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상화의 개인전 ‘쉼을 얻다’에서 본 그림들이 마음에 긴 여운을 남겼다. 특히 한 작품에는, 힘들게 지냈던 이전의 내 삶이 담겨 있었다.

이상화의 ‘고립된 생각’, 142×142cm, 캔버스에 오일, 2021년
이상화의 ‘고립된 생각’, 142×142cm, 캔버스에 오일, 2021년

열쇠가 꽂힌 자물쇠 네 개를 연결한 그림의 제목은 ‘고립된 생각’. 자물쇠마다 열쇠가 꽂혀 있지만 서로 맞물려 있어 열쇠를 돌릴 틈이 전혀 없다. 열리지 않는 그 상태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자물쇠와 열쇠 곳곳에 녹이 슬어 있다. 이상화 화가는 ‘아무리 옳더라도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화폭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림 속의 자물쇠 문제를 푸는 길은 아주 간단하다. 아무 열쇠든지 하나를 잠시 빼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열쇠가 돌아갈 공간이 생긴다.

젊은 날 나는,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열심히 고뇌하며 답을 찾았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 답이 마음 속 답답함까지 속시원히 풀어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내가 내린 답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답답한 상태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은 활기를 잃어 그림 속 자물쇠처럼 점점 녹이 슬었고, 삶의 근원적 의미도 퇴색되어갔다.

빠져나올 수 없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나를 건져낼 유일한 길은, 자물쇠의 열쇠 하나를 빼내듯이 내가 내린 답을 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문제의 답을 찾아낼 수 없는 무능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무능한 사람이 되면 무력하게 살아야 하고, 그러면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그런데 전혀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꽉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하던 마음에 빈 공간이 생겼고, 그 공간에 다른 사람들의 좋은 생각들이 드나들 수 있었다.

답답한 채로 인생을 보낼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자유로워져서 어제보다 행복한 오늘을 늘 살고 있다. 내 판단이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에 빈 공간을 갖는 것, 그리고 그 공간에 새로운 것들이 들어와 삶을 새롭고 활기차게 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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