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바하우스(Palaver House)'

라이베리아의 대학교나 중고등학교에 가보면 한국에는 없는 독특한 건물을 볼 수 있다. 사방이 뚫려있는 이 동그란 작은 건물은 오두막을 연상시킨다. 라이베리아 사람들은 이곳을 ‘팔라바하우스(Palaver house)’ 또는 ‘팔라바허트(Palaver hut)’라고 부른다. 평소 이곳에서 학생들은 휴식을 취하고 대화를 나누는 등 자유롭게 팔라바하우스를 이용한다. 그러다가 학생자치부에서 정한 시간이 되면 그곳에 모여서 토론을 한다. 토론 주제는 학교에 관한 일들부터 정치에 관련된 문제들까지 다양하다.

 
 
대학교에 있는 팔라바하우스에서는 정치에 관한 주제를 주된 토론 주제로 삼으며 학생자치회가 주축이 되어 학생들 자체적으로 토론 행사를 계획하고 진행해나간다. 토론이 시작되면 지나가던 학생들도 발걸음을 멈춰서고 토론에 참여하곤 한다. 사회자가 토론 주제를 소개하고 토론을 중재해나가면 여러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서 순서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발표자의 발표가 마치면 청중들은 한 목소리로 힘차게 라이베리아 전통 부족어로 된 응원 구호를 외치며 지지를 표한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무척 진지하고 열성적인 자세로 토론에 참여한다.

현재 라이베리아 학교 곳곳에 세워져있는 팔라바하우스의 기원은 1600년대 초 라이베리아가 세워지기 전 이 지역에 있었던 전통 원시부족사회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마을의 남자들은 야자수나무 아래에 모여앉아 그들의 공동체의 일들에 관해서 논의를 하곤 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 공동체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규칙을 만들기를 원했고, 그런 기능을 수행해 줄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마을 남자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에 이를 위한 건물을 지었고 ‘팔라바하우스’라고 이름 붙였다. 사람들은 팔라바하우스에서 공동체에 관한 일들을 논의하고 결정했다. 특히 마을에서 범죄가 일어나면 마을의 연장자들이 팔라바하우스에서 논의를 거친 후 범죄자에 대한 판결을 내렸고 팔라바하우스에서의 판결은 그 공동체에서 매우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라이베리아라는 근대 국가가 세워지기 전, 원시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팔라바하우스 전통이 라이베리아가 세워진 이후에도 마을 곳곳에서 이어져왔다. 그러다가 이 전통이 1970년대 후반에 대학교 캠퍼스와 고등학교 교정으로까지 번져 학교 내에도 팔라바하우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편 오늘날 대학교 내의 팔라바하우스에서는 정부 부패에 대한 정보들, 자금 횡령, 지도자들의 위법행위 등이 주요 논쟁거리가 된다. 팔라바하우스에서의 이러한 논쟁은 때때로 캠퍼스에서 싸움을 일으키거나 거리의 폭동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는 시위로 번지기도 한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라이베리아는 미국 흑인 노예들이 미국정부의 도움으로 아프리카로 다시 건너와 1847년에 세운 나라로 1989년부터 2003년까지 15년간 내전을 겪었다. 작년 UN이 발표한 인류발전지표(Human Development Index)에 따르면 라이베리아는 총 187개 국가 중 182위를 차지했고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은 US1.25달러 미만의 돈으로 하루 생계를 이어간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가난하고 희망 없어 보이는 라이베리아지만 라이베리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간다. 팔라바하우스를 통해 서로 의견을 나누길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라이베리아 사람들의 심성을 엿볼 수 있다.

(몬로비아=조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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