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가족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슬퍼하면, 나도 같이 슬퍼지고 그 사람이 기뻐하면, 내 마음도 기쁨으로 출렁이는 그런 신기한 사이, 그게 친구가 아닐까요? 이번 호에는 여러분의 ‘소중한 친구’를 소개합니다.

나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이다. 5년 전,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한국살이를 시작했다. 결혼생활은 행복했지만, 타지 생활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 온 첫해에는 밥을 먹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문득문득 고향이 그리웠다. 우즈베키스탄 생각이 가장 간절할 때는 나의 생일날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선 생일이면 우리집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7살 때부터 붙어 다녔던 단짝 친구가 빠진 날이 없었고, 그 친구의 오빠나 어머님도 함께 생일을 축하해 주셨다. 반대로 친구나 친구의 가족 생일에도 언제나 우리 가족들이 함께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친구를 사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내 눈엔 모두가 바빠 보였다. 가까운 곳에 사는 이웃이라도, 같이 커피 한잔 마시려면 미리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만 했다. 또 언어와 문화라는 장애물이 있었다. 한국어가 서툴고, 모르는 것도 많다 보니 나를 친구보단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람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도움이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아 속상했다. ‘아, 한국에서는 친구 사귀기가 정말 어렵구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우즈베키스탄 친구들과 가끔 전화하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런데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보내던 즈음, 생각지 못한 ‘친구’가 생겼다. 첫째 아이와 같은 반이었던 아이의 엄마였다. 그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를 오랜 친구처럼 편하게 대했는데, 그게 너무 신기했다. 자주 연락이 왔고, 나도 시간이 날 때마다 문자를 보냈다. 같은 동네에 살았기에 자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깊은 고민과 자신의 허물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친구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하루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미나야, 난 우즈베키스탄에 너무 가보고 싶어. 아이들이 좀 크면, 같이 너희 고향에 가자. 네가 어떤 곳에서 무엇을 보며 자랐는지 궁금해.” 나에 대해, 나의 고향에 대해 진심으로 알고 싶어 하는 친구를 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언제든지 나를 가족이라 생각하고 힘들 때마다 연락하라는 이 친구. 한국에서 그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데려가기 좋은 곳을 찾으면 가장 먼저 서로에게 연락한다. 또 급히 아이들을 맡겨야 할 때도 제일 먼저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친구의 아이가 내 아이가 되고, 내 아이가 친구의 아이가 된 지 오래다. 아이들도 친구 가족들과 함께 주말을 보내거나 여행을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생긴 후, 내 마음에도 한층 여유가 생겼다. 친구 사귀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서일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이상 두렵지 않다. 또한, 나를 도와주려 다가왔던 이들의 마음이 다시 보였다. 첫째를 임신해 입덧이 심했을 때 수시로 내게 연락해 주시고 우즈베키스탄 식당을 찾아 밥을 사주셨던 동네 이모들, 출산을 앞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하나씩 차근차근 챙겨주셨던 어르신들…. 한국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많았는데 세월이 흐르며 연락을 잘 드리지 못한 것 같다.

인생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도 중요하지만 ‘누구를 만나 인연을 맺고 사는가’가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많은 복을 받았다. 고향에서도 좋은 친구들이 함께였고, 이곳 한국에서도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으니 말이다.

글|하미나

아이들과 대화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화장품 사업을 하고 있으며 농구, 배구 등 운동을 즐겨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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