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물개와 비슷하게 생긴 물범이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멸종위기종 2급으로 분류된 천연기념물 331호 ‘잔점박이물범’이 바로 그것이다. 잔점박이물범은 인천 백령도와 서산 가로림만에 살고 있다. 최근 잔점박이물범의 새로운 서식지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5월 환경운동연합 습지조사팀은 가로림만 현지답사를 하러 서산 대산읍 오지리에 갔다.
글 | 나혜란   디자인 | 김진복 기자   담당 | 김양미 기자
 

 
 

잔점박이물범은 항구물범이라고도 불리며, 바다표범과 중에서 가장 작은 포유류다. 몸길이는 약 1.4미터 정도고, 무게는 보통 90킬로그램 정도다. 1980년대에는 서해상에 2천여 마리가 있었으나 최근 200~300마리로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반도 주변에는 물범 외에도 물개와 바다사자 등 많은 수의 포유류가 살았다고 한다.

잔점박이물범을 만나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세계 5대 갯벌(캐나다 동부 해안, 미국 동부 해안, 북해 연안, 아마존 강 유역) 중 하나로, 특히 가로림만은 서해에서도 드물게 자연 그대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수많은 어류가 산란하는 곳이다.
  환경연합 조사팀은 1톤 배를 타고 잔점박이물범들이 있는 모래밭 근처로 다가갔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다가가면 멀어지고, 녀석들은 숨바꼭질을 하듯 저 멀리 도망가 머리를 빼꼼히 내밀었다가 물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마치 뿅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게임같이 말이다. 그 모습이 얄밉기도 했지만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그날 본 잔점박이물범은 총 다섯 마리였다. 동물원의 물범들과는 다르게 가로림만을 자유로이 헤엄치는 녀석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빤질빤질한 둥근 머리에 아주 작은 귓구멍이 있고, 검은 반점이 들쑥날쑥 나 있었다.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는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위엄 있게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자태 덕분에 나는 망원경으로 그 녀석을 오래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어떤 동물로 비춰졌을까?
  한참을 숨을 죽이고 녀석을 지켜보다 갑자기 웃음이 ‘빵’ 터졌다. 자기 얼굴 반만큼이나 큰 콧구멍을 ‘벌렁벌렁’거리는 것이 여간 웃긴 것이 아니었다. 위엄 있는 척 허세를 부리던 녀석의 품위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 녀석은 개그맨 기질이 넘치는 놈이다. 두어 시간을 녀석들과 놀다보니 물이 어느새 모래톱을 덮었고 우리는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이제 헤어질 시간. 잘 가라, 잔점박이물범들아.”


위험에 처한 물범들의 서식지

 
 

어쩌면 그것이 마지막 인사였을지도 모른다. 잔점박이물범의 서식지인 가로림만이 조력댐 건설로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다섯 마리 예쁜 물범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빤질빤질한 머리통과 연신 콧구멍을 벌렁대는 녀석들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들은 동화 속 보물섬 같은 가로림만의 보물이자 주인이다. 하지만 최근 환경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몇 달 전 가로림만은 조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환경영향평가 보완 요청을 받았고, 환경영향평가 완성이 거의 막바지에 들어갔다. 공사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곳에 조력발전소가 건설된다면 가로림만을 품에 안고 사는 어민들의 생존도 위협 받음은 물론이고, 잔점박이물범은 살 곳을 잃게 될 것이다.

허술한 에너지 정책이 그들을 사라지게 한다
그렇다면 조력댐이 건설될 경우 전력생산량은 얼마나 될 것인가? 가로림만 조력발전소가 건설될 경우 연간 전력생산량은 950Gwh(기가와트시)로 추산되는데, 이는 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연간 발전하는 전력량의 불과 2.7%이자, 서산시 필요전력의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대목에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어민들의 생존도 위협하고 잔점박이물범의 서식지도 사라지고 전력생산성도 떨어지는데 왜 굳이 가로림만조력댐건설을 추진하는 것일까? 정부는 2012년부터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를 도입한다. 이 제도는 발전사업자에게 의무적으로 공급량의 일정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하는 것으로, 발전사업자는 2012년부터 전체 전력생산량의 2%를 재생에너지원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전 회사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과징금을 물어야 하므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발전량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조력발전소 건설을 선호하는 것이다. 결국 가로림만 조력댐 건설로 인해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를 일시에 채울 수 있고 건설 회사들은 손쉽게 공사를 수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허술한 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어민들의 생존권도 위협을 받고 멸종위기종 잔점박이물범도 서식지에서 쫓겨나게 됐다. 잔점박이물범은 그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가로림만은 오지리 마을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잔점박이물범들의 집이기도 하다.

 

 
 

부메랑은 반드시 돌아온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환경 멸종위기종의 서식지쯤은 없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종이 사라지면 그 종과 얽혀 있는 수많은 생명들도 함께 사라진다. 결국 그들을 위협하면 할수록 생태계의 균형은 깨지고 인간도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무심코 던진 부메랑은 반드시 돌아오는 법이다. 과잉개발과 서식지 파괴로 생물다양성은 매일 1,000배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간 지구에는 인간이라는 악덕 종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인간만 사는 지구,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아니 그런 지구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다. 우리는 잠시 지구에 들른 여행자다. 평생 지구에 살면서 잘 지내고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넘겨줘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가 지구라는 동네에 놀러온 여행자의 마음을 갖는다면 지구의 생명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에 아름다운 생명들의 존재를 감사하며 더불어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지구에서 아름다운 여행을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그러려면 잔점박이물범이 살아갈 곳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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