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가족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슬퍼하면, 나도 같이 슬퍼지고 그 사람이 기뻐하면, 내 마음도 기쁨으로 출렁이는 그런 신기한 사이, 그게 친구가 아닐까요? 이번 호에는 여러분의 ‘소중한 친구’를 소개합니다.

공대생이었던 나는 1년 동안 휴학을 한 적이 있었다. 이듬해 복학을 한 후,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니 너무 어렵고 생소했다. 또한 내성적인 성격 탓에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수업 시작 직전에 강의실에 들어갔고, 끝나면 제일 먼저 나왔다. 점심시간에는 늘 식당 한쪽 구석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한 친구가 먼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친구가 나고 자란 곳은 서울이다. 복잡하지만 볼거리, 놀 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곳에서 살았던 친구는 귀농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아버지를 따라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집 근처에 위치한 대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나와 마찬가지로 1년 휴학 후 다시 복학했던 것이었다.

동갑내기였던 우리는 복학생이라는 공통 분모 덕분에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전공과목 이론이 친구에게 물어보면 마치 족집게 과외를 받은 듯 정리가 되었고 혼자서 해내기 힘들었던 과제도 친구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MBTI(성격유형검사)를 몰랐지만, 친구는 극 E성향(극외향형), 나는 극 I성향(극내향형)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우린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활달한 성격을 가진 친구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나와도 가깝게 지내고 잘 챙겨주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기 때문에 버스를 같이 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제일 뒤 좌석의 넓은 자리를 둘이 차지하고 앉아 서로 장난치며 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집 근처 정류장에 도착하였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곤 했다. 어쩌면 나에게 버겁고 외로웠을 대학 생활이 그 친구로 인해 가장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좋은 성적으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몇 달 뒤에 나는 직장인으로, 친구는 취업준비생으로 다시 만났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 친구가 찾아온 것이다. 회사 사무실 옆 등나무 아래서 우리는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한없이 밝았던 친구의 얼굴이 등나무 그늘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는쏜(내 별명). 나 고민이 있어...”

우연히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친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끙끙 앓고만 있었다. 이야기의 끝은 귀농 후 가족들을 고생시키며 이런 사태를 일으킨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향했다.

나는 친구에게 “살면서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찾아오는 것 같아. 그런데 그 어려움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하더라. 어려움이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어. 이번 일을 계기로 아버지에게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나눠 봐.”

그 후 친구는 서울에 있는 직장에 취직했고 서로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친구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할 설렘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곳에는 딸을 시집 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혼주 석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계시는 친구의 아버지가 보였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본 친구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야속했던 아버지였겠지만 그 눈물 속에 모든 용서와 화해가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풋풋했던 20대는 지나가고, 지금 우리는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현재 그 친구는 주재원으로 파견된 남편을 따라 인도에서 지내고 있다. 한 번씩 안부를 물으면 낯선 문화와 사람으로 인해 적응이 안 돼서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어려움도 결국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친구를 응원해 준다. 어려움으로 인해 더 큰 행복을 얻을 너의 모습을 기대하며.

글|손은혜

아이 셋을 키우는 주부다. 육아에 전념하고 있지만 틈틈이 독서와 외국어 공부로 자기개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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