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만 되면 겪는 새 학기 증후군

한 달 전 어느 토요일, 카이스트 캠퍼스에 갔다. 그곳 북카페에서 지인과 만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우리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을 향했다. 2층 북카페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풋살장이었다. 가랑비가 내리는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학생들이 얼마나 신명나게 축구를 하는지 보는 사람의 마음도 절로 즐거웠다. 멀리서 보기에도 그들은 이기려는 승부욕보다 서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카페를 나가는 길에 풋살장에 잠시 들렀다. 언뜻 보기에 한국인 같은데 피부색이 약간 달랐다. 선수 교체로 쉬고 있는 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인도네시아 유학생이라면서, 주변 대학에 와 있는 같은 나라 학생들이 주말마다 모여 친목을 다진다고 했다. 가랑비가 멈췄지만 날씨는 여전히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전혀 문제 삼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젊음이 좋은 게 아니겠는가. 그 학생들에게 다시 물었다.

“한국에 와서 가장 어려운 게 뭔가요?”

“한글 배우는 거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국 학생 사귀는 거요.”

“같은 과에 한국 학생들이 있지 않아요?”

“네, 그런데 한국 학생들 너무 차가워요.”

“겉보기에는 냉랭해 보여도 한국 사람은 정이 있어요. 마음은 따뜻해요.”

그런 인연으로 나는 그들과 친구 맺기를 했다. 인도네시아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단 유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청소년들의 문제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입학과 복학으로 새 친구들을 만나지만,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며 갈등하다가 친구를 사귀지 못한 채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떻게 이 상황을 피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을까?

한국은 6.25 전쟁을 치르면서 국토가 전부 폐허가 되었고, 가진 것도 모두 잃어버렸다. 당시 맥아더 장군은 우리나라의 참담한 현실을 보고 ‘이 나라를 다시 재건하는 데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예측과 다르게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빠르게 경제 대국이 되었다. 경제 성장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주었고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을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마음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해 사회적 병폐가 커지고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과잉 보호와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자제력 결핍과 유약한 마음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강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강한 마음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삶의 부담들을 직접 부딪치며 즐길 때 만들어진다. 인도네시아 유학생들이 축구를 즐기듯 부담을 즐기며 살면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새 학기를 맞은 학생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친구를 사귀어라.” 누구든 학교에 가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친구로 만들어라. 대상은 교실에 있는 학생은 물론이고, 선배와 선생님도 포함된다. 친구가 되려면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한다. 먼저 내 소개를 하고 마음의 손을 먼저 내민다. 어색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친구가 되는 것이다. 하루에 1밀리미터씩이라도 친구와 마음이 가까워지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뭐든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용기가 있다면

로봇다리 세진이라는 청년이 있다. 방송에도 여러 번 나온 그는 두 다리가 없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고, 가슴으로 낳아준 엄마를 만나 로봇다리로 걷게 되었다. 세진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방 한가운데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걷는 연습을 하라고 하면서 자꾸 아들을 넘어뜨렸다고 한다. 계속 아프고 힘들게 만드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세진이는 울면서 매달려 보았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세진아, 걷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네가 걷다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줄 아는 게 더 중요해. 일어날 힘이 없을 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용기도 정말 필요하고.”

이런 가르침을 받은 세진이는 마침내 강한 마음의 소유자로 성장했다. 26세의 청년이 된 지금은 어느 법무법인에 입사해 직장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새 학기가 낯설기는 모두가 마찬가지다. 다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도움을 청하는 손을 먼저 내밀면 된다. 예전에, 서부아프리카의 아름다운 나라 코트디부아르를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서 귀에 익은 단어 하나를 들었는데, ‘모나미mon ami’였다. 프랑스어로 ‘내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곳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모나미’라고 하면서 끌어안고 반겨주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모나미’라는 볼펜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낯설지만 친구가 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새 학기 증후군은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글쓴이 조규윤
현재 국제마인드 교육원 교육위원, 새소리음악중고등학교 대표로 일하고 있다. 명예 교육학 박사로서 인성교육 전문 단체 ‘맘키움’, ‘맘소울’ 고문으로도 활동한다. 사회의 구심점을 가족으로 보는 그는, 가족간의 행복한 관계 형성을 위해 청소년교육과 부모교육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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