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②

새로운 해가 떠올랐습니다.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참 좋은 날이죠. 이탈리아 작가 체사레 파베세는 ‘세상의 유일한 기쁨은 시작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매일 아침 우리에게는 큰 기쁨이 배달되는 셈입니다. 1월호에는 독자들이 경험했던 새로운 출발,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모든 것이 마냥 새롭던 대학 시절을 지나 갓 취준생이 되었을 때, 나는 이미 20대 중반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직업을 가져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쌓여 하루하루를 보냈다. 진로 방향이 뚜렷한 주변 동기들을 보니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그래도 내게 “20대에 방황하고 실패하는 건 당연한 거야. 한 번쯤은 진지하게 인생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해.”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있었다. 덕분에 ‘이 시기가 자연스러운 것이구나.’ 하며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아서 미대에 진학했지만, 막상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내가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때 집안 사정으로 아버지 일을 잠시 돕게 되었다. 세탁소 일은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 시기를 지나며 한 가지 깨달았다.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 돈은 적게 벌어도 그림 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삶이 즐겁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1년이 지날 즈음, 생각지 못한 기회가 왔다. 한 잡지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감사했지만, 나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기에 걱정이 앞섰다. 선택해야 했다. 대학 전공과 관련한 직장을 찾아볼 것인가? 아니면 잡지 디자이너 일에 도전해 볼 것인가? 결국, 난 도전을 택했다. 디자인과 그림의 경계에서 관련 분야의 더 깊고 넓은 시각을 갖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12월, 마침 내 첫 출근을 했다. 진로에 대한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기에 한결 단단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젠 학생의 신분이 아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생산적인 일을 하며, 업무에 대한 꽤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

혹 지금 내가 했던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해 방황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나 한심한 일이 아니에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물론, 직장을 잡았다고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이 내게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방황의 시기에도 언젠가는 끝이 오고, 방황과 어려움도 내 삶에 필요한 초석이 되어준다고 말이다.

글쓴이 | 신혜린

대구대학교 영상애니메이션학과를 졸업했다. 그림을 그리고, 색을 더하는 일을 통해 그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전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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