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가족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슬퍼하면, 나도 같이 슬퍼지고 그 사람이 기뻐하면, 내 마음도 기쁨으로 출렁이는 그런 신기한 사이, 그게 친구가 아닐까요? 이번 호에는 여러분의 ‘소중한 친구’를 소개합니다.

2001년 11월, 우리 가족은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항공사는 어린이 승객을 위해 입체 퍼즐을 기내 선물로 주었다. 난생처음 비행기를 탄 남동생과 나는 선물까지 받아 들곤 무척 신이 났다.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간 중국에서 꽤 오랜 날을 보냈다.

그 당시, 나와 말이 통하는 유일한 또래가 한 살 어린 남동생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씩씩하고 해맑았던 동생은 언제나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흰 치아가 드러나게 활짝 웃었다. 그런 그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혀가 짧아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론 부모님도 동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생 전속 통역사를 자처했다. 종일 동생과 놀았던 만큼 그 누구보다도 동생의 발음 패턴에 익숙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생과 나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고, 대학에서도 같은 학문을 전공했다. 동생 친구가 내 친구였고, 내 친구가 곧 동생 친구였다. 우리는 티격태격 자주 싸우기도 했지만,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친구가 되어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남매가 가장 죽이 잘 맞는 순간은 ‘중국 라오깐마 소스(고추기름으로 만든 소스)’로 국수를 만들 때였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로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일요일 점심시간만 되면 동생과 나는 주방으로 달려갔다. 동생이 행주에 물을 적셔 상을 닦고, 수저를 놓고 가스 밸브를 켜는 동안, 나는 얼른 솥을 꺼내 정수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을 한가득 받는다. 평소 같았으면 정수를 받았겠지만, 그날은 최단의 시간으로 국수 끓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뜨거운 물이 끓는 동안 우리는 라오깐마 소스, 계란과 소면, 그리고 국그릇을 가스레인지 바로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소면을 넣는다. (면은 언제나 굵기가 가장 가느다란 것으로 골랐다.) 면이 60% 정도 익어갈 때쯤 계란 4개가 서로 엉겨 붙지 않게 국수에 깨어 넣는다. 그리고 라오깐마 소스를 취향껏 넣고 계란이 익을 때까지 삶아낸다. 그렇게 우리는 초간단 라오깐마 국수를 완성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동생은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누나, 센 불, 약한 불? 계란 노른자는 터트릴까? 아니면 그대로 둘까? 소스는 이 정도면 되겠지?” 나도 동생에게 답하며 물었다. “오늘은 배가 너무 고파서 면을 넉넉하게 넣어야겠어. 물은 이만큼 넣으면 충분하겠지?” 우리는 사뭇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서로의 의견을 살피고 조율해 가며 점심을 완성했다. 사기그릇에 담긴 국수는 계란 노른자와 붉은 소스가 어우러져 신라면과 같은 빛깔을 띤다. 면을 따로 찬물에 헹구지 않아서 국물이 적은 마라탕과도 모습이 비슷했다. 상상만 해도 침샘이 저절로 자극되는 요리, 그 라오깐마 국수로 하나가 되는 우리였다.

나와 동생은 함께 대학을 졸업했지만, 동생은 곧바로 입대했고 전역한 후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집에 남아 부모님 곁에서 지내고 있다. 동생은 바빠서 집에 못 온 지 벌써 648일째가 된다. 동생이 없는 1년 반 동안 나는 라오깐마 국수를 단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 우연히 집에 선물로 들어온 국수가 가득히 쌓여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남동생과 국수를 만들어 먹던 날이 생각났다.

“나의 오랜 친구이자 동생인 민식아, 보고 싶다. 언제 한번 집에 오면 그때처럼 라오깐마 국수 만들어 먹자.”

글|조수진

3년차 직장인이다. 하루하루를 즐기며 산다. 아이디어 내는 것을 좋아하고, 삶과 배움에 열정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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