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③

새로운 해가 떠올랐습니다.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참 좋은 날이죠. 이탈리아 작가 체사레 파베세는 ‘세상의 유일한 기쁨은 시작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매일 아침 우리에게는 큰 기쁨이 배달되는 셈입니다. 1월에는 독자들이 경험했던 새로운 출발,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지난해 여름에 결혼한 나는 남편이 살고 있었던 ‘통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평생을 경기도에서 살았던 나였기에 거주지를 옮기는 일은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결혼 후 사랑하는 남편과 매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점은 행복했지만, 난생처음 해보는 살림에 진땀을 빼는 일도 많았다. 엄마는 뚝딱 만들어 내던 국과 반찬이 내가 만들 때는 왜 이리 어려운 건지, 요리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외출하고 싶어서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데 마땅히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곳도 없고, 마땅히 함께 갈 사람도 없고, 지리도 몰라 그냥 외출을 포기하고 집 앞에 있는 마트에서 장을 봐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벌컥 짜증이 났다.

‘결혼하기 전에는 가고 싶은 곳에 맘껏 갈 수 있었는데 여기는 전철도 없고 교통이 불편해. 만날 친구도 없어서 따분해! 내 힘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마트밖에 없다니….’ 이런 불평이 올라오자, 그 생각은 점점 부피를 키워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퇴근한 남편에게 불평을 쏟아내고 말았다. 남편은 내 말을 가만히 들어주곤,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그랬구나. 고향을 떠나와 낯선 곳에서 적응하느라 고생이 많지? 그런데 내가 이 집을 신혼집으로 선택했을 때 ‘우리 아내가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바다를 이곳에 와서 실컷 보겠구나.’라고 생각했어. 집 주변에 보면 산책길이 있는데 바다가 한눈에 보여서 정말 아름다워. 같이 가보자. 그리고 통영에 온 김에 운전을 배워보면 어떨까? 운전을 배우면 통영 이곳저곳은 물론 대한민국 땅 어디든 원하면 갈 수 있으니까. 또, 여기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도록 같이 고민하고, 도와줄게!” 남편의 말을 듣고 나니, 바보처럼 불행할 조건만 찾고 있던 내 모습이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통영에 와서 오히려 더 좋아.’라는 마음으로 일상을 시작했다. 집 앞 산책을 하며 푸른 바다를 눈에 담고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마셨다. 또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인연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곧 운전면허 시험에도 응시할 예정이다.

통영에 온 후,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홀로 방치된 음식은 부패하여 몸에 해롭지만, 잘 보관된 음식은 발효되어 몸을 이롭게 한다. 새해에도 부패한 생각이 아닌 발효된 생각으로 행복하게 시작하려 한다.

글쓴이 | 박서인

결혼과 동시에 물리치료사로 7년간 일하고 있던 도시를 떠나 지금은 통영에 내려와 살고 있는 새내기 주부이다. 꽃꽂이와 그림 그리기가 취미인 그는 언젠가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 한 권을 쓰고 싶어 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