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봉사여행, 굿뉴스코

시작이 있다면, 언젠가 끝도 오기 마련이다. 굿뉴스코 해외봉사 활동을 마치고 귀국하는 단원들의 심정은 아쉬움 그 이상이라고 한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건 ‘이 특별한 경험을 내 삶에 어떻게 녹일 것이냐?’의 문제다. 해외봉사 경험을 바탕으로 꿈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도전, 지금 아니면 언제?

말라위 김대한

귀국 후, 아프리카 청소년 교육 문제를 토론하는 대외 활동에 참석해 말라위에서의 경험을 공유했다.
귀국 후, 아프리카 청소년 교육 문제를 토론하는 대외 활동에 참석해 말라위에서의 경험을 공유했다.

나는 2022년도에 아프리카 말라위로 해외 봉사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한 가지 정확하게 보고 실감한 것은 ‘변화’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구에게나 변화는 일어날 수 있다’라는 사실이었다. 무기력했던 사람이 소망을 얻어 활기를 되찾고,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봤다. 나 또한 그랬다. 걱정과 스트레스로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던 내가, 말라위에서는 즐거운 추억을 헤아리다 잠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향해 쏟아지는 사랑을 느낄 때, 나로 인해 누군가가 희망을 얻었다고 할 때 내가 그토록 찾던 ‘행복’을 느꼈다. 그때부터 ‘어두운 마음을 빛으로 옮겨주는 삶’에 대한 꿈이 생겼고, 귀국 후에도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가장 처음 참여한 것은 굿뉴스코 페스티벌이다. 전 세계를 누비고 온 단원들과 함께 지난 1년간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체험담과 댄스 및 연극으로 표현하는 귀국 발표회를 열었다. 여름 방학에는 IYF월드 캠프에 참석해 전국 대학생들과 함께 말라위 청소년 교육 문제를 공부하고, 토론하며 해결 방법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방한했던 말라위 대학 총장님을 만나 피드백도 얻을 수 있었다. 말라위에서 배운 영어를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공부해 번역 및 통역 자격증도 취득했다. 덕분에 한국에 파견된 외국인 봉사자 통역을 도왔다. 올해도 하고 싶은, 해야 할 ‘도전’이 아주 많 다. 바빠지겠지만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민간 외교관으로 한 걸음

우간다 홍민서

지난 12월, 외교부 청년 인턴 활동을 수료했다. 앞으로 우리나라 외교에 이바지하고 싶다.
지난 12월, 외교부 청년 인턴 활동을 수료했다. 앞으로 우리나라 외교에 이바지하고 싶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외교관, 유엔사무총장을 꿈꾸며 자랐다. 하지만 실제 교류 경험은 적었다. 5년 전, 해외 봉사단으로 아프리카 우간다로 떠났을 때 비로소 진정한 교류를 배울 수 있었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또, 어느 날은 우간다 기초교육부 장관님을 직접 만나 활동 소개를 할 기회도 있었는데 무척 설렜던 기억이 난다. 한국으로 돌아와 다양한 대외활동을 했는데,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참가했던 온라인 ‘코리아 커넥트’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동문들이 모여 전 세계 학생을 대상으로 문화 교류 행사를 개최한 것이었다. 특히 나는 4년간 케이팝을 알리는 강사로 활동했다. 그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며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마음을 조율하며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웠다.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졸업생이 된 지 1년이 되어간다. 지난해에는 외교부에서 청년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외교부’라는 건물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우리나라의 외교와 안보를 위해 24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일하시는 외교관들을 직접 만나고, 일도 배울 수 있었다. 앞으로 나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의 따뜻한 정을 전하는 민간 외교관이 되려 한다. 외교부가 정책과 제도를 통해서 외교를 한다면, 나는 직접 외국인들을 마음으로 만나며 우리나라의 외교에 이바지하고 싶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고마워서

우즈베키스탄 김대권

1년간 중앙아시아에 있는 여러 나라로 봉사하러 다녔다. 봉사활동을 하며 가장 많이 느낀 게 있다면, 이 세상에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이 아직 많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이 하루 한 끼를 걱정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언제나 내게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난 그들에게 도움을 주러 갔지만, 마음에 큰 빚을 진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봉사활동을 마친 그는 꿈을 가지고 카자흐스탄으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함께 식사하는 시간.
봉사활동을 마친 그는 꿈을 가지고 카자흐스탄으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함께 식사하는 시간.

그 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그들에게 좋은 음식을 해주고 싶었고,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런 내 고민을 몇 차례 들으신 봉사단 지부장님은 “네가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배우는 것에도 흥미가 있다면 그 꿈을 갖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 좋겠다.”라며 응원해 주셨다. 결국, 나는 카자흐스탄의 농업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이 있는 중앙아시아는 유목 생활을 하던 민족이 살았던 까닭에 유제품과 육가공 식품이 발달했다. 나는 유제품과 육가공 식품을 중심으로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식탁에 오르는지 공부했고, 수백 가지가 넘는 우유의 종류와 그 효능을 익혔다. 또한, 식품이 인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한 식습관을 가질 수 있을까?’, ‘한국 사람들에게는 어떤 음식이 가장 필요할까?’ 등을 고민하면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건강식품을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올해 여름이면 대학 졸업을 하는데, 대학원 공부를 이어가려 한다.

그간 어려운 일들도 있었지만, 방학 때면 그리운 친구들이 있는 우즈베키스탄에 놀러 가 마음의 힘을 얻기도 했다. 언제나처럼 따뜻한 밥을 건네주는 사람들 덕분에 지금껏 나의 꿈을 키워올 수 있었다.

내 꿈의 시작은 그곳이었다

가봉 박지은

학창 시절 겉모습을 가꾸는 데에 열중하며 시간을 보냈던 나는 대학 진학 후 진로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그때 그 고민의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도전한 것이 해외봉사였다. 목적지는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 가봉. 나는 그곳의 한 사립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 수업이 끝나면 감사하다며 웃는 학생들을 보며 밤새워 수업을 준비하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겉모습을 가꾸는 것보다 수업을 준비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행복해하는 나를 보며 ‘이런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교육부 파견 사업에 참여해 태국에 갔을 때, 한국어를 가르쳤던 학생들이 지은 씨의 생일을 축하했다.
교육부 파견 사업에 참여해 태국에 갔을 때, 한국어를 가르쳤던 학생들이 지은 씨의 생일을 축하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프랑스어와 한국어 교육을 복수 전공하며 대학에 다녔다. 졸업과 동시에 교육부에서 주최하는 파견 사업에 참여해 태국 고등학교에서 2년간 한국어를 가르쳤다. 귀국 후에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교사로 일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서 놓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음에 새기는 말이 있다. ‘좋은 교사는 배움을 즐거움으로 만든다.’ 지금은 대학교 어학당에서 더 많은 학생을 만나기 위해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다. 이런 나를 볼 때면,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 신기할 따름이다.

얼마 전,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내 생애 처음 한국어를 가르쳤던 가봉 학생 ‘오드레’가 한국에 온 것이다. 한국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오드레를 보며 행복했다. 이 길을 걸으며 앞으로 또 어떤 학생들을 만나게 될지 무엇을 배울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확실한 하나는 가봉으로 떠나기 전보다 다녀온 지금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꿈

짐바브웨 전요섭

나는 바이오 제약회사에서 10년째 근무 중이다. 학창 시절, 나는 사회적인 성공과 삶의 보상을 가장 중요시했다. 그런데 대학교 4학년 때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해외 봉사를 다녀온 후,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좋아졌다. 취업을 앞두고 그 가치를 피워낼 수 있는 기업을 찾아다녔고, MSD라는 제약회사에 입사했다. 1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Patient first’라는 환자 중심의 가치를 우선으로 두고 있는 기업으로, 에볼라 백신이나 코로나 치료제를 개발 및 공급한 곳이기도 하다.

짐바브웨 곳곳을 다니며 의미 있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
짐바브웨 곳곳을 다니며 의미 있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는 매일 아프리카를 위한 특별한 꿈을 안고 출근한다.
그는 매일 아프리카를 위한 특별한 꿈을 안고 출근한다.

입사한 후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나의 목표는 항상 같았다. 아프리카쪽 지사로 가는 것이다. 거기서 한 국가 한 국가를 돌아다니며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로 일하고 싶다. 아프리카에 가장 필요한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소아 병원을 건립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본래 일하던 영역이었던 ‘영업’을 비롯해 다양한 직무의 일을 경험하고, 다양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업무 역량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항암제 사업부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짐바브웨에서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게 나’라는 적극적인 태도를 배웠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아프리카 지사로 가서 작은 목표들을 이뤄나간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꿈도 실현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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