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X- File

우리에게는 저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게, 그러나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이 하나씩 있다. 바로 우리의 몸이다. 호흡기, 감각기, 순환기 등 다양한 기관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인체는 지금도 생명유지를 위해 숨 가쁘게 뛰는 중이다. CEO라면 모름지기 그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소홀히 여기고 살았던 인체의 구조와 소중함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챙겨 보자.
글 | 김성훈 기자 디자인 | 류제형 기자

 

 
 

 
 
시대와 장소 따라 천차만별인 몸값
인간의 몸값을 계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고대역사에 기록된 노예의 가격을 통해 유추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서이기도 한 구약성경 출애굽기 21장에 보면 ‘소가 종을 들이받았을 경우 소 주인은 노예 주인에게 은 30세겔(1세겔=11.42g)을 보상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레위기 27장에도 ‘사람을 여호와께 드릴 경우 성별과 나이에 따라 그 값을 5~50세겔로 하라’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고대 이스라엘에서 한 사람의 가격은 은 30세겔, 우리 돈으로 약 40만 원 정도임을 알 수 있다.
1세기 로마제국에서 노예들의 몸값은 약 500~1,500데나리온이었다. 1데나리온이 당시 근로자들의 하루치 품삯이었으니 오늘날의 5천만~1억2천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우리 역사나 설화에도 가난 때문에 종으로 팔려가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대표격인 사례는 단연 효녀 심청이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그녀의 몸값은 공양미 300석(1석=160kg), 약 1억 원을 오가는 금액이다.

 
 

 
 

우리 몸의 가격이 겨우 100만 원?
인간의 몸값을 과학적인 측면에서 계산하고자 한 시도가 이뤄진 것은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일이었다. 인체의 원형질(세포나 핵 등 살아있는 부분)과 광물질의 성분을 분석하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몸(몸무게 70kg 기준)은 왼쪽 그림과 같은 성분들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 계산법대로라면 인체는 아무리 값을 잘 쳐 줘도 불과 100만 원 내외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 방식에는 한 가지 큰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3월말 국내에서 훈련을 실시한 B-2 스텔스 폭격기를 예로 들자. 이 비행기는 1998년 미 공군에 인계되면서 ‘금으로 만든 비행기’라는 별명이 붙어 화제를 모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무게 71t인 이 폭격기 한 대의 가격은 12억 달러에 달했지만, 24k 순금 71t의 당시 가격은 10억 달러 정도였기 때문이다.
스텔스 비행기의 대부분은 철로 만들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금속 중에서 가장 고가인 금보다 가격이 비쌀 수 있을까? 이는 원자재를 가공해 부품을 만들고 이를 정교한 기술로 조립함으로써 막대한 부가가치가 창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서 인체의 구성성분을 바탕으로 계산한 100만 원이라는 가격에도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인체는 유전자라는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스텔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공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체의 가치에 대한 평가도 새로운 관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휴머노이드를 근거로 계산한 인체가격은?
 
 
오늘날 미국, 일본, 유럽 등 각국은 인간과 유사한 신체구조와 지능을 갖춘 로봇인 이른바 휴머노이드humanoid의 연구개발에 한창이다. 그럼 휴머노이드를 제작하는 데 들어간 연구개발비를 살펴보면 우리의 인체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현존하는 휴머노이드 중 가장 앞선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일본 혼다Honda의 아시모ASIMO를 보자. ‘인간처럼 두 다리로 걷는 로봇을 만들자’는 모토 아래 개발이 시작된 아시모의 첫 모델은 한 발을 내딛는 데만 약 20초가 걸릴 만큼 성능이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이후 계속 연구가 진행되면서 나온 지난 2011년의 3세대 아시모는, 시속 9km로 달리는 것은 물론 시각장애인을 에스코트하거나 물을 따라주는 등 간단한 서빙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향상됐다. 특히 인간의 음성명령을 알아듣고 수행하거나 주변상황을 스스로 인식하여 그에 맞게 움직이는 아시모만의 ‘자율행동 제어기술’은 “사람이 속에 들어가 로봇처럼 행동하는 것 아니냐?”는 최고의 찬사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시모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예컨대 아시모에게는 ‘스마트아이’라는 시각 감지장치가 있어 주변 물체나 사람의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지만, 1만7천 가지 색깔을 구별할 수 있는 인간의 눈에 비하면 장님 문고리 잡는 수준이다. 연속 동작 가능시간도 40분 정도에 불과하다.
혼다가 지난 1986년부터 지금까지 아시모를 제작하는 데 들인 돈은 무려 3천억 원 이상이다. 아직 인간의 신체와 지능에 비하면 아직 흉내내기 수준인 휴머노이드 개발에만 그 정도 비용이 들었다면 인체의 가치는 최소한 그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나가지 않을까?

미 환경보호청EPA은 생명의 가치를 910만 달러
(약 91억 원)로 책정하기도 했다. 만약 여러분의 몸에 특별한 장애나 질병이 없다면, 이미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큰 재산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체 건강한 그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혹 어딘가 불편한 부분이 있어도 상심하거나 낙담하지 마라. 생명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귀한 법이니까.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여러분 몸값을 단번에 계산하는 방법이 있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을 떠났을 때 부모님과 친구들의 슬픔은 무엇으로 보상이 될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세상을 다 준대도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답변은 물론 ‘No!’일 것이고, 그럼 여러분은 온 세상을 합친 것보다 귀한 존재인 것이다.


 
 


인체의 컨트롤타워 뇌

 
 

뇌의 골든타임은 4분 인체에서 뇌만큼 중요한 기관이 또 있을까? 뇌는 우리 몸의 거의 모든 활동을 관장하는 사령부라 할 수 있다. 가령 독자들은 지금 눈으로 이 글을 읽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눈은 시각정보를 받아들이는 통로일 뿐 실제 글을 읽는 것은 뇌다.
뇌의 무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우리 몸이 받아들이는 산소와 음식물의 20%를 혼자서 먹어치운다. 또 심장이 밀어내는 혈액의 1/5을 소비한다. 또 인체가 아무리 심한 기아상태에 놓이더라도 뇌에 최우선적으로 영양분이 공급된다. 뇌에 단 15초만 혈액이 공급되지 못해도 우리는 의식불명에 빠진다. 만약 4분 이상 혈액공급이 중단될 경우, 뇌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된다. 혹 심장이 마비되더라도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취해야 뇌가 후유증 없이 회복될 수 있다.
 

860억 개나 되는 신경세포들의 집합체
지금까지 뇌에는 약 1천억 개의 신경세포(뉴런)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 수는 약 860억 개 정도라고 한다. 뉴런과 뉴런이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시냅스라고 하는데, 이 사이에 전기신호가 오가며 학습과 기억이 이뤄진다. 뉴런 1개당 연결되는 뉴런의 수는 수천~1만 개,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최대 860조 개의 시냅스가 생성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신경세포는 생후 3개월부터 점차 파괴되기 시작해 20세 무렵에는 절반밖에 남지 않는다고 한다.

생명을 유지하는 파수꾼
뇌의 대표적 기능은 학습과 기억이지만 생명유지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뇌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뇌간腦幹은 호흡과 심장박동을 조절할 뿐 아니라 자율신경과 호르몬의 분비까지 담당해 ‘생명중추’라는 별명이 붙었다. 혈관의 수축·이완, 하품, 구토, 기침, 재채기, 딸꾹질 등의 반사작용까지 책임진다.

 
 

뇌 vs. 컴퓨터, 근본적으로 비교불가

뇌는 컴퓨터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이미 컴퓨터는 정보처리, 사칙연산 등 몇몇 영역에서 인간을 넘어섰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다 보니 조만간 인간의 뇌를 능가하는 컴퓨터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뇌와 컴퓨터는 근본적으로 비교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것이 뇌과학자들의 입장이다. 컴퓨터는 0과 1, 두 가지 전기신호의 조합들로 된 디지털 방식으로 작동한다. 반면 뉴런에서 만들어지는 전기화학적 신호는 0과 1로 나눠지지 않는다. 뉴런은 다른 뉴런과 패턴을 이루며 작동하며 그 신호의 세기나 간격은 아날로그에 가깝다.
정보를 정리하는 방식도 다르다. 가령 ‘거북이’라는 단어를 입력했을 때, 컴퓨터가 할 수 있는 건 방대한 자료에서 ‘거북이’ 단어를 찾거나, 거북이에 대해 저장해 둔 정보를 일률적으로 보여주는 정도다. 하지만 무수한 뉴런들이 그물처럼 얽힌 뇌는 이 두 가지를 수행하는 것(물론 속도는 컴퓨터보다 훨씬 느리다) 외에 ‘거북이’와 관련된 기억과 정보들 예컨대 동물원에서 거북이를 본 경험, <별주부전>과 <토끼와 거북이> 같은 동화, 거북이처럼 성실하게 일하는 주변 친구 등을 떠올리게 해 준다. 특정 주제에 대해 연상되는 생각들을 이야기해서 아이디어를 내는 브레인스토밍은 오직 뇌만 할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얼굴 인식, 대화, 사랑하기, 물건 찾기, 결정하기-등에 있어서는 아직 어떤 컴퓨터도 인간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지상 최강의 서포터 심장

 
 
멈추면 죽는다’
뇌가 맨꼭대기에서 인체를 운영하는 CEO라면, 심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인체를 서포트하는 살림꾼이라고 보면 된다. 심장의 가장 큰 임무는 쉴 새 없이 펌프질을 함으로써 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전달하는 일이다. 세포는 혈액을 통해 산소, 영양소, 물, 이온 등을 공급받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배출하기 때문에 심장은 한 순간도 쉬거나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심장이 멎는다’는 말이 괜히 죽음과 동의어로 쓰이는 게 아니다.

평생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비밀
심장의 크기를 알고 싶은 독자는 주먹을 한 번 꼭 쥐어보자. 그 주먹의 크기가 바로 심장 크기다. 심장은 매일 12만km(지구 세 바퀴에 해당)나 되는 혈관에 피를 펌프질해 주는데 이는 1만5천L 용량의 탱크를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70세까지 살 경우 그때까지 심장이 한 일은 32t이나 되는 물체를 에베레스트 정상(약 8,848m)까지 밀어올린 것과 비슷한 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심장은 어떻게 평생 쉬지 않고 뛰는 강철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걸까? 심장이 뛰는 것은 우심방의 동방결절에서 발생한 전기가 심방근육에 자극을 주어 심방을 수축시키고 심실근육에 자극을 주어 심실을 수축시키기 때문이다.

챔피언의 주먹보다 세고 선박엔진보다 오래 간다
심장은 우리 몸의 동력원動力源인 까닭에 엔진에도 곧잘 비유된다. 물론 수백~수천 마력의 힘을 내는 자동차나 비행기, 선박의 엔진과 심장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심장에게는 여타 엔진이 결코 당해낼 수 장점이 있다. 수명이다. 자동차엔진이 10년, 항공기엔진이 20년, 선박엔진이 30년 정도 사용될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는 데 비해 심장은 70년 이상을 너끈히 쓸 수 있다. 그렇다고 힘이 약한 것도 아니다. 겨우 주먹만 한 심장이지만 그 힘은 전력질주하는 육상선수의 다리근육이나 헤비급 복싱챔피언의 팔근육보다도 몇 배나 힘이 세다고 한다.

누구나 심장이 20억 번 뛰면 죽는다?
독일의 어느 학자는 ‘모든 동물은 20억 번의 심장박동(심박)을 채우면 죽는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일리 있는 학설이다. 조그마한 생쥐는 분당 심박수가 수백 회나 되지만 수명은 1년을 넘지 못한다. 반면 코끼리나 고래는 분당 심박수가 1분에 30~35번 정도로 느리지만 수명은 그만큼 길다. 인간의 경우, 1분당 72번 심장이 뛴다고 가정하면 70세가 되었을 때 총 심박수는 약 25억 번 정도가 된다.
오래 살고 싶다면 체중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것도 그래서다. 몸에 지방이 100g 늘어날 때마다 약 70km의 모세혈관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심장으로서는 그만큼 더 혹사를 당하게 된다. 참고로 ‘산소탱크’ 박지성, 마라토너 이봉주는 운동으로 단련된 이른바 ‘스포츠 심장’을 갖고 있어 분당 심박수가 40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뇌와 심장은 서로 생김새와 역할, 메커니즘 등이 전혀 다른 기관이다. 얼핏 라이벌 같지만, 둘은 ‘생명 유지’라는 지상과제를 위해 어머니뱃속에서부터 함께 달려온 파트너이기도 하다. 물론 이들이 앞으로 달려갈 길은 달려온 길보다 훨씬 더 멀다. 인체의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뇌, 그리고 후방에서 말없이 이를 지원하는 심장. 두 든든한 사령관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안심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힘껏 달려나갈 수 있는 건 아닐까.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