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엔 “엄마 아빠 중에 누가 더 좋아?”
청소년기에 이르면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결혼적령기에는 “사귀는 사람 없니?”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적인 질문들이다. 하지만 무심코 던진 그 질문에 싱글맘 자녀, 꿈이 없는 사람, 모태 싱글족은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부모와 배우자는 내가 원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꿈의 세계는 다르다. 꿈을 갖는 데엔 천부적 재능이나 타고난 배경이 필요치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앞날의 꿈을 물으면 ‘아직 잘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린다. 꿈이 뭐길래 이리도 갖기 어려운 걸까? 나의 꿈을 찾기 이전에 무엇이 꿈인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원익의 자전적 에세이 <비상>에 보면 ‘이 일이 얼마나 전망이 좋은가, 얼마나 많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것인가 하는 얕은 생각이 아닌, 내 인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 행복한 일인가에 답할 수 있는 것을 나는 꿈이라고 부르고 싶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처럼 꿈은 내 전부를 걸고서라도 얻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위인전 주인공들의 꿈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박을 받아왔기에 꿈은 실현시켜야 한다는 강박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단언하건대, 꿈은 성공과 실패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며, 꿈이 있느냐 없느냐의 존재 유무로 봐야 하는 것이다. 그 꿈의 크기나 실현 가능성에 좌지우지되어서도 안된다. 꿈은 선천적 재능이나 뛰어난 머리, 유복한 환경, 일류 학벌, 다채로운 경력과 무관하며, 앞날이 창창한 젊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도 아니다. 따라서 꿈을 가져보기도 전에 꿈을 이루느냐 마느냐에 집착해서는 더욱이 안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원대한 꿈을 이뤄 성공한 사람들을 각종 미디어에서 수시로 접한다. 7살 때 최고의 피겨스케이터가 되겠다는 꿈을 꾼 김연아가 그렇고, 10살 때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한 미국의 최연소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그렇다. 이들처럼 일찌감치 자신의 확고한 꿈을 발견해서 그 길로 매진해온 사람들 때문에 꿈이라는 말만 나와도 주눅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들을 내 꿈의 기준으로 삼을 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지금까지 내가 품어온 꿈까지 잃어버릴 수도 있다.

최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관한 책 서너 권을 동시에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인생 여정을 들여다보니 꿈 없는 사람들에게 숨통 트일 희망이 보였다. 외교관이라는 꿈이 확고해진 고 2때까지의 그는 학교마다 한둘씩 있게 마련인 공부 잘하고 품성 좋은 모범생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해 생전처음 영어를 접한 그는 낯선 외국어를 배우는 맛에 푹 빠졌고, 충주 비료공장 미국인 기술자의 부인이 만든 영어회화반에 들어가 리스닝과 스피킹을 배운다. 영어에 특출한 반기문은 고등학생 때 영어 에세이 경시대회 수상을 계기로 미국 방문의 행운을 얻었는데, 그때 백악관에서 만난 케네디 대통령이 그에게 꿈을 묻는다. 열여덟 살 소년은 ‘외교관’이라고 답했고 그것은 그의 견고한 꿈이 되어 44년 뒤 유엔사무총장에 이르는 힘이 되었다.

그런데 꿈의 전개 방법에 있어서 반기문 총장은 김연아, 오바마 계열이 아니다. 살면서 순간순간 만난 기회들을 성실히 즐겼고 거기서 파생된 작은 꿈들이 점처럼 이어져 지금의 큰 꿈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꿈은 마치 생명체와 같아서 처음부터 나무로 태어나는 경우는 없다. 꿈이라는 작은 씨앗을 마음에 심어 희망이라는 물을 주면 언젠가는 반기문 총장처럼 나무로 성장하는 것이다.
꿈은 꿀수록 다른 꿈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처음부터 대단한 꿈이 아니어도 된다.
얼마 전, 끊임없이 꿈꾸고 도전하면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을 보았다. 재즈 뮤지션 나윤선이다. 이번 스위스몽트뢰 재즈페스티벌에서 그녀는 스캣(가사 없이, 뚜루 땁따답 하면서 즉흥적으로 부르는 창법)으로만 노래했는데, 오래 전에 ‘스캣으로만 노래 부르는 게 꿈이에요’라고 말했던 것을 해낸 것이다. 자신의 몸을 악기 삼아서 목소리로 선율을 만들어낸 그 무대는 청중들의 열띤 갈채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나이가 있던 꿈도 접고 안일한 삶을 택할 마흔네 살인데 말이다.
나윤선은 프랑스가 주 무대이다. 재즈 뮤지션은 아이돌 가수와 달라 유명해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일 년 중 8개월을 파리의 월세 원룸에 머물고, 연간 2백여 회의 공연 스케줄을 감행하면서도 힘들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 이유는 음악이 좋고 음악으로 인해 그녀가 행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샹송을 좋아한 그녀는 건국대 불문과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음악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없어 스물여섯 살 뒤늦은 나이에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냥 음악이었지, 샹송과 재즈로 구분하진 않았다. 프랑스에서 음악 공부를 하면서 그녀의 꿈은 구체화되었다. 노래라는 꿈의 계단을 한 칸 올랐을 때 그녀에게 재즈라는 다른 꿈이 기다리고 있었고 다음 계단에는 스캣송, 그 다음 계단에는 미국 무대 진출이라는 꿈이 새롭게 등장했다. 그래서 여든이 되어서도 무대에 서는 것이 그녀의 최종 꿈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꿈을 열정적으로 얘기할 때 최소한 ‘더 살아봐, 별 수 없어’라는 말은 하지 말자. 꿈은 꿈 자체로 소중하다. 현실적으로 이뤘느냐는 효율지상주의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성공이란 단어를 결부시키지 않으면 꿈을 찾는 게 훨씬 수월해진다. 그러니 오늘부터 당장 꿈을 꾸자. 오늘은 남은 내 인생의 가장 빠른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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