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호 에세이, 졸업

꽃다발을 안고 걸어가는 학부모들, 교문 앞에서 북적이는 상인들, 한껏 들뜬 학생들로 북적이는 운동장. 여느 졸업식 풍경입니다. 학업의 한 단계를 잘 마친다는 건 축하 받을 일이죠. 우리 삶에서도 ‘마무리’를 잘 짓는 일은 중요합니다. 삶의 크고 작은 매듭을 지어가는 여러분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스물아홉

초등학생 시절 즐겨 봤던 드라마가 있다. 주인공 나이는 서른으로 ‘파티시에’라는 꿈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나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어렴풋이 ‘서른’의 모습을 그렸다.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해지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나이.’

하지만 내 나이 스물아홉. 실제로 서른을 마주하니, 당황스러웠다. 나는 여전히 의사 표현이 서툴다. 또한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했지만 ‘이게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라는 물음에 쌓였다. 서른에 가까워질수록 불안은 커졌다. 스물아홉에 유학을 떠난다는 지인 소식을 듣곤 ‘해외 취업을 해볼까?’ 고민했고, 간호사 친구와 만난 후론 ‘편입해야 하나?’ 하고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학교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원하던 직장에 다니고,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렸기에 막연히 행복할 것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그날 선배가 나에게 최근 고민, 어려움을 털어놓는 것을 보고 놀랐다. “조건들이 갖춰지면 더 행복해질 거라 여겼는데, 그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더라. 조건 없는 행복이 클수록 진짜 부자인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며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대학 시절 1년간 독일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때였다. 한번은 무전여행을 떠났다. 도시 곳곳을 다니며 주민을 위한 행사를 열었다. 종종 머물 곳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행사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우리를 집에 초대해 주셨다. 난생처음 만난 사람인데, 오히려 우리가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들. 당시, 우리가 가진 건 배낭 속 티셔츠 몇 벌뿐이었지만,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만날 때 누구보다 행복했다.

선배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시절을 떠올렸다. ‘은아야, 너 소중한 사람이야. 기쁘게 살아.’ ‘실수 좀 하면 어때, 이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봐.’ 8년 전, 봉사단 지부장님이 내게 해주셨던 애정 어린 조언들이 다시 내 마음을 두드렸다. ‘맞아, 그런 순간이 내게도 있었구나.’

내년 2월이 되면, 나는 20대를 졸업하고 ‘서른’이 된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고민스러운 것도 많다. 하지만 내게 남은 1년 동안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한다. 조건만 좇던 내가 잘 쓰지 않던 마음의 문을 열어보는 거다. 부모님의 사랑을, 누군가가 나를 향해 가졌던 소망의 약속을 심고, 물을 주고, 볕을 맞으며 키우기. 처음엔 약한 것 같지만, 언젠간 뿌리가 꽤 깊이 내려 내 삶에 새로운 꽃을 피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나는 ‘서른’의 정의를 새로 써가고 싶다.

글|고은아

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4년 차 직장인으로, 현재 글로벌 제조기업 영업관리부에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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