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가 무조건 나쁘다고?

대부업 또는 사채私債 하면 여러분들의 뇌리에는 무엇이 떠오르는가? 터무니없이 비싼 이자에, 제때 갚지 못하면 정체불명의 남자(?)들로부터 갖은 협박을 받는 모습이 떠오르지는 않는지? 무등록업체가 일부 있긴 하지만 대부업은 엄연히 지방자치단체에 설립 신고를 하고 운영되는 소비자금융 업체다.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나 할부 등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대부업을 이용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일상 속에서 오해하기 쉬운 개념인 사채를 통해 경제현상을 뒤집어 살펴보자.
글 | 한정석   담당 | 김성훈 기자   디자인 | 김현정 기자

 
 

사채는 도대체 왜?

17세기 초 무렵, 이탈리아의 베니스에 샤일록이라는 고리대금업자가 있었다. 그는 유태인이었다. 당시 유태인 대부업자는 사회적으로 평판이 나빴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그런 수모에 대해 분노를 품던 샤일록은 어느 날 무역자금을 빌리러 온 안토니오에게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할 경우 1파운드의 살을 내놓을 것’을 제안한다. 아니나 다를까, 안토니오는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했고 샤일록은 1파운드의 살을 요구한다. 재판장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샤일록이 끝까지 안토니오의 살, 즉 생명을 요구하자 재판관은 샤일록에게 ‘1파운드의 살을 가져가되 계약서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 것’을 명한다. 결국 샤일록은 패소하고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만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줄거리다.
<베니스의 상인>은 사람들에게 ‘고리대금업자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는 잘못된 고정관념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대부업자들을 경원시하는 이유는 그들이 높은 이자를 받을 뿐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해 불법추심不法推尋, 즉 협박이나 공갈, 때로는 폭력 같은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사채를 썼다가 봉변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우리는 언론에서 심심찮게 발견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불법사채업자’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신용카드나 할부금융, 대부업(예:러시앤캐시) 등의 소비자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업이라고 무조건 불법사채는 아니다. 불법사채란 허가를 받지 않은 대부업이니까.
그렇다면 이같은 불법사채는 도대체 왜 등장하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시중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이들 중에는 급전急錢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서이다. 그들은 비싼 이자를 기꺼이 무릅쓰고 돈을 빌리려고 한다. 이들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이유는 대개 신용등급이 낮기 때문이다. 신용이 낮다는 것은 곧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사채업자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다.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은행들이 돈을 떼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왜 사채업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돈을 빌려주는 걸까?

 
 

사채,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같은 물음은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즉 어떤 사채업자들은 비록 신용이 낮은 사람들일지라도 그 중에는 돈을 갚을 수 있는 이들이 있다고 판단한다. 다만 그 판단이 틀릴 수도 있기에 사채업자는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10명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가 평균 5명꼴로 돈을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대부업자는 나머지 5명으로부터 그만큼을 보충해야 한다. 아울러 빚을 받아내는 추심推尋 작업은 사람이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인건비가 많이 든다. 즉 사채업자의 기회비용이 은행보다 높기 때문에 사채업자로서는 높은 이자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채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 유럽 각국이 활발히 해외로 진출하던 시대를 대항해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샤일록 같은 대부업자들은 원거리 무역이 성행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했다. 해외교역을 마치고 들어온 무역선들을 담보로 삼아 돈을 빌려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업에 한번 실패한 사람들은 신용이 떨어져서 돈을 빌리기가 쉽지 않기에, 더 많은 이자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돈을 빌릴 수 있는 대부업자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한번 사업에 실패한 사람도 재기할 기회가 주어진다.
예컨대 여러분에게 1억 원을 밑천으로 시작하면 1년 뒤 2억을 벌 수 있는 확실한 사업아이템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1억 원에 대해 연리3%(시중담보대출 평균금리)가 아닌 10%, 아니 어쩌면 50%의 이자를 내더라도 돈을 빌리는 것이 이익이다. 설령 60%면 어떤가? 이론상으로는 90%의 이자를 내더라도 1억 원의 10%, 즉 1천만 원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돈을 빌릴 때 이자의 최고한도를 정해 놓은 이른바 ‘이자제한법利子制限法’에 의해 대부업자들이 그렇게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최고이자율은 연 39%다. 과거 60%이던 것이 45%, 그리고 다시 39%로 내려온 것이다. 이자제한법은 사실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 같지만 사실 많은 대부업자들의 채산성을 악화시킴으로써 신용이 낮지만 좋은 아이템이 있는 사람들이 돈을 빌릴 수 없게 만든다. 다시 말해 시장에서 선택의 기회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한국서 더 잘나가는 일본 대부업체의 비밀

“산와, 산와, 산와머니~!”
“대출은 역시 러시앤캐시!”
TV광고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들 업체는 한국으로 진출한 일본 대부업체들이다. 그 외에도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대부사업을 하는 업체들 중엔 일본계 기업들이 많다. 이유가 뭘까.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성공요인으로는 안정적인 자금조달, 신뢰성 회복, 비대면 거래, 소비자보호 관련 법제도 정비를 꼽을 수 있다. 일본 대부업체들은 국내 업체들과 달리 안정적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그 결과 대금업 영업비營業費 중 외부기관에서 빌려온 금융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1.5% 수준에 불과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한-일 대부업체들의 경쟁력을 비교해 보자. 먼저 일본 대부업체들은 우리 토종 대부업체들보다 싸게 돈을 빌려온다(이를 ‘조달금리가 낮다’라고 표현한다). 일본의 경우 대부업체들의 조달금리는 2~3%에 불과한 데 비해 국내 대부업체들은 15~20%에 달한다. 대부업체들은 싸게 돈을 빌려오니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소비자 대출금리도 낮을 수밖에 없다. 일본 업체들의 소비자 대출금리는 16~29%인 반면, 우리 대부업체들의 대출금리는 60~66%(2008년 기준)였다. 아울러 대손율貸損率, 즉 돈을 빌려가서 갚지 않는 대출금 상환 불능률을 보면 일본은 2~3%지만, 우리는 15~20%에 달한다. 한 마디로 ‘일본 대부업체들은 싸게 돈을 빌려 우리보다 싸게 대출해 주고 대출자들도 돈을 잘 갚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 대부업체들이 우리보다 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들 업체들은 은행이나 생명보험사 등 대형 금융기관으로부터 장기자금을 조달한다. 일본의 5대 대부업체들이 은행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은 50~70% 수준이다. 지난 1999년 5월 일본은 관계법령 개정을 통해 대부업체들도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대형 대부업체들의 자금차입은 대부분 단기가 아닌 장기자금이며, 이 또한 각종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해 금리를 고정시켜 놓고 있어 일본의 대부업체들은 국내 업체들보다 낮은 금리로 소비자금융을 서비스할 수 있다.
아울러 일본 대부업체들은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시련과 위기를 겪고 부활과 재도약을 반복하면서 기업공개, 정보공유, 대형 금융기관과의 제휴 등으로 투명성을 높여 신뢰성을 회복했다. 이런 노력으로 일본 대부업체들은 규모가 확대되면서 국내외 은행과 일반기업들이 지분참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대부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대부업체들의 성공에는 소비자보호 관련 법제도를 정비한 점도 크게 한몫 한다. 1998년의 소위 일본판 금융빅뱅 이후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크게 완화되면서 소비자보호 관련 법제도가 정비된 것이다. 특히 소비자 보호를 위해 2000년 6월 출자법出資法이 개정되면서 개인회생절차법, 소비자계약법, 서비스법 등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가 정비됐다. 아울러 합리적인 소비자를 육성하기 위해 1990년 설립된 소비자지원센터가 각종 소비자교육 사업을 실시한 이후, 국가, 지자체, 경제 및 금융관련 정부기관, 각종 민간단체 및 소비자금융업계 등도 적극적으로 소비자교육을 실시해 왔다. 그 결과 일본 국민들 사이에는 우리보다 합리적인 금융소비 관행이 자리잡게 되었다.

 
 

가계부채家計負債 1000조 시대,
무조건 위험한가?


지금까지 흔히 사채로 불리는 대부업에 대해 살펴봤다. 많은 사람들이 대부업은 신용이 낮은 사람들만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자동차 할부서비스 등도 넓은 의미의 대부업에 속한다. 그리고 이로 인한 대부금은 가계부채를 낳는다. 그렇다면 가계부채는 모두 나쁜 것일까.
우리는 종종 언론에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보도를 접한다. ‘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라는 뉴스도 흘러나온다. 그런 보도를 보면 마치 나라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분위기다.
부채負債란 누군가로부터 돈을 빌려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채무를 말한다. 돈을 빌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는 저축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부채는 무조건 나쁘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만, 돈을 빌린 사람이 잘 갚는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을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는 서로 다른 시간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돈을 빌리는 사람은 현재를 더 선호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려 쓰는 반면, 빌려주는 사람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선호하기 때문에 현재 돈을 저축하고 빌려주는 것이다. 가령 20대 젊은이들은 소득에 비해 써야 할 돈이 많다. 그래서 젊은 직장인들은 대개 부채를 지게 된다. 합리적이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소득이 늘어나면서 차츰 부채를 갚아나가게 된다.
현재 누군가로부터 자금을 빌려서 소비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나, 또 현재 소비를 줄여 저축하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 모두 결국에는 이익을 얻는다. 돈을 빌리는 사람은 부족한 자금을 끌어다 쓰고 미래에 갚으며,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현재 자금을 빌려주고 장래에 이자를 더해 받기 때문이다.
부채가 있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갚을 방법이 없는데도 돈을 빌려 쓰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현재에 자기가 원하는 곳에 돈을 쓰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반면 저축을 한 사람은 현재 돈을 쓰는 것보다 저축을 해두었다가 장래에 쓰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양자 모두 효용극대화를 달성한 상태인 것이다.

 
 

빚도 시장원리에 맡겨야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증가한 원인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택담보 대출의 증가에서 찾는다. 물론 주택담보 대출에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저금리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의 지속적인 저금리정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보다는 현재를 선호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돈을 빌려 현재에 소비하거나 주택구매에 투자한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가계부채에서 주택담보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2월말 기준으로 67.9%다. 이는 가계대출에서 주택담보 대출 비중이 가장 높은 영국의 137.3%나 서브프라임 사태를 겪은 미국의 98.9%, 일본의 64.7%, 캐나다의 66%에 비교해 볼 때 그렇게 높다고 할 수 없다. 또 가계대출이 고소득계층과 우량신용등급 계층에 이루어지고 있어 부채 상환가능성도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가계부채가 증가한 또 하나의 원인은 정부의 통화정책이다. 정부의 시중에 통화량 공급을 늘리면서 자금수요는 지속적으로 커진다.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학자들은 이자율이 낮아지고 시중에 정부가 돈을 많이 풀면 가계부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계부채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돈을 빌린 사람이 갚지 못할 때다. 부채의 안정성이나 빚의 상환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변수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연체율이나 금융자산대비 부채비율, 대출받은 사람들의 소득수준 등이다. 이 지표들이 가계부채의 건전성을 나타낸다면 그 수치가 악화되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국내은행 가계대출의 연체율은 1998년 7.9%에서 계속 하락했으며, 2009년에는 0.5%로 감소했다. 그리고 2013년 4월 기준으로 가계대출 연체율은 0.99%에 달한다. 이러한 가계대출 연체율은 2008~2013년 기간에 0.5~1.67% 사이에서 등락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가계대출 연체율이 이 구간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할 만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2010년 가계대출 연체율이 0.6%선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가계대출 연체율이 2013년 4월을 기준으로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행복기금’ 같은 정부의 서민 빚 탕감 정책이 가져온 도덕적 해이로 인한 문제는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실제로 최근 일선 금융기관에서는 서민 빚 탕감 등 복지정책 발표 이후 가계부채 연체사례가 늘고 있다는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흔히 사채로 불리는 대부업과 가계부채에 대해 살펴봤다. 우리는 대부업 하면 대개 불법사채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제 대부업 자체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대부업은 합리적인 소비자금융 서비스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의 대부업의 경우, 지나친 규제와 이자율 제한으로 오히려 건전한 대부업이 자라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그 틈새를 불법사채가 파고들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울러 가계부채 역시 규모 자체보다는 갚지 못하고 연체되는 것이 문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정부가 서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행복기금 등 부채를 탕감해주는 정책을 사용하면 도덕적 해이로 인해 오히려 가계연체율이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부채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돈을 빌리는 자나 빌려주는 자 모두 시장의 원리에 맡기되 부족한 부분은 법과 제도로 보완하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지나친 규제는 아니함만 못하다.    

글쓴이 한정석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증권 국제부 해외투자과에서 다년간 근무했다. 세계적인 상품 및 선물거래 시장인 시카고 선물거래소 딜러를 거쳐
현재 <미래한국> 편집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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