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에세이, 졸업

꽃다발을 안고 걸어가는 학부모들, 교문 앞에서 북적이는 상인들, 한껏 들뜬 학생들로 북적이는 운동장. 여느 졸업식 풍경입니다. 학업의 한 단계를 잘 마친다는 건 축하 받을 일이죠. 우리 삶에서도 ‘마무리’를 잘 짓는 일은 중요합니다. 삶의 크고 작은 매듭을 지어가는 여러분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끝맺음이 아닌 시작

198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대학 진학 대신 사회생활을 택했다. 늘 ‘새로운 무엇인가가 더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도전을 거듭했다. 각종 국가 자격시험, 공무원 시험, 피아노 등등.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중단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 꿈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고, 나중에는 운전면허라도 따야겠다 싶어 학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당시 6개월이면 딸 수 있었던 면허였는데 건강 상태 악화로 손을 떼야 했다. 그땐 참 서글펐다. 나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쉬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데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운전면허 학원을 찾았다. 좀 느릴지라도, 작은 것부터라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다. 학원에 그간의 사정을 솔직히 이야기하니, 비용을 더 내지 않고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다행히도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2년도 넘게 걸려서 말이다. 학사모라도 쓰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나는 그게 내가 이룬 첫 번째 ‘졸업’이라 여겼다.

이후, 늦은 나이였지만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자녀를 키우며 살았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대견하고 기뻤다. 큰아들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을 즈음 다시 나에게 목표가 생겼다. 바로 ‘대학 공부’였다. 언니와 형부의 도움을 받아 사이버대학에 진학했다.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학업을 이어가야 했기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 전까지 수업을 들었다. 틈틈이 공부했고, 주말에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결과 여러 차례 장학금도 받았다.

가끔 몸이 힘들 때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언제 8학기를 마치지? 그때 내가 몇 살이야?’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 피자 한 판에 8조각이지. 그럼, 이제 한 조각 먹었으니 7조각 남았네.’, ‘아! 이제 4조각 남았네.’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두었던 2020년 어느 날, 내 건강에 다시 적신호가 켜졌다.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젠 정말 포기해야 하나?’ 심한 갈등을 느꼈다. 약 일주일간은 절망으로 가득 차 수업조차 듣지 못했다. 하지만 긴 고민 끝에 나는 ‘포기’ 대신 ‘장학금을 좀 못 받을지라도 무리하지 않고 끝까지 공부하기’를 택했다.

중간에 몇 차례 위기 상황도 있었으나 나를 좀먹는 병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쉼 없이 싸우며 2020년을 무사히 넘겼다.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르고, 실습을 거치면서 2021년 영광스러운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졸업식을 정식으로 갖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우편으로 온 졸업장을 가슴에 꼭 끌어안아 보았다. 그냥 그래보고 싶었다. 나를 꼭 안아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다. 부끄럽지만 누군가에게 ‘졸업’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데, 나는 대학 졸업을 끝맺음으로만 남기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만나면, 건강을 염려하며 피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지난날을 돌아보니, 졸업을 향한 자신의 열정과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있다면 수많은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단단한 나를 위해, 더 완숙한 인생을 위해 나는 또 다른 ‘졸업’의 길을 가보려 한다.

글|이은미

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 평생교육상담학을 복수전공했다. 배움의 지경을 넓혀가는 것을 행복해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