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은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기에 더 처절할 때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는 것이다. 떠나보낼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그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았다면, 그 일을 겪은 이의 충격은 평생 잊기 힘들 것이다. 약국에서도 판매하지 않는 마음의 치료약 <투머로우>에 세 번째 사연을 이야기한다.
글 | 박소영   담당 | 김민영 기자   디자인 | 이가희 기자


 
 


내가 만난 이 슬픈 운명의 소녀는 이제 꿋꿋하고 밝게 살아가고 있음을 먼저 밝힌다.

어느 날 저녁 40대 여성 K씨가 혼수상태로 실려 왔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는 집 안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 중학생인 아들이 당시 집에 있다가 어머니를 발견하여 직접 119 구급대에 신고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일은 K씨가 딸과 싸우고 홧김에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어찌 두 아이의 어머니가 사춘기 딸과 싸웠다고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K씨를 보자마자 그녀의 어리석음에 대한 원망이 잠시 들었지만,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K씨 가족의 사연

K씨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이미 호흡과 맥박이 없는 채로 실려온 상태였다. 적극적인 심폐소생술을 통해 극적으로 다시 심장 리듬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뇌 손상이 크게 진행됐다는 소견이 있었다.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K씨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병원에서는 우선 응급 처치가 많아서 K씨의 동생들과 중요 사항들을 결정하고 진행했다. K씨가 이혼 후 홀로 키웠다는 중학생 아들과 고등학교를 자퇴한 딸은 삼촌과 이모들 뒤에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K씨를 담당하게 된 우리 팀은 환자를 며칠간 지켜보면서 상태가 안정되면 여러 가지 뇌 검사를 통해 향후 회복 가능성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며칠간 K씨에게 심폐가 마비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희망적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다음날 보호자 면회 시간에 환자의 어머니가 오셨다. 설명을 하러 가기 전 그녀의 동생들이 나를 부르더니 어머니께 환자가 자살을 시도해서 이렇게 됐음을 절대 말하지 말아달라며 간곡히 부탁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어머니가 놀라실까봐 그런 거라 생각했는데 가족의 사연을 들으니 정말 파란만장했다. 3년 전 첫째가 목매달아 자살을 했고, 작년에는 남편이 바다에 뛰어 들었단다. 환자가 자살을 시도한 사실을 알면 어머니가 더 이상 못 버티실 것 같다는 가족의 걱정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환자의 혈압과 맥박 등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고, 검사를 진행하면서 환자가 왜 자살 시도를 했는지, 왜 집에 아들이 함께 있었음에도 몰랐을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소녀에게 다가가다

그날 밤, K씨는 딸과 다투었다. 자주 있는 일이고 그날 밤도 딸은 엄마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집 밖으로 나갔다.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고 해서, 소리를 질렀다고 해서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대화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어긋나는 것이었을 뿐이다. 모녀간에 때로 다툼도 있기 마련이지만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는 소녀가 겪을 마음의 상처는 엄마의 죽음만으로도 벅차 보였다. 그런데 K씨의 동생들은 어린 조카의 앞날을 걱정하기보다는 언니를 잃은 슬픔이 커서였을까, 조카를 원망하고 나무랐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퇴근길에 우연히 병원 복도에서 그 소녀를 만났다. 벽에 기댄 채 풀이 죽어 있는 모습에 나는 이러다가는 소녀가 한 달 내에 엄마처럼 병원에 실려 올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살아있는 사람은 살려야지.’
머쓱하지만 나는 소녀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고 언니처럼 도와주고 싶었다. 나의 그런 마음이 전달되어서일까. 고개조차 들지 못했던 소녀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했다. 내게 있던 <투머로우> 잡지와 해외봉사 활동 수기집도 선물했다. 너무 외롭고 힘들 때 혹은 극단적인 생각이라도 들면 잠시 생각을 멈추고 읽어보라고. 그렇게 우리는 언니, 동생으로 지내기로 했다. 
 

K씨의 장기 기증 결정

환자의 검사가 진행될수록 회복 가능성은 없었다. 가족은 뇌사 판정을 받은 K씨가 더는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장기를 기증하도록 권고 받았다. 장기 기증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 보람된 일이며 실제로 경제적인 혜택도 있었다. 장기 기증 센터 담당자의 설명에 어른들은 모두 동의했다. 현실에 조금 더 눈이 밝은 어른들은 병원비에라도 보태자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K씨의 실질적인 보호자가 두 자녀라는 점이었다. 남편은 이혼한 지 이미 십 년 가까이 되었고 재혼한 상태인 데다가 한 번도 병원에 온 적도 없었다. 장기 기증은 강요에 의해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들의 동의가 없으면 탈이 많을 뿐 아니라, 함부로 생명이 다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밤, 조용해 보였던 큰할아버지라는 분이 병원 한 쪽에서 소녀에게 협박과 욕설을 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도움도 받을 수 있다는데 어린 녀석이 뭔데 어른들의 의견에 반대하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네가 결국 엄마를 죽인 거 아니냐는 말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안 된다는 말만 조용히 반복한 채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점점 큰할아버지의 소리가 커졌고 이러다가는 아이가 맞을 것만 같아 말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녀는 어딘가로 뛰어서 사라졌다. 


17세 소녀의 눈물

다음날 새벽 시간에 내게 소녀가 전화했다.
“저 말이에요. 엄마를 두 번 죽일 수는 없어요. 내가 엄마를 죽였는데. 모두가 그렇게 손가락질하며 그렇게 말하는데 나보고 엄마 몸에 또 칼을 댈지를 결정하라고요? 난 엄마 사랑했단 말이에요. 어떻게 그래요!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떻게 그래요! 엄마, 또 아플 거잖아요!”
사실 뇌사 상태의 환자는 이미 아픔을 느끼지 않을 테지만 소녀는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는 엄마의 장기가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되어 그 사람들이 오래 산다면 마치 엄마가 살아서 돌아다니는 것 같은 생각에 본인의 죄책감 역시 평생 되새겨질 거라고 했다.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 한편에는 죄책감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 피하고 싶은 마음. 이 복합적인 감정은 열일곱 살의 소녀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소녀에게는 이성적인 냉철한 판단보다 상처가 아물 수 있게 따뜻하게 품어주고 마음을 붙잡아줄 그 누군가가 필요했다.


상처를 극복하고 일어설 소녀의 삶

소녀는 사춘기 시절의 흔한 방황으로 몇 번 엇나가긴 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편견을 가지고 자신을 대하는 어른들에게 실망하고 불평하게 됐다. 잘해보려 해도 자꾸 오해를 하니 결국은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다행히 생각보다 순수하고 영특했던 소녀는 엄마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고, 엄마가 타인의 생명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허락했다. 나는 무엇보다 소녀가 혼자만의 고립된 생각을 주변에 터놓고 도움을 얻는 것을 보았다. 
환자의 수술은 바로 진행됐고 소녀는 힘들지만 꿋꿋하게 장례식까지 치러냈다. 입장이 다른 가족 모두가 힘든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들 모두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기도했다. 
그 일이 있었던 후 소녀는 꿈을 찾고 학원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선물했던 책에 소개된 해외봉사란을 읽으며 소녀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사춘기의 방황을 무조건 받아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사랑으로 다가갔다면, 조금만 더 차분히 기다려 주었더라면 소녀의 방황은 더 빨리 멈추지 않았을까? 전기가 전선을 타고 흐르듯 마음도 서로 흐른다고 들었다.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사랑이 그 마음에 흘러들어 가면, 그의 생각과 행동이 변하고 생활이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사랑 역시 받아본 사람이 줄 수 있고 본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타인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 나는 앞으로 그 소녀가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많이 사랑 받기를 바란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박소영
서울 아산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4년차인 그녀는 굿뉴스코 해외봉사
5기로 남아공을 다녀왔다. 훗날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하며 삶을 살고 싶다는 그녀는 굿뉴스코 의료봉사로 아프리카를 다녀와 본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이후 <투머로우> 열혈 독자가 되어 상처받고 외로운 이들에게 잡지를 한 권 손에 쥐어준다고. 그녀는 특히 자살시도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상담가가 되어 밝은 세상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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