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is Loving Others

절실하라!
디자이너 김영세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정말 절실하고 집요한 사람이에요! 나는!” 자신을 “Desperation!” 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는 1980년에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 교수가 되었고, 1986년 미국 실리콘 밸리에 한국인 최초로 디자인 전문회사를 설립한다. 1990년 미국산업디자이너 협회 선정 IDEA 동상, 1993년 IDEA 금상, 2000년 IDEA 은상, 2005년 레드닷디자인어워드(독일) 디자인상 수상 등 화려한 경력 속에서도 부단히 자신을 비우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그는 주변을 관찰하며 관심을 가지는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1970년대 누구도 가보지 않는 산업 디자이너의 길을 가느라 너무도 어려웠지만 그래서 더욱 절실했다는 그의 디자이너 인생에 획을 그은 그의 여러 ‘만남’에 대해 들어보았다.

첫 번째 만남, '산업 디자인' 책을 접하다

1970년대 디자인 공부를 할 당시 대한민국에서 산업 디자이너라는 호칭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김영세 디자이너는 자신이 한국 산업 디자이너 1세대라고 말한다. 지도에도 없고 GPS로 찍어도 나오지 않는 길이 당시 디자이너가 되는 길이었다. 그는 왜 그렇게 남들이 가보지 않은 어려운 길을 가려고 했던가.
어릴적부터 산만했지만 그림 그리기를 유독 좋아했던 어린 김영세가 16살 때 일이다.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많은 책들이 꽂힌 굉장히 큰 서재를 보며 어린 심성이 압도당했다. 우연히 책 한 권을 뽑아 펼쳐본 곳에 멋진 사진 한 장이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마음에 드는 사진 때문에 책 제목을 다시 본 그는 ‘그래, 바로 이거야!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거다!’ 하고 기뻐했다. 겉장에는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산업 디자인’ 책과의 인연으로 대학생 때는 디자인의 깊이를 알게 한 빅터 파파넥이 쓴 <Design for the Real World>이라는 책을 만난다. 청년 김영세에게 디자인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생각의 장을 열게 했고 “디자인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디자인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두 번째 만남, 빅터 파파넥 교수의 특강

 
 
▲ (위)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듯 디자인한다는 그가 딸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MP3를 디자인했다. 디지털 기술에 바비 브랜드를 접목한 이노 B2 제품은 2008년 서울 디자인올림픽 기간 중에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 (위)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듯 디자인한다는 그가 딸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MP3를 디자인했다. 디지털 기술에 바비 브랜드를 접목한 이노 B2 제품은 2008년 서울 디자인올림픽 기간 중에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두 번째 만남, 빅터 파파넥 교수의 특강
평소 간절히 보고 싶어하던 친구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반갑다 못해 경이로운 것처럼, 김영세에게도 도전을 시도한 행운의 사건이 일어난다. 25살 그는 당시 흔치 않는 유학길에 올라 ‘한국 디자인 회사를 만들어서 디자인의 뿌리를 내리고, 훌륭한 디자이너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꿈을 품는다. 그리고 일리노이 대학에 진학하고 한 학기 반만에 빅터 파파넥 교수님의 특강 포스터를 접했다. 그에게 빅터 파파넥 교수의 특강 소식은 마치 진흙속에 묻힌 진주를 발견한 것처럼 설렘, 감격 그 자체였다. 강의시간 내내 그가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고 떨렸을까. 누구보다 강의를 열심히 들은 그는 어떤 힘에 강하게 이끌리듯 교수 리셉션까지 찾아갔다. 교수들만 모여있는 리셉션 장소를 기웃하다 그는 빅터 파파넥 교수의 옆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늘이 내린 기회였기 때문에 엉뚱한 짓을 하기로 마음 먹었죠.” 기회는 단 한번,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벼든 그가 단숨에 빅터 파파넥 교수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쫓겨날까 봐 교수님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나는 한국에서 온 학생으로 당신의 책을 보았고, 그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습니다”하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을 걸었다.
수많은 전문가들에게 둘려싸여 있던 빅터 파파넥 교수는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파릇한 청년의 용기에 감동했고 나중에는 흔쾌히 그의 지도교수까지 되기로 결정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떨려요. 한 학기 동안 일리노이 대학에서 캔자스 캠퍼스까지 왕복 30시간을 오가며 교수님 댁을 다녔어요. 교수님이 직접 방 한칸을 내주셔서 그곳에서 며칠 지내다가 다시 일리노이 대학으로 돌아오곤 했죠.”
교수님 부부가 직접 만들어주신 샌드위치를 먹고, 캔자스 다운타운도 함께 구경하며 청년 김영세는 잊지 못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훗날 책 번역보다 직접 자신의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디자인과 삶에 관한 책 <12억짜리 냅킨 한장>, <이노베이터>, <이매지너>를 펴내기에 이른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오는 것 같지만 마음 먹는다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빅터 파파넥 교수님과의 꿈같은 만남을 그에게 찾아온 작은 기회로 받아들여서 무모해보이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김영세 디자이너
서울대학교에서 응용미술학을 전공하고 1974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일리노이 대학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직과 디자인 컨설팅 일을 병행하다 1986년 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 회사를 설립, 현재 이노디자인 대표이다. 2010년 상명대학 석좌 교수 등을 지내며 후학 양성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자녀에게도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지도한다.
김영세 트위터(@YoungSeKim)를 통해 디자인을 고민하는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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