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 지역살이

많은 사람들은 대도시의 삶이 정답인 것처럼, 그곳의 훌륭한 인프라, 양질의 일자리, 좋은 교육 여건을 선호한다. 이는 지방 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에서 청년 인구가 이탈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한 경쟁에 지치고, 단절된 인간관계에 고립되어 가는 도시살이의 고충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여기, 지역을 무대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변화를 꿈꾸려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은 2018년부터 행정안전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국 39개의 청년마을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하며 지역과 함께 상생, 발전하고 있다. 이중 ‘할매와의 끈끈한 정’으로 주목 받는 경남 함양군의 청년마을, ‘고마워, 할매’를 소개한다.

 ‘고마워, 할매’에서 운영하는 지역살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도시 청년이 함양의 삼휴마을에 사는 할머니께 두부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둘의 대화 속에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고마워, 할매’에서 운영하는 지역살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도시 청년이 함양의 삼휴마을에 사는 할머니께 두부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둘의 대화 속에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 우리 마을을 소개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재미난, 청년마을 ‘고마워, 할매’. 이곳은 ‘시골 할매와 도시 손녀의 맛있는 이야기’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그런데 할매(할머니의 사투리말)와 손녀는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외지 청년이 함양 토박이 할매와 인연을 맺어 할매표 레시피를 배우고, 밥상을 차리고, 이를 토대로 창업·창직 실험과 판매까지 할 수 있는 곳이다. ‘할매’하면 떠오르는 ‘구수한 정’ 그리고 ‘맛깔나는 음식’을 매개로 대도시나 수도권에 사는 타지 청년들을 함양으로 초대해, 농업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는 로컬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고마워, 할매’가 벌이는 이 ‘청년 귀촌 자립 프로젝트’에 참가한 청년 중에서 실제 함양으로 귀촌한 사례가 제법 된다.

할머니 집을 방문해 레시피를 배우고 있다. 이를 기록하여 레시피북을 발간할 예정.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할머니 집을 방문해 레시피를 배우고 있다. 이를 기록하여 레시피북을 발간할 예정.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 함양을 지켜라 프로젝트: 청년 인구를 유입하라!

지리산 일번지로 불리는 경상남도 함양군은 사시사철 청정 공기를 듬뿍 마실 수 있는 아름다운 고장이지만, 안타깝게도 가파르게 인구가 감소하는 대표적인 인구 소멸 위기 지역이기도 하다. 인구 3만 7천여 명의 함양군의 지역민들은 함양을 ‘함양 빌리지’라고 부른다. 조그마한 인구 안에서 살다 보니 웬만큼은 서로를 다 알기 때문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다. 60대 이상의 인구가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꾸준하게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위한 복지정책(돌봄+문화 향유)이 시급하다. 반대로 청년 인구는 매년 급격히 줄어든다. 함양 청년 인구 유출 방지 및 도시 청년들의 지역 정 착을 돕는 프로젝트를 실시하라! 거기에 창의적 활동과 수입 창출 등의 활력 제고라는 목표까지 더해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마워, 할매’가 나섰다.

 팝업식당 ‘함무랑’을 열어 할머니와 청년 두 세대가 함께 운영해 보았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팝업식당 ‘함무랑’을 열어 할머니와 청년 두 세대가 함께 운영해 보았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 ‘할매니얼’을 표방하다

MZ세대 사이에서 ‘할매니얼’이 유행한 걸 기억하는가? ‘할매’와 ‘밀레니얼’의 합성어 ‘할매니얼’은 옛날 감성, 상품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를 의미한다. 코로나 팬데믹과 장기불황으로 지친 MZ의 복고를 향해 커진 욕구가 반영된 현상이다. ‘배우 윤여정’, ‘박막례 할머니’ 등 미디어에서 할매의 활약, ‘약과’, ‘수정과’의 유행 등 곳곳에서 할매와 할매 취향을 찾고 따라 하는 젊은 세대들이 예전에 비해 부쩍 늘었다. ‘고마워, 할매’는 개인주의에 익숙하고 무한경쟁에 지친 MZ세대를 할매의 따뜻한 정과 정성 어린 음식으로 위무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지역살이를 마친 참석자들과 할머니들이 파티를 열었다. 다시 청년들이 돌아와서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길 기다려본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지역살이를 마친 참석자들과 할머니들이 파티를 열었다. 다시 청년들이 돌아와서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길 기다려본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 사람 냄새나는 청년 마을의 시작(feat. 숲속언니들의 결성)

청년마을의 중심에는 운영진 ‘숲속언니들’이 있다! 20대부터 50대 사이의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농업인 그리고 소상공인으로 이루어진 6명의 언니들은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교육에서 처음 만났다. 함양살이를 하며 겪어온 고민을 나누고 해결할 수 있는 서로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자, 의기투합하여 2021년 ‘숲속언니들’을 결성(현재는 5명). 자신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과 가공품을 함께 판매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고장 함양을 알리며 젊은 귀농, 귀촌인들이 제대로 지역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자처했다. 이들의 생각은 청년마을 운영으로까지 확대 되어 마을의 구체적인 콘셉트를 정하려던 중, 자신들의 공통점 하나를 발견하는데….

“시골 할머니는 우리에게 무심한 듯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고, ‘괘안타 괘안타’ 이야기하며 따뜻한 밥 한 숟갈 떠먹여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할머니를 통해 위로와 감동을 받고 아픔을 이겨내었다. 우리가 느꼈던 것처럼 시골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할머니의 따스함, 따뜻한 밥 한 끼를 전해주고 싶다. 그들이 가진 아픔을 할머니를 통해 꼬옥- 안아주고 싶다.”

그리하여 정 많은 할매가 직접 차려주는 맛나고 따스한 시골밥상이라는 키워드로 외지 청년들을 함양으로 이끌어 시골살이의 매력을 보여주는 청년마을의 모습이 그려진다. 2022년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에 당첨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농촌=농사’라는 공식을 깨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고, 문화까지 향유할 수 있는 로컬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대표는 박세원(29), 그의 별칭은 콩콩언니.

함께 만든 한 상차림. 이중 표고탕수의 식감과 맛은 신세계였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함께 만든 한 상차림. 이중 표고탕수의 식감과 맛은 신세계였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 ‘안녕, 할매’&‘할매의 부엌’

‘고마워, 할매’의 주요 사업은 바로 ‘지역살이 프로그램’. ‘낯선 곳에서 한 달 살아보기’가 유행인 요즘, ‘고마워, 할매’는 할매와의 따뜻한 사귐으로 차별성을 둔다. 청년마을을 시작한 첫 해인 2022년에는 ‘안녕, 할매’라는 이름으로, 2023년에는 ‘할매의 부엌’이라는 이름으로 2주간의 지역살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기수마다 활동 내용과 기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할매표 요리를 배우고, 레시피로 기록하고, 두부 만들기 키트 등의 밀키트를 개발하고, 최근에는 할매들과 팝업식당 ‘함무랑’을 열어 많은 손님들을 맞았다. ‘할매랑 한상차람’, ‘할매랑 팝업식당’, ‘할매랑 손맛배송’ 등 할매와 다양한 협업을 시도하여 사업모델을 시험해 본다. 이 할매들과 청년들의 조합은 ‘제 600회 한국인의 밥상: 청춘, 할머니 손맛을 만나다’ 편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할매와 같이 그림 그리고, 악기 배우고, 달력·뮤직비디오도 찍고, 농가 일손도 돕고…. 할매와 도시 손녀는 함께 어울리며 정서와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를 돌본다. 할매들은 자신들의 인생 레시피, 삶의 지혜, 두둑한 인정을 도시 손녀들에게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고, 자존감을 찾고, 문화를 향유한다. 지난 6월에는 청년마을 성과보고회 때 참석 예정이던 할머니 한 분이 오시지 않아 댁에 찾아 갔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계신 것을 발견했고, 다행히 초기에 병원에 모셔 가서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할머니들과의 지속적인 교류가 지닌 가치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처음엔 할머니 댁에 놀러 가는 기분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도 다양한 귀농·귀촌 체험, ‘오미자’, ‘양파’와 같은 함양 특산물로 상품 제작·판매, 지역활동가와의 만남, 지역 신문사 인턴 생활 등, 창업·창직까지 실험해 보며 함양에서의 구체적인 삶의 방식을 경험해 보았다.

할머니 프로필 사진을 촬영해 드렸다. ‘가장 젊은 오늘’이라는 콘셉트였다. 할머니의 아름다움, 귀여움, 넉넉함, 따뜻함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할머니 프로필 사진을 촬영해 드렸다. ‘가장 젊은 오늘’이라는 콘셉트였다. 할머니의 아름다움, 귀여움, 넉넉함, 따뜻함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밭에서 고추 수확을 도왔다. 지역 농가를 방문해서 일손을 돕는 일을 어르신들이 참 고마워하셨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밭에서 고추 수확을 도왔다. 지역 농가를 방문해서 일손을 돕는 일을 어르신들이 참 고마워하셨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지난해 11월 10일부터 19일까지는 핫한 아이템만 모인다는 서울 성수동에서 ‘고마워, 할매’의 팝업스토어가 운영되기도 했다. 곶감 만들기 체험, 두부 만들기 체험 키트, ‘고마워, 할매’ 제작 굿즈 판매 및 전시 등이 이루어졌다. 이 팝업스토어는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관계안내소 프로그램으로, 우수사례 청년마을 중 세 번째로 진행된 행사였다. 2024년에는 더욱 많은 청년들이 함양을 방문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타 기업과의 협업 또는 공모사업도 모색 중인 정말 부지런하고 진취적인 청년마을!

# 어떤 공간이 있을까?

장기 정착 지원 숙소 ‘이어랑’, 제철 식재료 팝업 식당이자 창업 실험 공간 ‘함무랑’, 전시 및 모임 공간 ‘우리랑’, 청년 오픈 마켓 ‘모여랑’, 숲속언니들 사무공간 ‘들랑날랑’ 등 9개의 공간이 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해당 지자체와 협력하여 지역에 비어 있는 유휴공간이나 지역자원을 연결시켜서 사업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 귀촌해도 외롭지 않아, 짱짱한 네트워크

‘고마워, 할매’는 참여 청년들에게 함양의 사람과 단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귀촌해도 외롭지 않고 방황하지 않도록, 비슷한 고민을 가진 청년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함양 청년네트워크 ‘이소’는 함양에서의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글쓰기, 와인, 비건, 독서 등 다양한 소모임이 이뤄지고 있다. 청년 레지던스 플랫폼 ‘서하다움’은 청년 귀농, 귀촌 정착 지원 및 청년 창업 지원을 위한 플랫폼이다. 이들과 협업하며 상생 중이다.

할머니들과 함께 이곳에서의 행복한 추억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를 모아 2024년 달력이 나올 예정이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할머니들과 함께 이곳에서의 행복한 추억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를 모아 2024년 달력이 나올 예정이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프로그램에 참가한 도시 손녀들의 모습.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프로그램에 참가한 도시 손녀들의 모습.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 우리의 이야기

“시골살이 자체보다 시골에서 청년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며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찾게 된 함양에서 나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하고 찐득하게, 잊지 못할 우리의 이야기를 꾸리고 왔다.”(참가자)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성취감에 매몰돼 그게 행복한 줄 착각하고 살았다. ‘고마워, 할매’를 만나 연고가 없었던 함양에 정착까지 하게 됐다. 지금은 뭘 대단하게 이루지 않아도 삶 자체가 편안하고 행복하다.”(참가자)

“사람에게 지친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좋겠다. 사람으로서 아껴주고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다. 사람의 정을 느끼고 싶다면 이곳으로.”(참가자)

“이런 경험을 하니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다른 동네 사람들이 ‘이 동네는 복 받았다.’고 말한다. 청년들이 왔다가 돌아가기 전에는 항상 할머니들을 위해 요리해서 대접해 준다. 요즘 시골에 사람들이 자꾸 떠나는데 시골로 올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면 좋겠다. 20여 년 동안 동네에서 아기 태어나는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누군가 이곳에 정착해 아기를 낳는 모습을 보고 싶다.”(삼휴마을 심 할머니)

지난 11월 서울성수동에서 열린 ‘고마워, 할매’ 팝업스토어에서 홈커밍데이가 열렸다. 2022, 2023년 지역살이 프로그램에 함께했던 참가자들, 운영진 숲속언니들, 멀리 함양에서 올라온 할머니들이 모여 팝업스토어 전시공간을 살펴보고 추억을 나누었다. ‘고마워,  할매’  인스타그램  (@thanks_halmae)에서 자세한 내용은 확인할 수 있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지난 11월 서울성수동에서 열린 ‘고마워, 할매’ 팝업스토어에서 홈커밍데이가 열렸다. 2022, 2023년 지역살이 프로그램에 함께했던 참가자들, 운영진 숲속언니들, 멀리 함양에서 올라온 할머니들이 모여 팝업스토어 전시공간을 살펴보고 추억을 나누었다. ‘고마워,  할매’  인스타그램  (@thanks_halmae)에서 자세한 내용은 확인할 수 있다. 사진 ‘고마워, 할매’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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