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일들을 보면 숨이 컥컥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집과 사무실에서 내가 해결해야 할 일들,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한동안 멍해진다. ‘어떻게 해야 하지?’, ‘뭘 해야 하지?’ 천지에 널린 게 고민거리들로 보인다.

나는 재능이라고 내세울 만한 게 없고, 남들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추지도 않았기 때문에, 법조인이 되었어도 살아가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변호사 개업 20년째가 되니, 노련해질 만도 한데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사건이 항상 머리에서 맴돌아 제대로 휴식하는 게 쉽지 않다. 어떤 때엔 잠을 자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벌떡 일어나 메모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서서히 지치다가 마침내는 회의감이 밀려 온다. 그러나 산더미도 산더미이지만 회의감에 매몰되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길을 찾고, 힘껏 들숨을 쉬어 새로운 공기를 들여보낸다.

이제 일을 시작해야 한다. 많은 일들에 내가 둘러싸인 상황은 흔한 일상이 되었기에 답답해도 차근차근 하나씩 처리해간다. 땅을 파서 흙을 옮겨야 할 때 한 삽씩 퍼서 수레로 던지듯이 일도 하나부터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중에는 발동이 걸려서 마치 몸이 자동으로 움직여지는 것처럼 느껴지고 결국에는 흙을 다 퍼내게 된다.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은 산더미를 한 번에 옮겨야 한다는 부담을 느껴서 그렇지, 하나씩 하면 한 개나 백 개나 큰 차이가 없다. 결국 하나씩 할 수밖에 없다.

사진 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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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아들 셋을 키우고 있다. 아이들 때문에 보람을 느끼고 감사할 때가 있고, 반대로 맘대로 되지 않아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도 있다. 나는 아이들을 닦달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방관하지도 않는다. 아이들 때문에 생기는 산은 낮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무심코 지나가면 나중에 폭발하는 수가 있어서(내가 그랬다) 뭔가 조짐이 보이면 다가가서 설명을 해주거나 혼을 낸다. 이때에도 말을 많이 하는 대신 하나만 이야기한다(어차피 아이들은 하나만 기억한다). 그러고는 조금 거리를 두며 기다렸다가 아이가 내 이야기를 받아줄 수 있을 때 또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때 다시 가서 두 번째 하려 했던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기를 열 번 했을 때 아이가 하나를 받아들이면 나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느린 것 같고,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가르침을 계속 받으면서 조금씩 바뀐다. 또한 아내가 집 안팎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일로 힘들어 할 때도, 나는 남편이지만 별로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대신에 나는 조용히 주변을 살피며 아내가 주저앉지 않도록 어깨에 손을 얹어준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 나의 공(?)을 알았는지 아내도 고마워한다.

투머로우에 쓰는 글은 참 희한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한 편을 내기 위해 서너 편을 쓰지만, 이번에는 정말 안되겠다 싶을 한계를 만나기도 한다. 안된다는 심정 그대로 조용히 묵묵히 글을 써 내려가면, 혼자 사기충천하여 쓴 글보다 의외로 더 좋을 때가 많다.

글을 어떻게 쓸까 매달 고민하지만 글을 쓰는 방법도 같다. 한 문장씩 쓰면 된다. 처음 쓰는 한 문장은 다음 문장을 가져오고, 다음 문장은 또 다음 문장을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작가가 소설을 쓰지만 나중에는 등장인물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과 비슷하다.

크든지 작든지, 많든지 적든지, 중요하든 그렇지 않든, 하나씩 하면 되고, 그 하나를 시작하면 된다. 포기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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