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가족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슬퍼하면, 나도 같이 슬퍼지고 그 사람이 기뻐하면, 내 마음도 기쁨으로 출렁이는 그런 신기한 사이, 그게 친구가 아닐까요? 이번 호에는 여러분의 ‘소중한 친구’를 소개합니다.

나는 바둑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기원을 드나들었다. 4살이 되던 해엔 부모님의 권유로 학원에서 바둑 두는 법을 배웠다. 그때 내게 바둑은 새롭게 알게 된 ‘놀이’ 중 하나였다. 단 한판도 똑같이 흘러가지 않는 바둑의 세계가 즐거웠다. 줄곧 실력이 늘었고, 각종 시합에 나가 상을 휩쓸었다. 9살 때엔 프로기사를 준비하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다.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부모님의 품을 떠나 상경했다.

그러나 프로기사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주변 동료들은 보통 15살부터 데뷔했는데, 나는 입단 대회에서 연이어 낙방했다. 입단 대회에만 10번 참가하는 동안 나의 10대는 흘러갔고, 성인이 되어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바둑에 투자한 시간과 열정을 보상받아야 한다는 생각, 부모님의 기대…. 내 마음은 이런 것들로 복잡했다. 가장 어려웠던 그때, 나를 잘 아는 스승님은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바둑 두는 이유를 입단에 두지 마라.” 바둑을 두는 진짜 이유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입단이라는 목표 때문에 중요한 것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고민하면서, 나는 성공이 아닌 행복한 삶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바둑의 세계’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얼마 후 출전한 입단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프로기사가 될 수 있었다. 16년 만의 일이었다. 한때는 ‘이 길을 계속 가도 될까?’ 하는 고민도 했던 터라 ‘앞으로도 마음껏 바둑과 함께 갈 수 있다!’라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했다. 그게 벌써 2년 전 일이다. 이후 나는 군에 입대했고,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올해 초부터 임상규 2단으로 여러 대회에 출전 중이다.

바둑과 함께해온 시간이 24년이 흘렀다. 내 삶에 바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바둑이 곧 내 인생이기에. 내가 처음 자신감을 느꼈던 것이 바둑이었고, 세상에는 나보다 더 잘하는 고수가 있으니 언제나 배워야 함을 가르쳐준 것도 바둑이었다. 인생이 나의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음을 배웠고, 어려운 시절은 삶의 유용한 거름이 된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나는 다시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지금까지 함께해온 세월보다 앞으로 바둑과 함께할 세월이 훨씬 더 길다는 것이다. 바둑이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면, 이런 인사를 전하고 싶다. 너는 내게 특별하다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이다.

글|임상규

안동 출신 첫 번째 프로 바둑 기사다. 올해 한국기원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제5회 쏘팔 코사놀 최고기사 결정전 본선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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