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종영한 MBC드라마 <구가의 서>의 OST들은 드라마의 인기만큼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중 <나의 사랑비가 되어 줄래>는 극 후반부에서 짧게 흘러나왔지만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달달하게 묘사하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시청자들에게 큰 여운을 남겼던 노래의 주인공 가수 신재를 만났다.

 
 
신재는 2년 전 SBS 드라마 <49일>의 타이틀OST를 불러 이미 명품 보컬로 이름난 가수다. 그가 부른 <눈물이 난다>가 처음 방송에 나왔을 때 많은 시청자들이 노래 제목과 가수를 궁금해 했고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이후 음원 사이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고 드라마가 일본으로 수출됐을 때도 여전한 인기를 누렸다. 때문에 많은 일본인 팬들을 위해 그는 자주 일본으로 공연하러 가는 한류스타가 됐다.
기자가 그를 두 번째 만났을 때도 일본 공연을 다녀온 직후였다. 소소히 자신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그에게서 아직 데뷔하지 얼마 안 된 신인 가수의 설렘과 열정이 느껴졌다.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접어든 길
그가 처음 가수를 꿈꿨을 때는 고등학교 3학년부터다. 태권도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던 그가 축제 때 반대표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인상깊게 본 담임선생님이 그에게 가수의 길을 권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음악을 하고 싶다면 가능하면 가수보다는 작곡이나 악기 연주의 길을 가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작곡을 배우고 피아노나 다른 악기들을 배워보려고 노력했지만 노래 말고는 즐겁게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네가 가수가 하고 싶다면 4년제 대학교의 음악과에 들어가서 인정받은 실력으로 노래를 해라”고 조언했고 중앙대 음악극학과에 응시했다. 수능 점수가 좋지 못했지만 실기에서 그의 가창력이 빛을 발하면서 실기 1등으로 당당히 합격했다고 한다.

뮤지컬 무대에 서서
음악극과는 성악과 판소리, 민요 창법들을 배우며 주로 한국적인 창작뮤지컬을 공연했다. 단 3시간 공연을 위해 3개월간 고생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그에게 무척 매력적이었고,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연기하는 짜릿함도 좋았다고 한다. 2학년 때는 도올 김용옥이 대본을 쓰고, 박범훈 중앙대 총장과 김성녀 중앙대 국악대학 학장이 각각 작곡과 연출을 맡은 창작음악극 <나는 일어나리라>가 전국순회공연으로 열렸다. 오디션에서 신재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주인공인 제가 18곡이나 불러야 했기 때문에 세 달 동안 죽어라 연습했어요. 공연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안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공연을 마친 후로는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목이 잘 쉬지 않게 됐어요. 그때가 대학시절 중에 가장 노래실력이 늘었던 때였습니다.”
이외에도 역사 뮤지컬 <은행나무의 꿈>, 연극영화과와 함께했던 음악극 <혜초> 등 다양한 뮤지컬과 성악 음악극을 하면서 그만의 발성과 보이스 활용도를 넓혀 나갔다.

가슴 아프게 실패하다
실기 1등, 대형 뮤지컬의 주인공, 다수의 공연으로 받았던 지인들의 찬사와 부모님의 인정. 어쩌면 이 정도는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아직 20대 초반 새파란 감성의 청년이었고 ‘이제 음반 내면 되겠다. 노래가 좋으면 입소문 나서 팔릴 것’이라는 섣부른 생각으로 무턱대고 2009년에 싱글 음반 <가슴이 아파요>를 냈다. 결과는 노래 제목처럼 처참하게 가슴이 아팠다.
“완전 망했죠. 소속사도 없이 일을 저질렀던 제가 가요계의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된 때였죠. 상실한 마음으로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 뉴욕에서 유학하는 친구를 찾아갔어요. 양손에 커피와 햄버거를 들고 다니며 바쁘게 일하는 뉴욕 사람들 틈에서 제 친구도 학업 때문에 무척 정신없더라고요. 저 혼자 시내 한복판에 서 있는데 제 자신이 무척 한심해보였어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교훈 하나 안고 귀국했어요.”

눈빛이 달라졌다
곧바로 학교로 복학해서 무조건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뮤지컬, 연기 연습과 운동을 하다가 귀가하는 하루를 반복했다. 여느 기획사의 연습생처럼 자신 스스로를 관리하기 시작했고 체중도 11kg나 감량했다.
“제가 사실 1~3학년 때 매우 건방져서 뮤지컬 연습에 일주일 동안 빠진 적도 있어요. 제 기분 위주로 학교를 다녀서 학사경고도 받았죠. 그런데 복학 후에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어요. 아버지께서도 저를 보시고 ‘게슴츠레하고 날카로웠던 네 눈빛이 이제는 선하게 변했다’고 하셨어요. 노래 부르는 목소리 톤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차분해졌다고 들었어요.”

 
 
OST 가수로 시작하다
2011년 졸업 공연을 마쳤을 때, SBS 드라마 <웃어요, 엄마> OST 제작사로부터 그의 노래를 사용하고 싶다는 믿을 수 없는 연락이 왔다. 이어서 해당 제작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서 소속가수로 들어갔고
4월에는 드라마 <49일>의 <눈물이 난다>를 불렀다.
“작곡가가 제 목소리를 마음에 안 들어했어요. 첫 녹음이라 잔뜩 긴장해서 불렀더니 작곡가가 퇴짜를 놓더라고요. 일주일 동안 집안에 갇혀서 낭떠러지에서 지푸라기 하나 붙잡은 심정으로 노래연습에만 매달렸어요. 그리고 다시 녹음했을 때 작곡가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지만 음악감독님이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셔서 OST로 채택됐어요. 주인공 이요원 씨의 테마곡이었는데 자신의 테마곡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삽입되는 것을 보고 질투하실 정도로 <눈물이 난다>가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이후 그는 드라마 <무사 백동수>, <태양의 신부>, <로맨스가 필요해 2012> 등의 OST를 연타로 성공시키면서 ‘신재’란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감동을 주는 노래를 터득하다
“사실 제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기획사 오디션을 보러 가면 보이스 톤이 얇고 평범하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해서 일부러 두껍게 부르려고 노력했거든요. 대학에서는 성악을 배우다보니 제 원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높은 음을 더 깔끔하게 부를 수 있도록 발전했어요. 그리고 드라마 OST로 그런 제 미성이 흘러나왔을 때 의외로 장면과 잘 어우러지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을 봤어요.”
어떤 기교도 쓰지 않고 부르는 그의 정통 발라드에 어느새 시청자들이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돌 가수들의 빠른 댄스 음악이 주류를 이루는 가요계에서 그의 평범한 미성이 어느덧 경쟁력있는 보이스가 됐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가 매번 OST를 녹음할 때마다 어떤 감정으로 어떤 보이스톤을 택해야 할지 녹음실에서 고민도 상당하다.
“여러 OST를 녹음하면서 터득한 사실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감동을 주고 싶다면 노래를 부르면서 절대로 제 감정에 심취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제 감정으로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나름 쉬울 줄 몰라도 작곡가가 곡을 쓰면서 의도했던 감동은 대중에게 전해지지 못하거든요. 대중음악이라는 것은 가수 자신이 좋아하는 것보다 대중이 좋아해주고 공감할 수 있는 느낌을 연구해서 불러야 되더라고요.”
때문에 곡을 받은 처음에는 가사를 말하듯이 읽어 보고 작곡가가 왜 이 곡을 썼고 어떻게 부르길 바라는지 생각한다고. 그리고 멜로디 라인 위주로 부르지 않고 가사의 한 글자, 한 음을 정확히 짚어가며 불렀을 때 대중이 느끼는 노래의 감동은 더 크다고 말한다.

아직도 긴장하고 성장하는 가수로서
그리고 지난 2월, ‘얼굴없는 가수’였던 그가 정규 첫 번째 앨범 <LOVE>를 발표하면서 생방송 음악방송에 출연했고 처음으로 그의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알렸다. 타이틀곡 <맘이 너무 아프다>를 열창하자 그의 목소리를 기억해낸 많은 관객과 시청자들이 그의 첫 앨범 발매를 축하해주었다. 음원판매도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물론이다.
“김범수 선배님처럼 대중들의 마음에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노래를 하고 싶어요. 마음이 외로워서 한때의 추억 속에 젖고 싶은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들으면서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감성 속에 젖어들기를 바랍니다.”
그는 OST를 부른 지 4년이 됐지만 여전히 새로운 곡을 받으면 긴장이 된다고 한다. 작곡가와 대중이 어떤 식으로 불러야 감동할지 연구해야 하기 때문인데, 그게 바로 가수가 해야 하는 고민이 아닐까. 대학시절에 자신의 뛰어난 실력만으로 가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가 한번의 실패와 사회생활을 겪은 후, 가수라는 직업이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하는 자리인지 노래를 하나씩 부를 때마다 알아가고 있다. 발라드의 계절 가을에는 그의 또 다른 싱글 앨범이 발표될 예정이다. 이전 앨범보다 더 성장한 28살 가수 신재의 훨씬 깊고 진지해진 감동 멜로디를 기대해보자.

글 | 전진영 기자   사진 | 홍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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