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의 다음 단계는 방탕과 태만이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잘한다니까"



"하루 연습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알고,
이틀 연습하지 않으면 평론가들이 알고,
사흘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들이 알아차린다.”

폴란드 출신의 쇼팽 연주의 대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1887~1982)이 남긴 명언이다. 네 살 때 이미 연주회를 열 정도로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데다 요제프 요하임, 칼 라인리히 바르트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 아래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지독한 연습과 훈련을 반복해 온 결과 최고의 경지에 이른 그였지만, 정작 음악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하기만 했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평생 연주하겠다던 루빈스타인
사람들은 루빈스타인을 보며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하겠지만, 무대에 서기 위해 그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조차 힘든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눈 감고도 칠 수 있는 곡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그는 스스로 능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절대 과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겸비한 자세로 쉼 없는 연습을 통해 훌륭한 연주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비단 루빈스타인뿐 아니라 성공한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는 데 결코 여유를 두지 않았다.
“만약 ‘내가 어느 정도 정상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음악가가 있다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내려갑니다.” (미하일 간트바르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교수)
“더 못한다고,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할 때 그 사람의 예술 인생은 거기서 끝납니다.” (강수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 발레리나)
이들이 세계 최고가 된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정확히 발견한 데서 비롯된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성공을 보장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어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고 해도 내일의 공연을 위해 어제를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오늘의 연습을 맞이하는 것이다.


타이타닉, 태만의 3중주가 빚어낸 비극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과신하고 자신이 이룬 성공에 도취되거나 혹은 뜻밖에 찾아온 행운에 들뜬 나머지 태만과 방탕의 길로 들어서서 큰 어려움과 무서운 재앙을 겪는 사례를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기를 믿는 자만심이 빚어낸 가장 큰 참극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타이타닉 호 침몰 사건이 아닐까. 제조비만 약 4억 달러(현재 가치)에, 건조기간만 2년 2개월이 걸린 당대 최고의 초호화 유람선 타이타닉 호. 그 엄청난 규모와 성능을 접한 언론에서는 ‘신(神)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며 온갖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912년 4월 10일, 의기양양하게 뉴욕으로 첫 항해를 떠난 타이타닉 호는 불과 닷새 후인 4월 15일 새벽,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고 말았다. 배에 탔던 2,224명 가운데 711명만 살아남은 사상 최대의 해난 사고였다.
타이타닉 호의 침몰 원인은 무엇인가? 그 원인을 ‘자기를 믿는 마음에서 비롯된 태만과 방탕’에서 찾아보자. 첫째, 스미스 선장은 늘 자신만만하고 큰소리치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전에도 올림픽 호를 영국 순양함에 충돌시키는 큰 사고를 낸 경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충분히 조심할 법도 하건만, 타이타닉 호의 지휘를 맡게 되면서 37년 항해사 생활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 싶었던 그는, 대서양을 가장 빨리 횡단하는 배에게 주어지는 영예의 ‘블루 리밴드(Blue Riband)’를 받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당시 23노트까지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는 타이타닉이라면 충분히 탐낼 만한 목표였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욕망을 덧붙여 빙산이 출몰하는 4월의 차가운 북대서양 바다에서 위험한 질주를 감행했고 마침내 빙산과 충돌하는 참사를 빚고 말았다.
침몰의 두 번째 원인은 선원들의 무사안일주의였다. 출항할 당시, 쌍안경 보관함의 열쇠가 제대로 인수인계되지 않아 쌍안경을 꺼낼 수 없었던 선원들은 육안으로 전방을 관측할 수밖에 없었다. 선원들이 빙산을 발견하고 배를 꺾어 보려 했지만, 전 속력으로 돌진하던 배를 갑자기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뱃머리는 간신히 빙산을 피했지만 배 우현이 충돌하면서 타이타닉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세 번째 침몰 원인은 배를 설계한 토머스 앤드류스와 선박회사의 태만한 운영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박재흥 교수는 빙산 관측시설인 탐조등과 망대를 설계에 두지 않은 점, 경험 없는 신참 선원을 구명보트 요원으로 배치시켜 보트를 제대로 하선시키지 못해 구조가 지체된 점, 미관을 이유로 모든 승객들이 탈 만큼 충분한 수량의 보트를 준비하지 않은 점 등을 타이타닉 비극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태만’과 ‘방탕’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예방하거나 피해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고였다는 것이다.
‘방탕’ 하면 생각 없이 돈을 물 쓰듯 쓰고, 술과 도박으로 인생을 허비하는 모습을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방탕(放蕩)
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이 들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이다. 타이타닉의 선장과 승무원들이 최우선시했어야 하는 것은 ‘승객들의 안전’이다. 자기 위치에서 할 일을 하지 못해 생긴 타이타닉의 비극은 태만과 방탕의 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  타이타닉 호의 선장 에드워드 J. 스미스. 타이타닉 호 침몰소식을 알리는 1912년 4월 16일자 뉴욕타임즈
▲  타이타닉 호의 선장 에드워드 J. 스미스. 타이타닉 호 침몰소식을 알리는 1912년 4월 16일자 뉴욕타임즈

나는 루빈스타인에 가까운가? 스미스 선장에 가까운가?
‘나’ 자신의 모습을 냉정하게 돌아봤을 때,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 쪽인가, 아니면 스미스 선장 쪽인가? 만약 루빈스타인 쪽에 가깝다면, 루빈스타인이 자서전에 ‘나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썼듯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기본적인 마인드를 갖춘 것이다. 그러나 행여 그렇지 못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Tomorrow> 캠페인
「생각대로? NO!」는 바로 그런 사람을 위해 준비된 것이니 말이다.
삶에서 새로운 변화를 맛보기 원하는 <Tomorrow> 독자들을 위해 여대생 C양의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학창시절 소위 ‘잘 노는’ 학생이었던 C양에게 학교는 놀이터, 선생님은 동네 아저씨와 아줌마에 불과했다. 학교 친구들로부터 매일 돈을 갈취했고, 길거리에 다니는 어른들에게는 ‘차비가 없으니 천원만 달라’고 돈을 구걸했다. 그렇게 모은 돈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클럽에 놀러가는 등 겉모습을 빛나게 꾸미는 일에 써버렸다. 학교 ‘일진’ 멤버로 거친 삶을 살면서 경찰서를 드나든 것만 해도 수 차례.
진학은커녕 당장 고등학교 졸업장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선생님들과 주위 친구들은 그녀를 감싸주었다. 문제학생인 것은 분명하지만 밉상 짓을 해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그녀의 미소 때문이었다. 얼굴도 예쁜 데다 붙임성도 좋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그녀는 친구나 선후배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사고를 치고 다녀도 선생님들이 C양을 안타까워하면서 붙들어 주었기에, C양의 마음에는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내 마음대로 만날 수 있고 차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하루에도 친구들과 약속을 두세 건씩 잡고, 여러 이성을 동시에 사귈 정도로 C양은 사교계의 주인공처럼 바쁘고 대범해졌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내 마음대로 만날 수 있고 차버릴 수도 있다?
술, 담배, 게임, 남자친구, 돈…. 하고 싶은 걸 모두 하면 행복할 줄 알았던 C양은 점차 자신의 삶에 지루함과 공허감을 느꼈다고 한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다가 잠들고, 눈 뜨면 또 저녁 무렵.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아가는 게 이젠 지옥 같았다.
전과 다른 새로운 삶의 변화를 찾던 그녀는 어느 날 굿뉴스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해외봉사에 자원해 미국으로 파견되었다. 물론 C양의 그릇된 성격이나 어두운 마음이 마법처럼 한순간에 바뀐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하는 일마다 사고치기 일쑤였고, 매일 눈총 받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릇을 깨뜨리는가 하면, 같이 간 동료 단원들과도 자주 부딪혔다. 그러면서 ‘난 항상 잘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자기를 믿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뭐든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정작 실수와 문제만 일으키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늘 자기가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잘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다가 자신의 진면목을 목도한 것이다. 굿뉴스코 미국 지부장님과 동료 단원들은 그녀가 스스로를 발견할 때까지 묵묵히 참고 기다려 주었고, 그녀는 비로소 자기를 가둬 놓고 있던 고치를 뚫고 나와 아름다운 나비로 변화할 수 있었다.
1년간의 미국 해외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C양은 현재 학업을 계속하는 한편, 대안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C양이 나오는 것이 바로 <Tomorrow>가 「생각대로? NO!」 캠페인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다.


변화의 원동력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
자기를 믿는 마음이 결국 자신을 실패케 하는 첫 단추라는 지난 호 기사를 보고 한 학생이 질문을 보내왔다. ‘부모도 친구도 못 믿을 이 세상에서 내가 나를 믿고 살아야지 누굴 믿고 살란 말이냐?’ 그 답변에 앞서,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나를 믿는 것. 나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과연 영원성, 완전성, 항상성을 지니는 전능한 존재인가?’ 하는 물음이다. 불완전하고 감정의 기복이 있으며 꼭 필요한 능력 중엔 없는 게 더 많은, 그런 나를 정확히 인정하고 나면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만약 물에 빠졌을 때 동아줄과 지푸라기가 있다면 어느 줄을 잡겠는가? 가끔 오기로, 객기로 지푸라기를 잡는 사람도 있겠지만 단단하고 질긴 동아줄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엄밀하게 보면 풍랑 많은 이 세상에서 지푸라기 같은 무능한 존재다.
사람들은 누구나 변화되기를 갈망한다. 변화는 자신에게 없는 새로운 힘과 지혜, 마음의 세계를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힘과 지혜, 마음을 받아들이는가?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사람, 자신을 잘났다고 높이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믿을 수 없다. ‘이만하면 됐다. 이 분야에 대해선 다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나는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자만하는 사람은 결코 변화할 수 없고 발전할 수도 없다. 위대한 과학자 뉴턴이 제자들에게 남긴 유언은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다른 학자들은 평생 하나도 이룩하기 힘든 업적을 수없이 남기신 선생님께서 아직도 부족하거나 아쉬운 것이 있으신지요?”
“부족하다 뿐인가. 나는 진리의 큰 바다를 앞에 두고도 고작 백사장에서 조가비를 주우며 기뻐하는 어린아이와도 같았네.”







* 이 기사는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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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성훈 기자
[출처] 투머로우 - http://www.itomorrow.co.kr/contents/bbs/board.php?bo_table=twarticle&wr_id=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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