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그린, 자화상

 
 
“고흐의 프랑스 활동 시기 작품 중에서는 <쟁기로 간 들판>을 볼 때 붓 터치가 특히 더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마치 눈앞에 풍경이 펼쳐지듯 실물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만져보고 싶을 정도였죠. 걸작을 남겼지만 살아생전 비참하고 가난했던 그의 삶이 작품으로 승화되는 에너지였다는 게 안타깝네요!”
(정요셉, 숭실대학교 사회복지 4)

 
 
고흐가 2년간 파리에서 활동했던 작품전이 2013년 3월 24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된다. 2007년 <불멸의 반 고흐> 전 이후 5년 만에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반 고흐 in 파리> 전 테마 기획이 선보인 것이다. 특히 1886년 3월부터 1888년 2월까지 2년간 활동했던 파리 생활이 고흐가 명작의 토대를 만들어간 중요한 시기로 주목되었다. 전시된 유화 60점 중 특히 자화상을 소개한다.

위장병을 달고 산 화가
고흐는 37세 생애 동안 기숙사 학교 조교수, 화랑 점원, 전도사 등 여러가지 활동을 했지만 27살에 본격적인 화가가 된다. 특히 프랑스에서 그는 빛과 색감에 대해 눈을 뜨며 색채 연구에 매진하였다. 친구 고갱과 헤어진후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을 다니고, 37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말을 남긴 비운의 화가지만 창조주의 빛을 그림에 담아내려고 했던 그의 정신은 후세까지 살아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든 고흐의 작품앞에 서면 숨죽이며 경외감을 표현할 것이다.
‘가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예술 세계에 다 들인 고흐의 정신에 눈물이 난다’는 한 감상자의 말처럼 당시 유행하던 인상주의 풍의 작품 속에서 자신만의 화법을 만들어낸 그를 돌아본 사람은 동생 테오 외에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의 살아생전 <붉은 수수밭>이란 작품 한 점만이 팔렸고 동생 테오가 한달에 100~200프랑의 생활비를 주었을 뿐이었다. 항상 돈에 쪼들렸던 고흐는 음식도 잘먹지 못해, 위장병을 달고 살았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캔버스의 천을 직접 잘라서 사용하기도 해서 규격화된 크기의 작품이 많지 않다. 때로는 천보다 좀 더 싼 마분지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마분지를 살 돈이 없어서 캔버스 천을 뜯어낸 뒷면을 재사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재활용했던 그의 작품 밑그림에는 X선 촬영 결과 다른 그림이 그려진 것이 발견되었다. 전시장에서는 직접 X선 촬영된 사진도 함께 비교해 볼 수 있다. 1990년 <의사 가쉐의 초상>이 그 당시 경매 최고 가격인 8,250만 달러(한화 562억 6,500만 원)에 팔렸다.
자신의 작품이 물감값 이상의 가격으로 팔릴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반 고흐. 하지만 그가 죽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그의 작품이 불멸의 명작이 되리라 생각지도 못했다.

▲ <식당 내부 풍경>, 1887년 여름 파리. 캔버스에 유화. 크뢸러뮐러 미술관, 오텔로.
▲ <식당 내부 풍경>, 1887년 여름 파리. 캔버스에 유화. 크뢸러뮐러 미술관, 오텔로.
▲ <탕귀 영감>1887년, 파리.캔버스에 유화. 로댕미술관, 파리.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아생전 자주들렀던 화구점주인으로 가끔물감을 얻어 사용했다.
▲ <탕귀 영감>1887년, 파리.캔버스에 유화. 로댕미술관, 파리.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아생전 자주들렀던 화구점주인으로 가끔물감을 얻어 사용했다.
 
 

탕귀 영감
고흐는 탕귀 영감의 화구점에서 자주 물감과 화구를 구매했다. 때로는 탕귀 영감에게서 물감을 공짜로 얻기도 했지만, 워낙 물감의 질이 좋지 않아서 후에 그림 색이 변하기도 했다. 고흐가 그림을 그릴 당시는 카메라가 발명된 시기로, 사진에서 표현할 수 없는 내적인 세계를 그림에 나타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작품 <탕귀 영감>은 한국에서 전시 작품 중 가장 높은 보험가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작품의 배경에는 당시 유행했던 일본풍의 그림들도 직접 보고 넣어 표현했다.

 

고흐의 색채 연구, 자화상
고흐는 네덜란드 사실주의 작품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자신만의 색상과 화법으로 모더니스트로 성장했다. 특히 파리에서 화법과 색연구에 집중했던 그는 모델을 구할 수 없어서 자신을 대상으로 그림을 연구한다. 총 40점이 되는 자화상 중 28점 정도를 파리에서 그렸다. 고흐는렘브란트 영향으로 초기 작품이 어둡게 표현되었지만, 점차 자신만의 느낌과 정신이 반영된 자화상을 그렸다. 특히 자화상을 통해 색채 연구를 했으며, 노란색, 빨강, 초록색, 흰색, 보라색 등을 활용해 다채롭게 표현하였다. 고흐는 나무와 잎에서 추출한 천연색 등도 물감처럼 사용하기도 했고, 중국의 색실을 사용해 색을 구분해가며 연구하기도 하였다. 고흐는 섬유질이 많은 물감을 사용하여 그림의 강렬함(임파스토 기법 사용)과 열정을 더욱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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