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한계선’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마지노선Maginot Line은  프랑스 장군 앙드레 마지노(1877∼1932)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공격에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던 그는, 독일과의 국경지대에 요새 건설을 제안한다. 그의 제안대로 프랑스는 1927년부터 엄청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벨기에 북서부에서 스위스 남동부 국경까지 이르는 총 길이 750km의 요새要塞를 건설했다. 9년 뒤인 1936년, 마지노선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고, 3년 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난공불락의 요새로 독일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낼 것으로 기대되던 마지노선이 드디어 제 가치를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1940년 5월, 독일 기갑사단은 그런 프랑스를 비웃기라도 하듯, 요새가 없는 벨기에 쪽으로 우회진격해 옴으로써 마지노선을 단숨에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마지노선처럼 때로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맥없이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의 눈으로 보면 프랑스가 요새를 쌓은 것은 내면에 숨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기인한다. ‘분명치 않은 마음’ 그것이 진정한 원인이라 말할 수 있다. 성경 <잠언>에 보면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 낫다’는 구절이 있는데 불확실한 것으로는 자기 마음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즐겁지가 않아, 뭐 좀 신나는 일이 없을까?” 하는 것은 꿈과 목적이 없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분명한 꿈과 목적이 없으니까 당연히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단지 생계수단이나 잠시 지나가는 일로 여기게 하며 매사에 대충 살게 만든다. 분명치 않다는 것은 당장은 큰 문제처럼 보이지 않으나 결국엔 우리 삶을 무너뜨리는 근본 원인이 되는 것이다. 목적 없는 항해는 그 자체가 표류인 것처럼, 마음의 항해도 분명한 목적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표류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목표에 도달해도 마음은 허탈하다고 한다. 목적을 상실한 마음 때문이다.

 
 
‘나는 배우지 못했어도 다음 세대는 배우도록 해야겠다’는 신념으로 40년 젓갈장사를 해서 모은 23억 원을 장학금으로 대학에 기부한 80세의 유양선 할머니. 우리는 이와 비슷한 사례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별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들은 금방 타성에 젖게 하고 결국은 관념적인 삶을 살게 만든다. 특히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현실에서 55세라는 ‘짧은’ 정년은 결국 입사해서 순차적으로 승진을 해가더라도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40대에 회사 임원이 될 확률은 1%에 불과하고 그것도 진급의 연한이 있어 얼마가지 못하고 ‘아웃’되고 만다.

그래서 목적보다 소중한 것이 ‘분명함’이다. 불확실한 것은 아무리 쌓아도 마지노선처럼 결국 무너지게 된다.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부를 가진 사람도, 권력을 가진 사람도, 명예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작은 신념을 가지고 자기를 계발해 나간 사람들이었다. 아침에 마지 못해 일어나고 허둥지둥하는 사람은 이미 실패한 인생이다. 마음에 분명함이 없기 때문이다. 억지로 일하는데 열정이나 자기계발이 발휘될 수 없다.
‘몸은 침대 위에서 쉬고 마음은 믿음 안에서 쉰다’는 말이 있다. 무엇이 서로를 믿도록 이끌어 주는가? 마음을 분명하게 알 때다. 서로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면 신뢰가 생기고 머뭇거림 없이 살 수 있다. 그래서 분명함이 주는 마음의 힘이야말로 무한한 마음의 세계를 열어주는 중요한 열쇠다.
 

글 | 김성국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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