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서 1년 살기, 백향빈

마라도나·메시·프란치스코 교황을 배출하고, 영화 ‘에비타’의 주제곡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배경이 된 나라. 이 정도가 아르헨티나에 관한 기자의 단편적인 정보들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백향빈 씨 역시 ‘메시의 고국’이라는 이유 하나로 작년 봄 아르헨티나로 자원봉사를 떠났단다. 만 1년을 지내고 올해 2월 중순 한국에 돌아온 그는 거기에서 ‘여러 빛깔의 경험’을 했다고 한다. 말로 다 옮길 수 없는 벅찬 시간이었다는 아르헨티나에서의 1년 살기 소감을 들어본다.

백향빈 보건행정학을 전공, 졸업 후에 아르헨티나로 날아갔다. 화목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고 무난한 삶을 살아온 그는 해외봉사  간 아르헨티나에서 ‘변화’를 경험했다. 앞으로 주어진 삶을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단다. 사진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부 내에 있는 축구장에서 친구와 제초 작업을 하다가 찍은 것이다. 사진제공 백향빈
백향빈 보건행정학을 전공, 졸업 후에 아르헨티나로 날아갔다. 화목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고 무난한 삶을 살아온 그는 해외봉사  간 아르헨티나에서 ‘변화’를 경험했다. 앞으로 주어진 삶을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단다. 사진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부 내에 있는 축구장에서 친구와 제초 작업을 하다가 찍은 것이다. 사진제공 백향빈

안녕하세요. 계절도, 밤낮도 반대인 나라에 가게 된 이유는요?

저는 삶에 큰 굴곡 없이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에요. 튀거나 주목받는 걸 싫어했고 앞으로도 ‘조용하게, 무난하게 살자’가 제 인생 모토였지만, 마음 한편에는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은 바람도 있었어요. 이런 제 성향을 잘 아는 주변의 권유로 해외봉사를 신청하게 됐는데 막상 국가를 정하는 것에는 고민이 없었어요. 축구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이어야 했죠.(하하) 2022카타르월드컵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던 메시의 아르헨티나 대표팀, 그들을 맞이하려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광장을 빼곡히 메우던 아르헨티나 국민의 열정을 잊을 수 없었거든요. 축구와 메시의 나라, 꼭 가보고 싶었어요.

축구를 향한 그곳 사람들의 열정은 실제 어땠나요?

월드컵 이듬해의 축구 열기는 대단했어요. 곳곳에 대표팀과 메시 관련 사진, 벽화가 즐비했고 좀 과장을 보탠다면 등번호 10번의 메시 유니폼을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정도였고요. 아르헨티나 사람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어디에 있든 축구를 해요. 삶의 일부예요. 제가 있던 지부에서도 우리 단원들과 현지 사람들이 매일 점심 후에 덥든, 춥든, 비가 오든, 축구를 했어요. 연휴에는 하루 종일요. 오히려 쉬면 몸이 무거운 것 같아 축구하면서 몸을 풀고, 친구도 사귀고…. 원 없이 했어요. 더 이상 미련 없을 만큼.(하하) 하지만 아르헨티나를 축구 하나로만 설명한다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죠. 어마어마한 매력이 있는 곳이거든요.

함께 추억을 만든 아르헨티나 굿뉴스코 단원들. 미국, 태국, 한국, 다국적 사람들이 만나 친구가 되었다. 사진제공 백향빈
함께 추억을 만든 아르헨티나 굿뉴스코 단원들. 미국, 태국, 한국, 다국적 사람들이 만나 친구가 되었다. 사진제공 백향빈

사진으로 보내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굿뉴스코 지부가 굉장히 넓고 아름다웠어요.

그렇죠?(하하) 제가 주로 생활했던 곳인데 무려 5만 9,000평이나 됩니다. 며칠 둘러봐도 못 가본 곳이 있을 정도로 무척 넓어요. 70여 명의 아르헨티나 사람들 그리고 ‘동물농장’이라 불릴 만큼 여러 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어요. 저는 현지인과 동고동락하면서 지냈기 때문에 스페인어도 빨리 늘었고, 한국의 가족이 그리울 때는 제 마음을 달래며 가족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늘 곁에 있었어요.

주로 오전엔 지부를 둘러보면서 공사를 하거나 가축 우리를 관리하고 사료를 주며 지낼 때가 많았어요. 한국에서는 내 방 청소도 게을리했던 제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작은 것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배울 수 있었죠. 오후엔 대사관 방문, 굿뉴스코 홍보, 문화 교류 등 대외적인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한국어, 영어, 태국어, 중국어, 포르투갈어, K-팝 댄스, 태권도 총 7가지의 아카데미 클래스를 준비했어요. 4월~6월, 8월~10월 두 학기로 나눠서 매주 토요일 오전과 오후에 400명과 함께하는 무료 아카데미를 운영했거든요. 제겐 너무 당연해서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한글’이 이곳에서 정말 인기가 많더라고요. 한류 덕에 매 순간이 특별했어요. 하나도 평범한 건 없었죠.

한국어아카데미를 맡아 열강하고 있다. 사진제공 백향빈
한국어아카데미를 맡아 열강하고 있다. 사진제공 백향빈

아르헨티나 굿뉴스코 블로그를 보니까 음식 자랑도 대단하던데요.

하하. ‘이곳보다 잘 먹는 나라가 있을까?’, 항상 궁금했습니다. 소고기 소비량이 전 세계 1위인 아르헨티나는 지구 위에서 소고기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예요. 국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목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목축, 낙농에 축복받은 땅이죠. 소고기를 숯불에 천천히 익혀 굽는 방식인 ‘아사도’가 유명한데 정말 질리도록 먹어봤어요.(하하) 유럽계 이민자가 많은 이유로 밀 농사를 지어 빵이나 파스타도 즐겨 먹어요. 특히 저희 지부에는 여러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 많아서 세계 음식도 덤으로 먹을 수 있었어요. 간식도 푸짐해서 한 번도 배고프다고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였고요. 늘 풍성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건, 저희를 위해 요리해 주시던 식당 봉사자들의 수고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정말 감사드려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 ‘탱고 거리’에서. 화가 낀겔라 마르틴에 의해 화려하게 재탄생한 곳이다. 사진제공 백향빈
부에노스아이레스 의 ‘탱고 거리’에서. 화가 낀겔라 마르틴에 의해 화려하게 재탄생한 곳이다. 사진제공 백향빈

국토 면적이 한국보다 28배가 크더라고요. 여행할 기회는 많았나요?

굿뉴스코 메인 센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지만 지방에 9개의 지부가 있어서 여러 곳을 다녀봤어요.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씩 머물렀고요. 주변국 우루과이에도 4~5번을 갔었습니다. 그중 ‘멘도사 한 달 살이’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안데스 산맥과 와인으로 유명한 도시 멘도사는 날씨가 맑고 따뜻해서 활동하기 좋은 곳이에요. 매일 눈을 뜨면 거대한 안데스 산맥을 볼 수 있었죠.

낮에는 한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이 되어 학교를 돌며 한국 문화 아카데미를 진행했고, 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녁에는 잠잘 숙소를 제공해준 분 댁의 중고등학생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며 스페인어를 더 배웠고요. 현지 사람의 일상을 아주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었어요. 아르헨티나에 온 지 3개월 만에 남자 단원 둘이서 낯선 지방 살이를 한 거라 언어의 장벽과 열악한 환경에 어려움이 컸지만 익숙해진 것에서 벗어나야 보이는 것이 있더라고요. 힘든 과정을 넘기면서 많이 성장했던 시간이었어요.

세상의 땅끝, 우수아이아에서 한 컷 기념 촬영. 이곳은 어디를 둘러봐도 멋지다. 사진제공 백향빈
세상의 땅끝, 우수아이아에서 한 컷 기념 촬영. 이곳은 어디를 둘러봐도 멋지다. 사진제공 백향빈
후후이에서무지개 언덕(일곱 빛깔의 산)을 만났다. 미네랄 성분이 달라서 색이 다르게 보인다고. 사진제공 백향빈
후후이에서무지개 언덕(일곱 빛깔의 산)을 만났다. 미네랄 성분이 달라서 색이 다르게 보인다고. 사진제공 백향빈
전통차 ‘마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덧 친해진다. 사진제공 백향빈
전통차 ‘마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덧 친해진다. 사진제공 백향빈

또 기억에 남는 방문 장소가 있다면요?

2주간 보브릴, 산타페, 차코, 코리엔테, 후후이, 살따, 산티아고, 코르도바, 이렇게 아르헨티나 북부 8개 지역을 돌면서 코리안 캠프를 개최했습니다. ‘젓가락 사용법’ 부스도 신기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죠. 지역 방송국에서 취재를 올 정도로, 2주간 BTS처럼 살았다고 할까요?(하하) 도시 후후이에서 바라본 ‘일곱 빛깔의 산’은 정말 아름다웠고 맞닿은 볼리비아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어 이색적이었어요. 방문한 장소에 인접한 나라와 기후, 지형 등이 조금씩 달라 비슷하면서도 다른, 다채로운 문화와 삶을 체험할 수 있어 아르헨티나가 가진 빛깔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세상의 땅끝으로 불리는 우수아이아의 비경,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이구아수의 거대한 풍광 역시 잊을 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본인의 활동이 현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보나요?

저희는 어디를 가든지 아카데미와 캠프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았어요. 행사 마지막에는 꼭 마인드 강연을 했고요. 강연 내용은 세상의 그늘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힘에 관해서였어요. 아르헨티나는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어 마약 환자들이 많거든요. 길거리에서도 마약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중독된 모습으로 구걸하는 사람도 볼 수 있고요. 주변 나라들도 마약 관련 범죄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런데 저희 활동이 큰 호응을 얻었고, 그 이유는 건전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에요. 한류와 같은 건전 문화의 장을 통해 놀거리를 얻고, 마인드 프로그램을 통해 검은 유혹을 끊어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거죠. 그렇게 해서 실제 변화된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것을 통해 본인이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저는 아르헨티나에 와서 초반까지도 흡연을 했었습니다. 끊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어요. 두 번 정도 들키고 나니까 제가 담배를 피운다고 온 지부에 소문이 났어요. 굿뉴스코 봉사자들은 금주, 금연을 기본으로 생각하거든요. 그 뒤로 저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도 예전에 마약 하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그랬어. 그런데 이러이러해서 끊을 수 있었어.”하면서 자신들의 경험담을 말해주었어요.

이들은 저를 가족처럼 대해줬죠. 하나하나 챙겨주면서 때로는 아버지처럼 가르침을 주기도 했어요. 제가 삶을 절제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담배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건, 예전에 마약을 했던 분들이 마약을 끊고도 집으로 가지 않고 지부 안에서 생활하는 점이었어요. 밖에 나가면 너무나 쉽게 유혹과 만나기 때문에 일부러 절제할 수 있는 공간 속에 자신을 두는 거라고 하더군요. 공동생활에 참여하면서 교류의 힘을 빌리고, 건전한 활동을 하면서 밝고 유익한 세계에 계속 접촉하는 것, 제 삶에도 꼭 필요한 자세였습니다.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었네요.

맞아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마음의 교류를 거리낌 없이 하는 편이에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또 진정성 있게 말을 건네요. 이곳의 카페나 식당에서 대화를 할 때면 사람들은 휴대폰을 잘 보지 않아요.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가죠. 심지어 어린 학생들도요. 한국에서는 친구랑 말하면서도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여다 보던 저에게는 굉장히 낯선 풍경이죠.(하하) 그 중심에 ‘마떼 문화’가 있어요.

아르헨티나 제2의 도시 코르도바 중심가에서. 코리안 캠프를 마치고 단원들과 한 컷. 의미 있는 활동으로 보람이 큰 하루였다. 사진제공 백향빈
아르헨티나 제2의 도시 코르도바 중심가에서. 코리안 캠프를 마치고 단원들과 한 컷. 의미 있는 활동으로 보람이 큰 하루였다. 사진제공 백향빈

‘마떼 문화’요?

전통 차 ‘마떼’를 담은 잔을 여럿이 돌려 마시며 우정과 신뢰를 쌓는 문화예요. 아르헨티나인들은 마떼만 있으면 몇 시간도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요. 저 역시 마떼 잔을 사람들과 나눠 마시며 2~3년 치 말할 것을 다 말하고 온 것 같아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상대와 어떻게 대화하는지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저는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에게도 힘든 일, 고민을 일절 말하지 않던 사람이에요. 처음 아르헨티나에 와서도 그렇게 지내다가 누르고 눌렀던 불만이 갑자기 폭발한 때가 있었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마음속에 담고 참아야 하는 게 아니라 꺼내놓고 풀어가야 한다는 걸 알려줬어요. 마음을 나누며 함께 이겨내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것도요. 덕분에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도 더 가까워졌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니까 짤막하기만 했던 전화 통화 내용이 길어지더라고요.(하하)

아르헨티나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한 경험도 있었나요?

글을 많이 써봤어요. 굿뉴스코 아르헨티나 블로그를 제가 맡아 기록하고 운영해 봤는데 글쓰는 재미를 얻었다고 할까요. 매주 글을 쓰다 보니, 글 쓰는 속도도 붙고 표현도 다양해지더라고요. 어떻게 기록하고 편집하며 구성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도 즐거웠고요. 글 쓰는 것과 스페인어를 좀 더 공부해서 남아메리카, 축구 등에 관한 다양한 글을 써보고 싶어요.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살던 한 청년이 익숙한 데에서 벗어나 새로운 체험을 해봤다. 드넓은 아르헨티나 곳곳을 누볐고 한류의 힘을 빌려 세상의 그늘을 어루만졌으며 스스로도 성장했다. 많은 경험들이 수천, 수백 가지 빛깔의 이야기가 되어 그의 안에 담겼고 마음이 부유한 사람이 되었 다. 또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백향빈은 ‘교류’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도전, 글쓰기 세포가 있다는 것. 자신의 결핍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알아챘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지만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는 사람도 될 수 있었단다. 그렇게 길 위에 서서 세상과 자신을 발견했다. 먼 길을 떠나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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