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호 에세이, 졸업

꽃다발을 안고 걸어가는 학부모들, 교문 앞에서 북적이는 상인들, 한껏 들뜬 학생들로 북적이는 운동장. 여느 졸업식 풍경입니다. 학업의 한 단계를 잘 마친다는 건 축하 받을 일이죠. 우리 삶에서도 ‘마무리’를 잘 짓는 일은 중요합니다. 삶의 크고 작은 매듭을 지어가는 여러분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어머니와 졸업식

“은지야! 지금 학교 가는 거야?”

“오늘 졸업식이 있어서요!”

등교 시간을 넘긴 아홉 시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집 학생인 은지를 만났다. 요즘에는 겨울 방학식과 졸업식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은지는 문이 열리자마자 후다닥 뛰어가 친구들과 재잘거렸다.

‘요즘 졸업식은 12월에도 하는구나.’

두 딸의 졸업식이 언제였던가를 생각하며 자전거를 타고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출발했다. 그날은 나도 회사에 연차를 내고 모처럼 아내를 도와주는 날이었다. 하천을 따라가는 공원길은 아름다웠다. 빨리 가기 위해 페달 밟는 속도를 높였다. 숨이 차올랐지만, 머릿속에는 졸업식이라는 단어가 계속 따라왔다.

40여 년 전, 내 초등학교 졸업식과 어머니의 얼굴이 교차해 떠올랐다. 내 인생에 초등학교 졸업식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어머니는 한 번도 학교에 오시지 않으셨다. 입학식, 봄 소풍, 가을 소풍, 봄 운동회, 가을 운동회에도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비녀까지 꽂으신 할머니께서 어머니 자리를 대신하셨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오셔서 창피했고,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쌓였다. 한번은 속상한 마음에 운동회가 끝나고 집에 와서 울분을 쏟아냈다. “와 엄마는 맨날 안 오고 할매만 오노? 친구야들은 엄마가 오는데 어?”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장사하느라고 바빠서 못 갔다며 내 손에 백 원을 쥐여주셨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하나뿐인 아들 입학식도 보고 싶고 소풍도 같이 가고 운동회에도 와서 같이 뛰고 싶었지만, 시댁 살림을 책임지고 있던 어머니는 하루가 아닌 잠깐의 시간도 낼 수 없었음을. 그만큼 시어머니에게 강한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당시, 어머니의 고단한 시집살이를 달래 준 것은 초록색의 병에 담긴 술뿐이었다. 어머니는 결국 간암으로 힘겨운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내가 6학년 때는 이미 간암 말기까지 이르렀고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의술의 도움을 받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어머니는 항상 말없이 누워계시거나 고통이 심할 때면 가까운 동네 의원에 잠시 들르셨다가 저녁 늦게 집으로 오시길 반복하셨다. 그러던 중에 초등학교 졸업식이 다가왔지만 차마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2월 14일, 찬바람이 쌩쌩거리는 운동장에 졸업식이 한참일 때였다. 옆에 친구가 툭툭 친다.

“야, 너그 엄마 왔다. 한번 봐라.” 하며 계속 뒤를 보라는 손짓을 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어머니는 평소 걷는 것도 힘들어서 누워 계시거나 벽에 기대어 겨우 앉아 계셨다. 또한 내가 졸업식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니 그럴 리 없었다.

그래도 장난삼아 뒤를 돌아보았다. 많은 사람들 속에 어머니가 있었다.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깡마른 몸에 힘겨워하면서도 내내 나를 보고 계셨다. 내가 돌아보자마자 미소 지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때부터 졸업식이 왜 그리 길게 느껴지는지.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중국집으로 데려갔다. 짜장면 한 그릇을 주문하고 짜장면을 비벼서 한입 드시고는 내 쪽으로 그릇을 밀어주셨다. 그때 먹었던 짜장면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것이 어머니와 마지막 식사였고 마지막 외출이 될 것을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정말 몰랐다. 졸업식을 하고 이틀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내 나이 이제 오십을 넘겼다. 나에게 두 딸이 있다. 딸들 졸업식에는 언제나 중국집으로 향한다. 어머니가 내게 주신 사랑을 생각하면서 짜장면을 먹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옛날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가슴이 시릴 만큼의 그리움. 우연히 아침에 들은 ‘졸업’이라는 단어가 자전거 위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들게 해주었다. 어느덧 보니 식당에 도착했다.

아내는 활짝 웃으면 나를 반겨준다. 그 옛날 어머니가 나를 반겨 주듯이…

글|송병진

글쓰기를 즐겨한다. 2018년 수필 작가로 등단해, 근로자 문학제 문학 부문에 입상했고, 올해 월간지 ‘경남 공감’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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