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가 심문자

버리지 못해 붙잡고 있던 것들을 막상 버리고 날 때, 의외로 삶이 홀가분해지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심리상담가 심문자 씨는 마음의 방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생각과 감정을 잘 버리고 정리해 줘야 비어진 마음의 여백에 행복이 깃든다고 말이다. 학교, 지자체, 인문학 강연장을 돌며 ‘계획’, ‘열심’, ‘분발’하기에 앞서, ‘빼기’를 먼저 해보라고 청중을 설득한다. 그를 만나 ‘마음 정리’의 의미와 노하우, 새해맞이 자세에 대해 들어본다.

반갑습니다. 마음을 정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정리’의 사전적 의미는 혼란스런 상태에 있는 것을 없애거나 바로잡아서 질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것은 가만히 놔두면 흐트러지거나 먼지가 끼기 때문에 적당할 때에 정리가 필요해요.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미움, 자만, 불안 등의 먼지가 너무나 쉽게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사람은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그중 부정적인 생각이 85% 정도예요. 우리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답답할까요? 그래서 관리가 필요해요. 마음도 하나의 방이라고 한다면 가급적 매일,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쓸데없는 것은 비우고 어지럽혀 있는 건 말끔하게 치우는 겁니다.

심문자심리상담가이자 한국독서개발연구원장. 학교, 지자체, 교육청 연수원, 대학교 교육개발원 등에서 심리지도, 부모교육, 인문학, 독서교육, 진로지도 강의를 펼쳐왔다. 현재 심리상담의 일환으로 문학치료 적용을 확대하기 위해 관련 분야 박사과정 중에 있다. 공저 《마음의 DNA를 바꿔라》. 인물사진 본인제공
심문자심리상담가이자 한국독서개발연구원장. 학교, 지자체, 교육청 연수원, 대학교 교육개발원 등에서 심리지도, 부모교육, 인문학, 독서교육, 진로지도 강의를 펼쳐왔다. 현재 심리상담의 일환으로 문학치료 적용을 확대하기 위해 관련 분야 박사과정 중에 있다. 공저 《마음의 DNA를 바꿔라》. 인물사진 본인제공

요즘 시대에 이 일이 어떤 가치를 갖나요?

오늘날은 ‘더하기’를 부추기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빼기 없는 더하기는 정말 위험해요. 가령, 부모와 교사가 아이를 존중하고, 공감하며,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렇다 해도 아이 마음을 정돈해주지 않고 그저 잘했다고만 한다면, ‘꽃길만 걸어라’는 식의 교육방식만 주장한다면, 그 결과는 어떠할까요? 잘못했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되어 있을 거예요. SNS 역시 소통과 교류 면에서 순기능이 있다 해도, 겉을 화려하게 과대 포장해서 사람의 내면을 감춰버리는 아이러니를 만들었죠. 쌓고 더하는 사이에, 속은 상처 나고 공허해지기 쉬워요. 이제 내 속을 열어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야 할 때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이에요. 그렇다면 정리의 첫 단계는 무엇일까요?

내 마음의 모습을 먼저 ‘발견’해야 정리를 해야겠다는 ‘동기’가 생깁니다. 사실 처음이 가장 어려운 단계예요. 속도의 사회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찬찬히 내면을 살피거나, 감정들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알려하기보다는 그냥 덮어놓고 모른 척하거나, 빨리 잊으려 하거나, 무관심할 때가 많아요. 정작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아요. 그런데 마음 정리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증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뭔가 모를 불안에 사로잡힌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트러블이 발생한다’, ‘쉴 수가 없다’, 이런 증상이 보인다면 청소할 시기가 온 겁니다. 불편하기 때문에 회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불편한 것과 마주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적당히 ‘생각하는 힘’이 필요한데요. 충동적인 생각이 아니라 나를 발견하려는 ‘의도’적인 생각을 하는 거죠.

‘의도’적인 생각이요?

일명 ‘사고력’이에요. 왜 두렵고 불안한지, 왜 미운지, 그 원인을 파고파고 들어가 생각의 뿌리를 살펴보는 것, 생각의 끝까지 가보는 거예요. 다시 말해 마음의 방 가까이 가서, 문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보는 거죠. 그러면 의외로 쓸데없고, 근거 없고, 의미 없는 생각들이 장기투숙하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저 습관적으로 ‘어렵다’, ‘힘들다’는 감정만을 붙들고 있으면 마음의 방에 접근조차 할 수 없어요. 감정의 뿌리를 캐기 위해서 한번 더 생각하며 끈질기게 들어가 봐야 불청객이 내 방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쫓게 되겠죠. 발견만 제대로 해도 정리는 저절로 되지만, 요즘은 생각할 시간을 차단하는 장애물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인문학 특강에서 강연하는 모습. ‘열심히 사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 삶의 해방은 어디에서 올까?’라는 주제로 청중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주 강연을 다닌다.  결국 마음속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정리하고 살 것인가, 그게 중심이다. 사진 본인 제공
인문학 특강에서 강연하는 모습. ‘열심히 사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 삶의 해방은 어디에서 올까?’라는 주제로 청중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주 강연을 다닌다.  결국 마음속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정리하고 살 것인가, 그게 중심이다. 사진 본인 제공

‘스스로’가 힘든 사람이 있어요. 쉽게 발견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상담의 도움을 받으면 좋아요. 상담은 내 마음의 방을 비춰보는 ‘거울’입니다. 저는 학교 현장에서 청소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대부분 공부가 잘 안 되는 문제로 찾아오지만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깊숙이 들어가 보면, 친구에 대한 질투, 미래에 대한 두려움, 부모님에 대한 원망 등 갖가지가 마음에 박혀 있어요. 학생들도 자기 속에 이런 게 있었나 하며 깜짝 놀라곤 해요. 저는 왜곡된 생각이나, 놓치고 있었던 점을 짚어주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끔 도와줍니다. 그들이 ‘나’에게로 여행을 떠나보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사고를 통해 내면의 힘을 키우는 걸 봐요. 특히 청소년 시기에는 조력자의 도움이 많이 필요해요. 사실 고립이 가장 무서운 거죠.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인 ‘나의 첫 책 프로젝트’에 초청받아 북토크를 진행했다. 2023 신진작가 두 명과 방청객과 함께한 북토크였다. 책은 사람을 행복에 이르게 해 주는 아주 훌륭한 도구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진 본인제공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인 ‘나의 첫 책 프로젝트’에 초청받아 북토크를 진행했다. 2023 신진작가 두 명과 방청객과 함께한 북토크였다. 책은 사람을 행복에 이르게 해 주는 아주 훌륭한 도구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진 본인제공

먼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겠어요.

맞아요. 내가 힘들다고 생각만 하는 것과 말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예요. 말하는 그 자체는 준비가 된 거죠. 심리상담 현장에서는 말하는 것을 ‘놓아버린다’라고 해요. 그냥 말로 표현만 해도 마음속 시끄러운 감정들이 버려지고 정리될 때가 있어요. 여전히 부정적인 감정들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면, 계속 입을 열고 속을 꺼내놓는 거예요. 말을 한다는 건, 마음을 여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그 열린 문에 누군가가 들어가 정리를 대신해 주고, 그걸 보고 청소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상담을 꼭 추천 하는 이유입니다.

가장 먼저 휴지통에 들어가야 할 생각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내가 옳다는, 혹은 내 생각만 맞다는 ‘자기신뢰’예요.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과 감정이 답이 아니고 틀릴 수 있다며 인정해야, 잘 버릴 수 있어요. 잘 버리는 사람이 좋은 것을 수용할 수 있고요. 애덤 그랜트는 책 《싱크 어게인》에서 그렇지 못한 현대인들의 아집을 ‘정신적 구두쇠’, ‘인지적 게으름’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옳다고 여기는 게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마주해야,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변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자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 생각과 감정의 실체를 의심해 보는 일이 익숙지 않고 때로는 뼈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집으로 꽉 채워진 마음은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결국 행복과 감사를 놓치기 쉬워요.

유연한 사고를 통해 비워내고 연결되는 게 중요하겠어요. 이를 위한 노하우가 있을까요? 가장 효과를 본 정리법이 있다면요?

저의 경우는 ‘책’이었어요.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의 이야기에 솔깃하고 그걸 자기 삶에 대입해 볼 때가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책’은 훌륭한 정리 도구예요. 예를 들어 ‘어려움’에 처해 ‘슬픔’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사라 스튜어트의 《리디아의 정원》을 추천합니다. 리디아는 부모님이 일자리를 잃게 되자, 도시에서 빵집을 하는 외삼촌댁으로 가게 돼요. 웃음이 없는 무뚝뚝한 외삼촌을 웃게 하기 위해 그는 멋진 일을 계획하는데 바로 빵집에 아름다운 꽃들을 가꾸는 일이었어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낯설고 불편한 환경 속에서 힘들 법도 한 리디아는 다른 길을 선택하죠. 나와 비슷하게 ‘어려움’이라는 처지에 있다가 ‘다르게’ 가는 지점을 잡고, ‘이 사람은 이렇게 하네?’, ‘이런 사고방식도 있구나!’ 하며 그것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살피다 보면, 내가 느끼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정리될 때가 있어요. 책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부정적인 생각을 쪼개는 ‘도끼’라고 여기는 이유입니다.

좋은 서사의 힘입니다. 책을 통해 또 어떤 활동이 가능할까요?

아예 다른 처지도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사람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사고의 확장, 즉 역할 바꾸기를 책을 통해 해보면 좋아요. 맥스 루카도의 《너는 특별하단다》를 보면, 나무인형 판치넬로가 잿빛 점표를 받고 자기를 별 볼 일 없는 나무 사람이라고 여기며 불행해하죠. 하지만 자신을 만든 엘리 아저씨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가 본 판치넬로는 아주 특별한 존재예요.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계가 달라질 수 있어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그레고르 입장에서 쓰여 있지만, 아버지 입장에서 써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와요. 그래서 상담을 하거나 수업을 할 때, 책을 통해 주체 바꿔보기, 상대입장에서 대화해 보기, 편지 쓰기 등의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물론 처음엔 귀찮아하죠.(웃음) 하지만 자꾸 해보면, 생각의 전환이 온다고 말해요.

상담 사례도 있을까요?

최근 지독한 미움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어느 할머니와 상담을 한 적이 있어요. 옆집 할아버지가 24시간 종일 틀어 놓은 TV소리가 소음이 되어 너무 힘들었대요. 시정요구를 해도 말이 통하지 않자, 할아버지를 죽이고 싶고, 그 집에 불 지르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신 거예요. 상담을 하면서 할머니의 생각의 방향을 자꾸 전환시켜 드렸어요. 역할 바꾸기는 공생의 서사예요. 꼭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어도 같이 사는 공생의 서사를 찾아다 드리는 겁니다. ‘다시 한번 생각하기’의 힘이에요.

꼭 버려야 할 것도 있지만 방향과 위치를 바꿔보는 것, 그것도 마음정리네요.

어떤 시각에서 보면 감정과 생각이라는 것은 다 쓸데가 있어요. 적당한 불안은 앞으로의 일을 준비하고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문제는 그것이 지나치게 자리를 차지하거나, 그 감정이 꿈쩍도 안 할 때입니다. 정리를 통해 과잉된 것은 버리고, 어지럽혀진 방향도 바꿔줄 필요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마음을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것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잦은 사고의 전환을 통해 공생의 서사를 만들어가길 바라요. 자주 입을 열고 마음도 열어보세요. 말하다 보면, 비워지고 훨씬 가뿐해질 거예요. 평안함에 다다를 수 있도록, 여러분 마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관리해 주세요.

인터뷰를 하기 전, 기자는 엉뚱하지만 나름 그럴듯한 질문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마음이라는 게 컨트롤이 가능할까? 정리하려고 애쓰면 더 안 되던데?’ 평소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아, 속을 잘 덮어두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두 가지를 알았다. 부정적인 감정을 방치하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 마음 정리는 제대로 하면 확실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그가 말하는 ‘제대로’는 의외로 단순했다. “내 생각과 감정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만 열어두세요. 그러면 나머지는 저절로예요.” 나를 좀 더 객관적이고 유연하게 바라볼 때, 우리는 비울 수 있고, 열 수 있고, 좋은 것들로 채울 수 있다. 그게 좀 힘들면 상담과 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정리는 결코 어렵지 않으리. 뭔가 무거웠던 기자의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잘 비워지고 잘 채워졌나 보다. 새해에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