 유지한 음악들이다.
클래식 작품의 제목을 안다고 클래식을 아는 게 아니다. 제목을 몰라도 좋다. 여러분 마음의 귀를 열고 들으면 된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팝송이나 대중가요도 자꾸 들으면 가사내용과 멜로디가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가.

▲ (왼쪽부터)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초상화
▲ (왼쪽부터)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초상화
음악가의 스토리를 알면 클래식도 즐거워진다
고전시대를 대표하는 삼인방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다. 그 중 맏형 격인 하이든에 대해 살펴보자. 1732년생인 하이든은 1809년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77세! 당시의 평균수명이 40세였으니 거의 두 배를 산 셈이다. 남성들의 평균수명이 77세인 요즘으로 따진다면 140세 정도? 굉장히 장수한 것이다.
하이든이 장수를 한 비결은 바로 그의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파파(아버지) 하이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관현악단(오케스트라) 단원들과도 친했다. 100명이 넘는 제자들 중 그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24살 아래인 제자 모차르트를 만난 그는 아버지 레오폴드에게 ‘신 앞에 맹세하건대, 당신의 아들은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작곡가입니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을 만큼 후덕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하이든은 원래 비엔나 소년합창단 출신이었다. 당시에는 여성이 교회나 왕궁에서 노래할 수 없어 변성기를 겪지 않은 소년들이 소프라노와 알토 등 여성의 음역대를 노래했다. 8살 난 소년 하이든의 목소리가 어찌나 고왔던지 지휘자는 하이든의 아버지에게 하이든을 카스트라토castrato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거세를 시켜 변성기가 오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영화 <파리넬리>를 보라). 카스트라토가 되면 성인 남성의 신체에 여성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어 굉장히 파워풀한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더구나 수입도 많고 지위도 높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하이든의 아버지는 그 제안이 썩 내키지 않았고, 결국 이를 거절한다. 결국 17세 때  변성기가 찾아오면서 하이든은 합창단에서 쫓겨났고, 이후 10여 년을 차디찬 비엔나의 길거리를 헤매며 공연해 얻은 수입으로 겨우 입에 풀칠하며 연명한다. 그러던 중 ‘마리아 안나 알로이지아 아폴로니아 켈러’라는 지독히 긴 이름의 여성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훌륭한 사람, 장수한 사람의 이름을 따다 붙이면 그렇게 된다는 미신이 있던 시절이니 이름 긴 것이 무슨 허물이랴! 문제는 그녀의 성격이었다. 박색에 신경질, 잔소리, 질투, 허영, 낭비벽, 석녀 등 악처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음악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하이든이 정성껏 쓴 악보를 냄비받침, 빵 봉투, 불쏘시개로 쓸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녀는 ‘돈을 벌기까지는 집에 들어올 생각도 말라’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는데, 결국 그 덕에 하이든은 성공을 하게 된다. 31살 때 유력한 귀족인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니콜라우스 후작의 눈에 들어 관현악단 부악장으로 초빙된 것이다. 이곳에서 장장 30년간 활동을 한 하이든은 특유의 상냥하고 온화한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고용주인 후작과 단원들 사이를 조율하며 많은 명곡을 남긴다.

하이든의 비범함, 그리고 모차르트의 천재성
하이든의 성품과 지혜를 잘 보여주는 일화를 소개한다.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전은 비엔나에서 동남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아이젠슈타트라는 농촌 마을에 있었다. 지금이야 차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당시 교통수단이라고는 말이나 마차가 고작이었다. 따라서 출퇴근을 할 수 없었던 단원들은 가족과 떨어진 채 아이젠슈타트에서 지내야했다.
얼마 후 단원들이 하이든을 찾아와 ‘가족들을 보고 온 지 오래 되었는데 왜 휴가를 보내주지 않느냐? 휴가를 보내주지 않으면 당장 그만두겠다’며 항의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고용주인 후작이 휴가를 보내주지 않기 때문이었기에, 중간자인 하이든 입장에서는 후작을 찾아가 단원들의 뜻을 전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하이든의 비범함이 드러난다. ‘후작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을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친 하이든은 특별한 교향곡을 하나 작곡한다.
얼마 후 악단의 공연을 보러 간 후작은 뜻밖의 교향곡 제목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곡 제목이 <결별>이라니?’ 연주는 시작되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연주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단원들이 하나둘씩 주섬주섬 악기를 챙겨 무대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연주는 계속됐고 결국 하이든과 바이올리니스트 둘만 무대에 남았다. 그제야 그 곡의 의미를 알아챈 후작은 단원들에게 휴가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하이든은 조국애 또한 남달랐다. 당시 유럽세계의 최강국은 영국으로, 전 세계를 식민지로 삼아 그곳의 부富를 끌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에는 단 하나, 위대한 음악가가 없었다. 어느 날, 영국은 하이든을 국빈으로 초청해 융숭하게 대접했다. 그리고 영국으로 귀화만 하면 음악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하이든은 “영국에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으나, 단 하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나의 조국 오스트리아다”라는 멋진 말로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 또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다. 불과 3살 때 누나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본 그는 혼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물론 아무도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5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해 9살 때는 교향곡을, 11살 때는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다. 그리고 12살 때는 오페라를 작곡하기에 이른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35년의 짧은 생애 동안 23편의 오페라를 비롯 626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 정도면 곡을 짓는 게 아니라 다만 머릿속 오선지에 있는 곡을 옮겨 적는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실제로 모차르트가 남긴 악보에는 틀리거나 수정을 한 흔적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가 14살 때 아버지를 따라 로마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침 미사를 드리는 시간이었다. 그레고리오 알레그리가 작곡간 <미제레레>라는 아름다운 합창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당시 성당의 곡들은 외부 반출이 금지되어 있었다. 러닝타임 약 10분, 9개 성부가 노래하는 이 대곡을 모차르트는 한 번만 듣고 그대로 옮겨적었다니,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이다. 모차르트를 단순히 음악분야만이 아닌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평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왼쪽부터 하이든의 초상화와 오늘날의 에스테르하지 궁의 모습.
▲ 왼쪽부터 하이든의 초상화와 오늘날의 에스테르하지 궁의 모습.
세계인과 친구가 되고 싶은가? 클래식을 배워라
클래식 음악은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나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1989년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시립 콘서바토리에서 유학했다. 유학하면서 주 오스트리아 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을 만날 기회가 잦았다. 그들은 만찬 등 현지 인사들과의 사교모임에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모인 인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나 관심사가 없다는 것이 큰 고민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음악을 화제로 삼아 말문을 틀 것을 권했다. ‘오스트리아인들을 만나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를 화두로 이야기를 꺼내보라’고. 이들은 하이든이나 모차르트가 자국 출신임을 몹시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서 온 검은 머리 외국인이 먼저 이들을 화제로 삼고 말을 걸어오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미국에 가면 스티븐 포스터나 명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이야기를 해 보자. 금방 마음을 열 게 틀림없다. 혹 독일인을 만난다면? 바흐에 대해 얘기하면 쉽게 말문을 열고 호감을 갖게 된다.
이처럼 클래식은 전 세계 누구나 알고 있는,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이다. 이런 음악을 학과목의 하나로 배우다 보니 우리는 지금까지 클래식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했다.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 맛과 멋을 알고 클래식을 대한다면 클래식은 정말 재미있고 실용적인 음악장르로 여러분에게 성큼 다가올 것이다.


글 | 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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