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 엄마, 권세정

한국의 출산율은 OECD국가 중 꼴지를 기록하고 있지만, 육아 관련 시장은 오히려 빠르게 성장 중이다. 자녀 수는 적어도, 내 자녀를 ‘더 잘’ 키우기 위한 열의는 강렬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육아 서적을 비롯해 관련 전문가와 온오프라인 프로그램도 넘쳐난다. 하지만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확실한 답을 가진 부모들은 별로 많지 않다. 자녀를 행복한 아이로 기르기 위해, 부모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양육해야 하는가?

얼마 전, 우연히 한 모임에 참석했다가 아이 넷 엄마를 만났다. 네 자녀를 키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자 그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기숙 중학교에 다니는 둘째가 막내에게 생일 편지를 보내왔어요. 그걸 읽던 막내가 펑펑 울면서 누나가 너무 보고 싶다 하더라고요. 그 마음이 참 예쁘고 순수하죠?” 그의 이야기 속에는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부담보다, 즐거움과 기쁨이 더 컸다. ‘육아’에 대한 그의 자세가 궁금해 또 한 번의 만남을 청했다.

권세정 씨의 자랑,사랑스러운 네 남매다. 사진 맨 왼쪽이 맏아들 영민이, 중앙이 둘째 선아, 맨 오른쪽이 셋째 선숙이, 중앙 아래가 막내 영철이다. 4년 전에 찍은 사진으로, 지금은 모두 훌쩍 자랐다.사진제공 권세정
권세정 씨의 자랑,사랑스러운 네 남매다. 사진 맨 왼쪽이 맏아들 영민이, 중앙이 둘째 선아, 맨 오른쪽이 셋째 선숙이, 중앙 아래가 막내 영철이다. 4년 전에 찍은 사진으로, 지금은 모두 훌쩍 자랐다.사진제공 권세정

반갑습니다. 세정 씨 가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총 여섯 식구예요. 먼저, 남편은 긍정적인 성격을 가졌어요. 같이 있으면 저도 그 ‘긍정’에 물이 들죠. 첫째 아들은 중학교 3학년인데 새로운 일에 호기심이 많고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는 아이예요. 중학교 2학년인 둘째 딸은 식구들 생일이면 꼭 손편지를 써서 감동을 주는 분위기 메이커예요. ‘끼’도 많아서 성대모사도 잘하죠.(웃음) 초등학교 5학년인 셋째 딸은 외향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예요. 상상의 나래를 펼쳐 글쓰기를 좋아해요.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1학년인 넷째 아들은 마음이 따뜻해요. 좋은 걸 보면 자기보다 형과 누나를 먼저 생각해요.

아이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네요. 결혼하면서부터 다자녀 가정을 꿈꿨나요?

어려서 주변 어른들이 “형제간에 느끼는 우애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는 또 다른 귀한 재산이다.”, “아이는 제 먹을 건 갖고 태어난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자랐어요. 다자녀 가정에서는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나 절제, 사회성 등을 자연스레 배울 수 있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그래서 결혼하면서 셋은 낳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가까이 사시는 저희 형님 가정도 아이가 셋이라서 다자녀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죠. 사실 넷째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 ‘선물’이었어요. 늦둥이를 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말이긴 하지만, 저 역시 넷째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어요. 넷이 되니 가족 분위기가 또 바뀌더라고요. 특히 맏아들이 남동생을 그렇게 기다렸거든요.

다자녀 가족의 일상은 어떤가요? 기대했던 그대로인가요.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고 배우는 게 있어요. 엄마 아빠가 없으면 첫째가 책임감을 느끼고 동생들을 살피더라고요. 동생들은 누나랑 형을 보면서 먹는 것, 입는 것부터 생활 습관을 하나둘 배워가고요.

특히 셋째랑 넷째가 무척 사이가 가까운 편인데요. 막내는 어디를 가도, 누나가 좋아하는 과자가 있으면 자기가 먹지 않고 챙겨와서 꼭 누나에게 줘요. 누나를 기쁘게 해주는 게 자기는 더 좋대요. 얼마 전에도 모아둔 과자 꾸러미를 누나에게 내밀더군요.(웃음) 그걸 받은 셋째가 며칠 뒤에 자기 용돈 모아둔 걸로 털모자를 사서 동생에게 씌워줬어요. 선물이라면서요. 아이들의 이런 순수한 마음을 보는 게 행복해요. 제가 되레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고요.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 같아요. 넷을 키우시니 육아의 베테랑이 아닐까요?

그럴 것 같은데(하하)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여전히 안개 속을 걷듯 어려워요. 아이들이 점점 커갈수록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욕구도 커지기 때문에 육아에 대한 고민도 자연히 많아지더라고요. 예전에는 막연히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 좋은 장난감, 좋은 경험을 시켜주면 아이들이 행복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서로 더 싸우거나 엉뚱한 고집을 피우더라고요. 결국 저도 아이들을 혼내야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죠.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뭘까? 어떻게 키워야 하지?’가 늘 숙제였어요.

어느 날엔 같은 동네에 사는 또래 엄마들과 대화를 했는데, 고민하는 지점이 대부분 비슷했어요. 다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쉽지 않구나. 같이 머리도 맞대고, 육아 선배들에게 배우며 키워보자.’라고 의견을 모았죠. 그렇게 ‘공동 육아’ 즉 육아 품앗이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권세정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20년 전 대학 졸업과 동시에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독일에 다녀왔다. 그때가 ‘삶의 행복’에 대한 기준이 뒤바뀌는 인생 최대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그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뤘으며, 수년 전부터 청소년을 위한 마음의 쉼터를 만드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주말을 맞아 셋째 선숙이와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사진 박용언
권세정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20년 전 대학 졸업과 동시에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독일에 다녀왔다. 그때가 ‘삶의 행복’에 대한 기준이 뒤바뀌는 인생 최대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그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뤘으며, 수년 전부터 청소년을 위한 마음의 쉼터를 만드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주말을 맞아 셋째 선숙이와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사진 박용언

‘같이’ 키우는 육아, 어떤 점이 좋았나요?

우선 같이 모여서 육아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도 엄마도 즐거웠던 것 같아요.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놀고, 엄마들은 묵혀 두었던 고민도 나누고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길을 함께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엄마들이 매주 돌아가며 강사가 되어 다양한 강연을 들려줬어요. 그런데 아이만 아니라 부모도 배워야겠더라고요. 행복한 가정이란 무엇인지,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끌어야 하는지 등이요. ‘부모 교육’ 강사님들을 섭외해 직접 배우기로 했어요. 하다 보니 ‘우리만 배우지 말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엄마들과 공유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죠. 강연 장소를 빌리고, 주변 엄마들에게 부지런히 알렸어요. 그렇게 양육 품앗이 모임을 함께하는 분들이 많아졌죠.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전까지도 활동을 계속 이어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7,8년이 지나고 나니 아이들도 훌쩍 커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도움이 된 배움은 무엇이었나요.

저희 공동육아 모임에서 ‘우리 엄마 마음에 괴물이 살아요.’라는 주제로 부모 교육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주제는 실제 제 심정이기도 했지요. 한 번은 둘째 아이 수학 공부를 봐준 적이 있어요. 제가 볼 땐 쉬운 문제인데, 아무리 가르쳐도 틀린 답만 하는 거예요. 참고 참다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어요. “내가 몇 번 말했어. 너 지금 이것도 못 풀어?!” 부끄럽지만, 감정이 앞서서 아이를 다그쳤죠. 그러고 나면 죄책감이 들어 괴로웠어요. 좋은 말로 잘 가르쳐보자고 매번 다짐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을 마주하면 그 다짐은 무용지물이 되더라고요. 그걸 여러 차례 반복하며 끙끙 앓다가 남편에게 내가 너무 나쁜 엄마 같다고 고민을 털어놨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며칠 뒤, 부모 교육 행사에 참석했다가 이런 말을 들었어요. “법 없이 마음으로 사는 게 가족입니다.” 자녀가 부모에 대한 옳은 기준을 갖거나 부모가 아이를 향한 기대가 쌓이면 결국 서로를 향한 ‘마음의 벽’이 생기거든요. 그런데 사실 가족끼리는 좀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서로에 대한 기대나 기준이 가족의 소중함보다 크지 않다. 서로를 가로막고 있다면, 그 벽을 허물자’는 게 강연 내용이었죠. 그 말이 제 육아의 방향을 다시 잡아주었어요.

세정 씨는 어떤 벽을 허물었나요.

저는 둘째에게 ‘공부를 아주 잘하진 못해도 중간 정도는 해야지.’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아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지만 그게 서로에게 아픔이 된다면 거기서 멈춰보기로 했어요. 기준을 내려놓고 아이를 대했죠. 그러니까 시험 점수가 좀 낮게 나와도 아이가 숨기려 하지 않고 “엄마, 나 몇 점 받았게?” 하고 묻더라고요. 그 표정이 어찌나 해맑은지 오히려 제가 당황할 정도였죠.(하하) 저는 “생각보다 잘했는 걸?” 하고 칭찬해 줬죠. 그 덕분인지 ‘수포자’가 될 뻔한 저희 딸이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더라고요. 제 방식대로만 했다면 아이들과 저 사이에 많은 벽이 생겼을 거예요.

남동생을 그토록 바랐던 첫째 영민이는 세정 씨에게 늘 ‘막내는 내가 다 키울 거예요!’라는 약속을 했단다. 그 말처럼 영민이는 영철이를 살뜰히 보살핀다. 사진제공 권세정
남동생을 그토록 바랐던 첫째 영민이는 세정 씨에게 늘 ‘막내는 내가 다 키울 거예요!’라는 약속을 했단다. 그 말처럼 영민이는 영철이를 살뜰히 보살핀다. 사진제공 권세정

아이들 인성교육, 훈육 법도 엄마들의 큰 고민거리잖아요.

저도 어릴 적부터 아이들의 고집이나 잘못된 행동을 잡아주려고 싸우기도 하고, 노력했지만 그게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어요. 다만 확실한 건 훈육 또한 ‘같이’ 키운 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우선, 가정에서도 형이나 누나가 동생들을 가르치는데 영향이 꽤 커요. 때론 엄마 아빠보다 더 엄격하게 가르치죠.(웃음)

그리고 공동육아 모임의 소개로 어린이 댄스팀을 알게 되었어요. 당시 첫째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댄스를 하며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겠더라고요. 무엇보다 아이가 좋아해서 댄스팀에 보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즐겁게 놀다 오겠구나.’ 하고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댄스 연습을 시작하니, 생각지 못한 일도 있더라고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어느 날엔 아이가 댄스 연습을 마치고 집에 오더니, 친구랑 싸웠는데 자기는 억울하다며 표정이 시무룩했어요. 또 어떤 날에는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았다며 울상인 적도 있었죠. 단체 생활이라 한 사람이 잘못하면 전체가 같이 혼나기도 하거든요. 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했지만 이런 경험이 아이를 위해서는 참 좋겠다 싶었어요.

열심히 연습해서 댄스 대회의 상을 받는 경험도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신이 이해 못 할 일도 겪고, 친구들과 부딪혀도 보고, 그 일로 사과의 말을 건네고, 때로 실패를 경험해 보는 것도 모두 필요하잖아요. 첫째를 비롯해 둘째, 셋째도 댄스팀에서 3년 정도 활동했는데 제가 특별히 해준 건 없어요. 댄스팀 선생님을 믿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봤죠. 간혹 대회가 있으면 따라가서 같이 긴장하고, 같이 기뻐해 준 게 다였어요. 가끔 투정도 받아주고요.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힘들어하면서도 그만둔다는 말은 절대 안 하더라고요.(웃음)

‘친구들과 함께하는 즐거움’, ‘자신을 위하는 선생님의 진심’ 그런 걸 느끼면서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봤어요. 마음대로 못해서 불편하고, 선생님께 혼날 때도 있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게 있으니 화가 나도 참아보고, 부담스러운 일에도 부딪혀 보더라고요.

첫째와 둘째가 기숙형 중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다 같이 모이는 날이 손에 꼽는다. 여섯 식구가 한자리에 있는 날이면,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사진제공 권세정
첫째와 둘째가 기숙형 중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다 같이 모이는 날이 손에 꼽는다. 여섯 식구가 한자리에 있는 날이면,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사진제공 권세정

첫째와 둘째가 중학생이라고 하셨죠?

네, 두 아이는 지금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단체 생활의 연속이라 불편하고 어려운 부분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면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해요. 어린이 댄스팀에서 받은 훈련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도 많아졌어요. 그래도 집에서 넷이 함께 모이는 건 아직 좋아하더라고요. 막내는 첫째 둘째가 집을 떠난 뒤로 늘 “엄마, 며칠 남았지?” 하며 형과 누나가 오는 날만 기다려요. 넷이 다시 뭉치는 날에는 집이 얼마나 북적북적한지요. 그만큼 제 잔소리도 몇 배 많아지지만, 좋아요.(웃음)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너희가 지내다 보면 각자 고민도 생기고 어려운 일도 만날 거야. 그럴 때마다 너희 곁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걸 잊지 말고 기쁜 일, 좋은 일뿐 아니라 힘든 일, 어려운 일도 꺼내 놓고 함께 기도하면서 해결해 갔으면 좋겠어. 엄마 아빠는 너희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또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고 그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항상 건강하렴. 사랑해!

인터뷰를 마치고 세정 씨의 셋째 딸, 선숙이를 만났다. 막냇동생 영철이가 준 과자 선물을 받고 어땠냐고 물으니 수줍게 답을 한다. “영철이가 너무 고마웠어요.” 우리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기고, 결정을 한다. 삶의 자세는 곧 육아의 자세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세정 씨가 택한 건 가족의 소중함, 함께하는 행복, 그리고 무조건적인 따뜻함과 같은 가치였다.

함께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남을 무시하며 살기가 어렵고,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는 사람은 어긋나기 어려우며, 실패해도 돌아갈 품이 있는 사람은 오래 절망할 수 없다. 육아의 첫 단추는 ‘그 좋은 가치’를 알게 하는 것이 아닐까? 삶에서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 아는 것. 더 큰 행복도 추구하지만, 현재의 행복도 지킬 줄 아는 것. 그날 세정 씨에게 배운 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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