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자세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지인과 대화를 하던 중, 그의 제자에 대해 들었다.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에 속하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살고 있다는 제자가 가끔씩 보내주는 문자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같다고 했다. 갓 서른 살의 젊은이가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살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소개를 부탁해서, 그가 써서 보내준 에세이를 받게 되었다. 좋은 내용이라서 독자들과 함께 읽어본다. - 편집자 주

1년간 교회 건물 없이이곳저곳을 전전했지만 2023년 2월, 새롭게예배당을 얻어 그곳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어려운 일 없이 삶이 평탄하기만 했다면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1년간 교회 건물 없이이곳저곳을 전전했지만 2023년 2월, 새롭게예배당을 얻어 그곳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어려운 일 없이 삶이 평탄하기만 했다면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하 중아공)에서 살고 있는 선교사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미래의 꿈을 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극한 직업이 아니냐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는 이 일에 자부심과 감사를 느낀다. 아프리카와의 인연은 10년 전 대학생 때로 올라간다. 취업에 유리하다는 해외 경험 스펙을 쌓으려고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 내 작은 반응 하나에도 한없이 고마워하며 진심 가득한 웃음을 짓는 그들과 1년을 지내며, 내 삶의 방향이 바뀌는 소리가 들렸다. 채워지지 않던 마음 가득 느껴지는 행복감에, 처음으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신학교에 재입학했고, 졸업 후 기업의 신입사원이 아닌, 아프리카의 선교사가 되었다.

패기만만한 선교사, 자신감으로는 안됐다

나는 신념과 긍지 그리고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2019년 3월, 많은 일들을 해 볼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코트디부아르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하지만 2년 동안 하는 것마다 문제가 생겼고, 만나는 사람마다 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다. 내가 절망과 패배감에 지쳐 있을 때, 중아공으로 선교지 이동 발령이 났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런가? 좌천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지속할 수 있는 힘,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힘,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평소 믿고 따르던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같은 선교사인 그는, 좁은 길을 걸어도 늘 넉넉하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주변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선교에 대한 두려움, 내 자질의 문제, 상황에 대한 불평 등을 토로했다. 나의 긴 이야기를 듣던 그가 한마디 짧은 말을 건넸다.

“중아공은 가장 좋은 나라야.”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그만두어야 할 이유를 20가지도 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나에게 단 하나를 알려 주었다.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건 ‘긍정의 시선’이었다.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 세상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걸 그는 알려주고 싶은 것이었다. 어려울 법한 수 백 가지 이유가 있어도 그럼에도 긍정의 시선을 놓지 않아야 된다는 걸, 그 안에 답이 들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의지할 것도, 방법도 없었던 나는 그 말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

중아공의 수도 방기에 위치한 공항 정문을 나서면 펼쳐지는 거리의 풍경. 앞으로 살아갈 이곳의 척박한 모습에 막막하고 두려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편하고 정감 가는 일상의한 자락이 되었다.
중아공의 수도 방기에 위치한 공항 정문을 나서면 펼쳐지는 거리의 풍경. 앞으로 살아갈 이곳의 척박한 모습에 막막하고 두려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편하고 정감 가는 일상의한 자락이 되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2021년 7월, 중아공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곳에 오기 전, 구글에 나라 이름을 치고 검색해 본 적이 있다. 보이는 것은 총을 든 반군들과 불타는 건물들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내전을 많이 겪었고, 아직까지 반군이 활동하는 나라, 천문학적인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어도 개발 능력이 없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게 사는 나라.

나는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선교지로 출발했다.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활주로에 셔틀 버스가 없었다. 캐리어를 끌고 걸어 들어간 공항 내부는 정전이 되어 깜깜했다. 그런 상황에 익숙한 듯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내가 도착한 곳은 화물을 찾는 곳. 짐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가 없어 무작위로 쌓여있는 짐들을 헤집고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직접 찾기 시작했다. 멍하니 있으면 짐을 도둑맞는다는 소리에 허겁지겁 사람들 틈에 섞였다.

중아공에서의 첫날은 어딘가에 호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수도 방기에 교회를 꾸리고, 불편한 시설과 물, 전기가 부족한 삶에도 이내 익숙해졌다. 사람들과 만나 마음을 나누는 시간들도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시내에 가서 환전을 하고 다시 차에 오르던 순간이었다.

“손들어!”

갑자기 차로 달려든 강도들이 환전한 돈이 든 가방을 들고 사라졌다. 얼마 뒤에 있을 크리스마스 행사를 위해 모아온 돈과 교회 식구들 20여 명의 몇 달치 식비였다. 옆에서 우는 아내를 데리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때부터 중아공 사람들이 다 도둑 같고 강도 같았다. 방에 틀어박힌 채 절망을 데리고 며칠을 살았다. 나는 방향을 잃었다.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짐을 싸고 있던 중, 갑자기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중아공은 가장 좋은 나라야.’

이 상황에 절대 어울리지 않는 그 말을 부인하고 싶었지만, 자꾸 귓가를 맴돌고 머릿속을 헤집고 마음을 울렸다. 다시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다. 나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이었다. 선배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붙잡을 게 그것밖에 없어서 달콤하게 듣고 삼켰지만, 어려워 보이는 일을 겪고선 당장 뱉어버리고 짐을 싸고 있었다. 돈을 잃어서 슬펐지, 마음 중심을 잃어서 슬퍼한 적이 없는 것도 우스웠다.

절망의 시선 속에 또다시 나의 시간을 가두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상황과 남 탓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어렵지만, 다시 한번 희망을 선택하기로 했고,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났다. 신기한 건, 돈이 없는데도 생각도 못한 방법으로 크리스마스 행사를 잘 치렀고 한 번도 교회 식구들과 굶지 않고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후로 한 번 두 번, 내 생각에서 벗어나 희망의 소리를 듣는 연습을 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것이 보이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법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정말 많은 일을 겪었지만 지면의 한계로 두 가지를 소개하겠다.

아내와 함께. 선교사의 딸로 태어난 아내는 2살 때 아프리카로 와서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냈다. 남편도 선교사를 만나 다시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항상 내 옆에서 버티어주고 날 이끌어주고 있다.
아내와 함께. 선교사의 딸로 태어난 아내는 2살 때 아프리카로 와서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냈다. 남편도 선교사를 만나 다시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항상 내 옆에서 버티어주고 날 이끌어주고 있다.

길거리 예배당

2022년 2월의 일이다. 점심식사를 하던 중, 갑작스러운 집주인의 통보로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당장 잘 곳도, 짐 둘 곳도 없었다. 경황없이 짐을 추려 나와 주변에 사는 성도의 집으로 갔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할지 몰라서 선배한테 전화를 해서 질문했다. 답변은 간략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중아공에 크게 일하실 거야. 더 큰 집과 예배당을 주실 거야. 큰 땅을 얻어서 중아공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게 하실 거야.”

전화를 받고 있는 그 순간, 그해 처음으로 내린 비에 마냥 젖고 있는 마당의 짐들이 내 눈에 보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야기와 내가 보는 세상은 참 달랐다. 흔들렸지만, 나는 또 선택해야 했다. 긍정의 시선을. 말의 글자 하나 바꿔도 세상이 달라지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상황을 듣고 찾아온 성도들에게 나는 마음을 정하고, 긍정의 글자 하나하나를 말로 옮겼다.

“더 큰 집과 예배당을 주실 겁니다. 이번 일로 큰 땅을 얻어서 중아공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지을 겁니다.”

사람들이 웃었다.

“선교사님 부부도 집이 없어 야외에 모기장을 치고 자면서 어떻게 집을 얻을 수 있어요?”, “길거리에서 예배 보는 것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조롱하는데 어떻게 큰 예배당이 생겨요?”, “성도들도 하루에 한 끼 간신히 먹고사는데 어떻게 땅을 사서 큰 교회를 지을 수 있습니까?”

상황에 대한 자신의 판단과 표상을 늘어놓는 그들에게 나는 선배에게 들었던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우리에게는 연습이 필요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을 바꾸는 연습 말이다. 말이 바뀌면 마음이 바뀌고 눈이 바뀌고 세상이 바뀔 테니. 계속 말하다보니 나도 더 힘을 얻고, 성도들도 조금씩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1년 간 4번의 이사를 하며 돌아다녔다. 길거리나 넓은 공터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있었다. 비가 오면 홍수가 나서 짐들이 잠겼고, 도둑이 들어 방송장비를 훔쳐가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은 형편과 별개로 쉴 수 있었다. 나에게는 평화가 있었다.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는 희망의 이야기가 있었다. 또 주변의 목사님들도 우리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주셨다. 여유가 생기면 선교비로 보내주셨고, 자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내 상황을 물으셨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느 날 나는 가만히 교회 성도들을 바라보았다. 교회 건물이 없던 1년 동안, 놀랍게도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 수가 늘어나 있었다! 길거리 예배를 드릴 때, 사람들이 지나가다 호기심에 같이 앉아서 말씀을 듣고, 우리와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그렇게 교회 성도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 내가 또 배운 게 있다면, 어려운 형편에서도 좋은 점만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것이 확대되어 정말 좋은 형편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대통령을 만나 힘차게 악수를 나눴다. 중아공에 소망을 전하는 나의 일에 큰 격려와 응원을 보내셨다.
대통령을 만나 힘차게 악수를 나눴다. 중아공에 소망을 전하는 나의 일에 큰 격려와 응원을 보내셨다.

대통령을 만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크게 일하시겠다는 희망에 발을 내디뎠다. 중아공 청소년들에게 꿈을 주고 싶어서 청소년 캠프를 구상했다. 장관들을 행사에 초청하려고 중아공 청소년부 장관과 고등교육부 장관을 찾아가 우리의 활동을 담대히 알렸고 감명을 받은 그들이 캠프를 돕기 시작했다. 어느 날, 소식을 들은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왕이면 캠프를 하는데 그 나라 대통령도 오시면 좋겠다.”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 제안을 수용해보기로 했다. 선배의 말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궁금했다. 다시 청소년부 장관 사무실을 방문했고, 물어 물어 장관이 계신 곳을 찾아갔다. 외국인 선교사가 자신을 만나려고 먼 곳까지 와줬다는 것에 감동한 장관은 그 자리에 있는 지인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리고 청소년 캠프까지 참석해 주셨고, 대통령을 만날 자리도 만들어주셨다.

드디어 포르탱 아르샹주 투아데라 대통령을 만나는 날이었다. 그날, 중아공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과 비전을 소개했고 대통령께서는 청소년 센터를 지을 수 있는 좋은 땅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하셨다. 2023년 3월, 대통령께 받은 넓은 부지에서 청소년센터 기공식이 열렸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2022년 2월, 집과 교회 터를 잃었지만 2023년 2월, 정확히 1년 만에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쫓겨났던 집보다 훨씬 큰 집이었다. 그곳에 예배를 보았는데 예전보다 두 배는 넓은 예배당이었다. 이제 대통령께 받은 땅에 청소년센터가 들어서면 얼마나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까. 지금 나는 정부와 함께 여러 일들을 하고 있다.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 세상은 다른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다.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땅에 청소년 센터 건물이 세워질 것이다. 이곳에서 중아공의 많은 청소년들이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땅에 청소년 센터 건물이 세워질 것이다. 이곳에서 중아공의 많은 청소년들이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나는 선교사로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소망을 멈추지 않고 전하는 사람이다.
나는 선교사로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소망을 멈추지 않고 전하는 사람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프리카에서 강대국에 속했던 중아공이 내전으로 하루아침에 최빈국이 되자 지금까지도 거기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 삶은 이렇지 않았다. 내전이 내 삶을 바꿨다.”라고 말한다. 내전 이후에 태어난 세대 중에도 부모에게 들어왔던 말들을 따라, “이 나라는 내전 때문에 망했다. 그래서 내 삶이 이렇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런 청년들을 만나 긍정의 글자 하나하나를 말로 옮겨 설명했다. 그러자 국가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불만을 가지던 학생들의 마음이 점점 바뀌고, 지금은 우리 선교회의 활동을 돕고 있다. 하루는 불만 많던 딸들이 우리를 만나 행복해하고 남을 위해 사는 것에 감동을 받은 한 아주머니가 날 찾아왔다. 내가 어떻게 내 생각을 버리고 다른 눈으로 중아공을 볼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분의 마음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저는 지금까지 내 삶이 어려운 이유가 내전 탓이라 여겼습니다. 불행의 이유를 다른 곳으로 돌리며 힘들어했습니다. 누구 탓도 아닙니다. 희망을 보지 못한 내 눈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는 내가 변하면 모든 사람도 변할 수 있다며, 자신이 사는 동네에 새마을운동을 벌여 한 마을을 바꾸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가난하지만 부유함을 잃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된 것이다. 이곳의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며 내가 선택한 이 길이 감사하고 가치가 크다는 걸 느낀다. 꽃보다 아름다운 그들이 중아공을 변화시킬 걸 믿는다.

나에게는 지금 희망이 있고, 할 일이 있다.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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