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친구의 고백을 듣고 당황한 남학생이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여성의 절반 가량이 크고 작은 성폭행의 피해자로 산다고 합니다. 이런 고백을 들은 남성들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지 이번호에서 함께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여자 친구와 사귄 지 1년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이라 그동안 가벼운 스킨십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친구와 결혼도 생각하고 있던 중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던 사람에게 당한 일이라 상처가 컸고, 그 일 때문에 남자를 만나는 것이 두렵고, 스킨십에 대해 거부감이 든다고 합니다. 제가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 줄 것 같아 어렵게 말하는 거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을 때는 괜찮다고 했지만 자꾸 그 일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런 상처를 가진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진짜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을지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혼자서 꿍꿍 앓지 않고 상담을 청하신 것은 정말 잘한 일입니다. 그 말을 듣기 전에는 여자 친구가 신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좋아보였는데 의외의 말을 듣고 보니 매우 혼란스럽고 정리가 되지 않아 마음이 복잡하시지요? 여자 친구는 
1년이나 사귀는 동안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스킨십을 참아주고 1년 넘게 기다려주는 님을 지켜보면서 아마도 믿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에게 하기 힘든 이야기인데 숨김없이 다 말하고 싶었던 것을 보면 나를 이해해주리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입을 연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
통계에 의하면 전체 여성의 절반 정도가 자라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추행, 혹은 성폭행 등에 노출이 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절반 이상의 여성이 성추행 등을 당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하지만 미국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서 심지어는 어떤 여학생은 성추행의 표적이 될까봐 두려워서 일부러 살이 찌도록 마구 먹어대어 비만이 되기도 한다고 하니 인류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 곳에나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의 비인격적인 행동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아주 경미한 성추행이라고 하더라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지만 가해자들은 피해여성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을 경우, 40퍼센트 정도의 여성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고, 40퍼센트 정도의 여성이 친구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나머지 20퍼센트 중에서 5퍼센트 정도만이 부모에게 말하고 나머지는 아는 사람이나 기타 상담기관에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경우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친구에게라도 말을 한 사람은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한 사람은 마음속으로 계속 자신이 당한 일을 곱씹어 생각해 보고 분노했다가, 화를 냈다가, 참으려고 하는 등의 갈등을 겪으면서 마음이 약해지기도 하고 생각이 한쪽으로 쏠리는 편중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생각 속에서 사건이 실제보다 더 크게 부풀려져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생각은 생각을 부르고 상상은 더 큰 상상으로 이어져 사실보다 훨씬 각색된 기억을 뇌 속에 저장해두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는 자살로 이어지는 사람도 종종 있습니다.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서 고민하는 것은 이렇게 위험하게 흘러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에게라도 말을 한 사람은 자기 생각 외에 다른 말을 듣게 됩니다. ‘너도 그랬구나? 나도 그런 일 있었어. 그런데 말할 수 없었어.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하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아, 나만 당한 게 아니었구나, 저 친구는 나보다 어릴 때 그런 일을 겪었구나. 얼마나 놀랬을까’ 등등의 마음을 느끼며 더더욱 친근한 친구 사이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분노도 희석이 되고 상처도 가벼워지는 것이랍니다. 이렇게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편안하게 기다려주세요
님의 여자 친구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얘기를 이제야 털어놓은 것입니다. 님에게  말해도 되겠다는 신뢰감이 생긴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마 찜찜하게 찌끼같이 남아있는 것을 내어놓고 밝게 사랑하고 싶어서 용기를 낸 것 아닐까요? 님을 믿고 털어놓았을 때 그녀가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요?
성추행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이루어진 추한 행동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성폭행과 같이 일방적으로 당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러다보니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진 일에 대한 분노나 좌절감이 클 수 있습니다. 불가항력적인 경우로 느껴질 수 있고 특히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세포에 두려움이 새겨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여자 친구는 경미한 사건이었을지라도 오랜 시간 왜 그리 시달렸는지 자기 자신도 정리가 안 됐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을 당했을까, 혹시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일을 당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며 자기 탓으로 돌리려니 화가 나고 상대방을 처벌하기에도 시간이 지나버려서 갈등이 지속되어 왔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속상했겠다. 그때 얼마나 화가 났니? 에이, 내가 그때 옆에 있어 줬어야 하는데....’ 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위로해 주기만 해도 마음이 훨씬 가벼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놀랜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에 비해 억지로 스킨십을 하는 것에 민감할 수 있으므로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편안하게 기다리며 서로를 깊이 있게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님이 원하는 결혼까지 갈 수 있는 사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존중해 주세요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원치 않는 일을 만나고 그런 일들을 통해서 마음이 연단되기도 합니다. 꽃이 예쁘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람에 스친 흔적도 있고, 진드기도 있고, 때로는 우박이 뚫은 구멍도 있는 등 꽃이 겪은 세월이 꽃잎에 수놓아져 있습니다. 내 앞에 선 그녀가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았는지 지나간 시간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오늘 당신 앞에 있는 그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녀가 아름답다는 것은 살면서 여러가지 인생사를 앓으면서 새겨진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을 일컬어 하는 말이 아닐까요? 여자 친구의 경험은 어쩌면 성에 대해 쉽게 생각할 수 없도록 오히려 그녀를 보호해 준 아주 조그만 생채기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마치 퓨즈가 과도한 전류의 흐름을 끊어 전기제품 본체가 손상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듯 말입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겠지요. 크든 작든 상처는 아픈 기억을 함께 간직한 흔적일 수 있는데 상처는 다 나았지만 기억은 아직도 아플 수 있어서 그것은 누군가 함께 해줄 때 눈 녹듯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기대며 사는 것이 인생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고 싶고 위로 받고 싶은 존재입니다. 저마다 연약함이 있지만 나의 약함을 숨기며 살아야 하는 세상 속에서 나를 이해해주고 보듬어 주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그 약함을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딛고 일어설 힘이 생기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 아닐까요?
지금 그녀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준다면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당신이 지치고 힘들어 기대고 싶어질 때 그녀가 당신에게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 기대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인 것입니다.
그녀를 만남으로 이런 갈등을 만난 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조금 감이 왔나요? 그녀는 당신을 더욱 사려깊은 남성으로 성장케 하는 여자 친구입니다. 사귀는 동안 사랑을 배우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세요. 이 가을, 따뜻한 마음으로 겨울 맞을 준비를 하면 좋겠습니다

도움말 최미희
사단법인 푸른아우성의 전문강사 및 책임상담원으로서, 초·중·고·대학생과 학부모의 성 고민뿐 아니라 부부 갈등 문제도 상담하고, 자살 방지를 위한 마인드 교육도 하고 있다. 작년 한 해만 100여 곳에서 강의를 했을 만큼  청소년들을 위해 상담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글 | 최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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